유식의 즐거움 4 - 지식의 갤러리
윤현주 지음 / 휘닉스드림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바비인형’ 한채영이라든가, ‘살인미소’ 김재원 따위의 표현을 읽으면 가슴이 갑갑했다. 누군가 처음에 그들의 출현을 두고 ‘바비인형’과 ‘살인미소’를 떠올린 것은 아주 신선한 표현이었지만, 세월이 흐를 만큼 흘렀는데 여전히 그들을 칭할 때마다 그 표현이 따라다니는 상투성은 감동은커녕 지겨웠다.

사정이 좀 다르긴 하나,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얘기할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하면 ‘모나리자’를, ‘피카소’하면 ‘아비뇽의 처녀들’, ‘모네’하면 ‘해돋이 인상’ 등이 상투적으로 인용되는 것 또한 별로 반갑지 않았다.

아무튼,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얘길 할 때마다 상투적으로 ‘모나리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만 하지 말고. 때로는, ‘정교한 인체 해부도로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따위로 변화를 좀 주면 어떨까.

사실 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의 다빈치보다 시체 해부가 금지된 당시, 사람의 시체를 해부해 보고 사실적으로 인체 해부도를 그린 다빈치가 더 멋있었다. 그리고 ‘인체 내에 혈액이 흐른다는 사실을 유럽에서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다빈치라니 너무너무 신기하고 신선했다.

유명 서양화가 60명의 삶과 사랑 그리고 작품들

<유식의 즐거움 4-지식의 갤러리>(휘닉스)는 미술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서양화가 60명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을 간결하면서도 한눈에 쏙 들어오게 엮은 책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이나 세계사 시간에 별 성의 없이 지나쳤던 그림들이었는데.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익히며 보고 읽으니, 예전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어떤 희열이 내 마음 속에서 피어 올랐다.

지금 삼십대 중후반인 사람들은 다들 알 것이다. ‘완전 정복’이라는 참고서 이름을. 내 경우는 중학교 때 ‘완전 정복’을 만났다. 세계사를 배우면서 나폴레옹을 알았고 나폴레옹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불가능은 없다’와 ‘완전정복’ 참고서다.

당시 ‘완전정복’이라는 참고서엔 말을 타고 뛰는 나폴레옹의 초상이 있었다. 불가능이 없는 나폴레옹과 완전정복은 환상의 콤비였다. 그런데 나는 당시고 지금이고 그 ‘완전정복’에 있던 나폴레옹 그림이 서양 유명화가의 그림인 줄 몰랐다.

그것이 유명화가의 그림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완전정복’ 회사가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기발하게 그린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즉, 학생들에게 ‘완전정복’을 사서 공부하면 나폴레옹처럼 불가능 없이 이루고자 하는 공부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다는 상징을 심어주고자 그렇게 표지로 장식하였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푸하하~~ 우째 이런 일이? <유식의 즐거움4 - 지식의 갤러리>를 읽기에 앞서 주욱 한 번 넘겨보다가 그때의 나폴레옹 그림을 본 것이다. ‘아니 이것이 그냥 그림이 아니고 유명화가의 그림이었단 말인가?’ 그림의 제목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었다.

반갑기도, 나의 무지가 기가 차기도 한 가운데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을 보니 ‘자크 루이스 다비드’라는 분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미술시간을 ‘뻘줌하게’ 보낸 나인지라 ‘자크 루이스 다비드’라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 살펴보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즈음에 활동한 프랑스 고전주의 화단의 영웅’이라고 소개 하였다. ‘어머, 그런 분이었군’ 하면서 뒤쪽으로 넘기니 낯익은 그림이 나왔다. 다름 아닌,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슬프고도 정교하게 묘사된 그림이었다.

<유식의 즐거움4-지식의 갤러리>는 이렇듯 12년 교육과정 속에서 한 번쯤 본 적 있는 그림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쩌면 교과서에 실린 것보다 더 멋진 그림들 또한 푸짐하게 실려 있다.

뿐인가. 화가들의 사랑과 생애 또한 눈물겨웠다. 가난은 왜 그리도 그들의 목을 죄었는지. 평생을 그려도 인정 못 받다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요즘 같은 가을날. 모네의 ‘건초더미’와 ‘수련’, 밀레의 ‘만종’과 ‘양치기 소녀와 양떼’등을 오래도록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져서 마치 나 자신이 르느와르의 ‘테라스에서, 책 읽는 소녀’가 된(?) 듯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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