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와 함께하는 생활
서정남.경윤정.박천호 지음 / 부민문화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화초에 미치다

'화초 아저씨와 일전을 치르다'라는 기사를 쓸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는 화초에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미쳐야 미친다'는 단 두 마디의 세련된 문장은 몰랐으나, 자고로 무언가 좀 알려면 필요 이상 집착 혹은 천착을 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내 인생에 '화초'에 미치는 날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젊은 날로 쭉 거슬러 올라가자면 깊이 미치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나는 늘 다방면에 미쳐 있었다. 책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자연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그림에 미치고, 음악 중에서도 가곡에 더 미치고 등등 내 인생은 작으나마 늘 미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내가 삼십 중반에 뜬금없이 꽃에 미친 것은 순전히 일전을 치른 이름모를 화초아저씨의 덕택이 가장 크다. 그 아저씨가 고객인 내게 근거 없는 성질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저 해마다 봄이 되면 그때그때 끌리는 화초 몇 개 사서 봄이 감과 동시에 '직이고' 마는 그런 무심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죄 없는 내게 성질을 부린 것이 너무 미안하였던 화초아저씨는 내가 갈 때마다 화초를 싸게 주고, 또 덤으로 주었기 때문에 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화초를 다량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싸게 주고 덤으로 주는 화초 아저씨가 고마워서라도 화초를 죽이지 말고 잘 키워야지 하는 맹세를 하였다.

그 맹세의 와중에 '어떻게 하면 화초를 잘 기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던져졌다. 그 물음의 해답으로, 기특하게도 일단은 책을 사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원예'를 검색했고 쉽게 화초를 기를 수 있다는 갖가지 책들을 보았고, 내 머리는 '띠잉' 전기를 받았다.

이런 신통방통한 책이 있는 것을 모르고, 화초 가지 수는 얼마 안 되었지만 내 마음대로 기르다 늘 화초 기르기를 실패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 화초를 기르는데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화초를 잘 기르게 해준다는 하나의 책을 골랐는데 그것이 바로 제목은 좀 촌스러운 듯하나 내용은 그만인 <원예와 함께하는 생활>(부민문화사)이었다.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원예와 함께 하는 생활>은 여타의 다른 책들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흔히들 소설의 경우 한 번 읽고나면 두 번 읽기 어렵고, 다 읽는 그 순간 책장에 꽂히면 그 길로 무덤에 드는 것이라 하였는데. 실로 내 경험도 그러하였다. 마음은 다시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쉬이 다시 손길이 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원예와 함께 하는 생활>은 달랐다. 내가 원하는 실용적인 내용이니 만큼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는 했으나 '저장'이 잘 안 되었기에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꽃 이름의 경우 그림과 대조해가며 볼 때는 머리에 쏙쏙 새겨지는데 책을 덮으면 꽃과 이름이 도무지 연결되지 않았다.

읽고 난 후, 내용이나 꽃 이름을 금세 잊어버리는 것은 역으로 매번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듯한 '기이한' 재미를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반복 또 반복하면서 우선, 내 집 안에 있는 화초 이름을 다 익히고 나니 내 집에 없는 꽃집 화초들의 이름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해서 때론 꽃구경을 하는 양 꽃집에서 서성거리며 내가 목표로 한 화초 몇 개를 눈도장 찍은 다음 집에 와서 그 이름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렇게 화초의 이름들을 내 머릿속에 하나둘 저장을 하니 그 다음에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새로운 왠지 끌리는 화초의 경우 단 한번 보아도 바로 입력이 되었다.

그리고 꽃 이름을 일단 접수하고 나자, '꽃의 특성'이나 '기르기'에 관심이 갔다. 바이올렛과 산세베리아는 잎을 잘라 흙에 심어 3~4개월 정도 지나면 새잎이 돋아난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당장 실험에 들어갔고, 과연 서너 달 지나니 새잎이 나왔다.

그리고 로즈마리, 라벤다, 타임, 레몬밤 등 허브식물들은 줄기를 뚝 잘라 흙에 꽃아 두면 줄기에서 뿌리가 내린다고 하였던 바. 역시 실험에 들어갔고 그것들은 바이올렛과 산세베리아처럼 나의 인내를 요하지 않고 쉬이 뿌리내림을 보여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뭉뚱그려 서양란이라고만 부르던, 개업집이나 견본주택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아름다운 서양란들은 팔레놉시스(호접란) 아니면 심비디움, 덴파레, 커틀레야 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책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허브 식물들이 줄기를 뚝 잘라 흙에 꽂아 두면 뿌리가 내린다는 것에 힌트를 얻어 벤자민 고무나무와 율마 그리고 쉐플레라 등의 가지를 잘라서 흙에 심어 보았다. 과연 어떻게 될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심정은 전대미문의 실험을 하는 어느 과학자의 기분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내 실험은 성공이었다. 심어본 결과 죽지 않고 꼿꼿이 살았으며 시간이 지나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영산홍의 경우 가지를 잘라 흙에 심으니 얼마 안가서 말라 버렸다. 때문에 궁금하다. 영산홍은 어떻게 해서 번식하는지.

아무튼 이 책에는 '원예'에 대한 알파와 오메가가 다 들어있다. 일단 기초가 튼튼해야 고등수학을 잘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통달(?)하고 나면 원예에 자신감이 생기고 보다 심도 있는 원예생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꽃 이름? 꽃집에 있는 이름은 물론 거리의 가로를 장식하는 꽃 이름 또한 내 손안에 있소이다.

만약 화초에 벌레가 생기면? 분갈이는? 과일, 채소 기르기는? 꽃꽂이는 어떻게? 까다롭다는 난은 또 어떻게? 이 한 권에 이 모든 답이 들어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여러 번 숙독하고 나면 훌륭한 이의 전기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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