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
김성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북한의 김정일 지도자가 러시아를 가면서 비행기가 아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일주일만엔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언제 시베리아 횡단 열차 한 번 타보나 하면서 넋두리를 하였다. 그러나, 그 꿈은 쉬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때문에 이 몸이 직접은 못 가더라도 눈으로나마 가보자 싶어 이따금씩 TV같은 데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지나가는 주변 동네가 나오면 흥미 있게 보곤 하였다.

 
▲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
ⓒ2005 생각의나무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시베리아니, 바이칼 호수니, 몽골의 푸른 초원 등의 글자를 읽으면 가슴이 마구 뛰곤 했는데 김성호 전 의원의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생각의 나무) 또한 내 심장을 마구 뛰게 한 여행기였다.

지난해 봄, 김성호 전 의원은 의원 생활 하루를 남겨두고 대구 모 대학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였는데 마침 그 강연을 고대하며 기다리다 들은 지인이 있어 나는 물었다. ‘싸나이 김성호’의원이 무슨 말을 하였지? 그랬더니 지인은 ‘통일’에 관한 얘기를 하더라며 심드렁하게 말하였다.

뭐, 통일? 당시 지인은 통일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공감을 하나 가볍고 재미나면서 젊은이의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어떤 강연을 기대했던지라 ‘통일’ 얘기는 솔직히 재미없었다고 하였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나 또한 지인의 말에 덩달아 춤을 추며 ‘좀 재미난 얘기나 해주지’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을 읽고나자 그가 통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통일에 대한 얘기를 따분하다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김성호 전 의원은 의원일 당시 통일의 꿈을 안고 보름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한 것을 책으로 엮었다.

"통일의 꿈을 안고 모스크바에서 부산까지’라는 기치 아래 유라시안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시베리아를 지나 몽골과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그리고 민족 분단의 비극 삼팔선을 넘어 부산까지 가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은 중국 횡단열차의 끝 단둥에서 멈추어야 했다. 가고자 했으나 역사는 아직 우리의 발걸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허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가지 못했으나 머지않은 내일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오늘 우리의 좌절은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성호 전 의원이 이 여행기를 쓸 때만 해도 모스크바에서 부산까지 열차를 타고 달리는 것은 꿈이었으나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때문에 당시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얘기한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새록새록 의미 있게 읽혀졌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단순히 동서양을 잇는 철길만이 아니다. 철길을 따라 우리 민족의 한과 발자취가 어려 있는 곳이다. 특히 구한말 조국의 운명이 암흑기에 접어들 때 굶주림을 피해 대륙으로 진출했던 한민족의 민중들과,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위해 이국땅을 떠돌던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가 묻어있다.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따라 우리 민족의 피와 눈물, 그리고 희망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흔적을 찾고 싶었다.’

왜 아니랴!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을 읽으면 낯선 구 소련 땅으로 한겨울 창문도 없는 열차에 태워져 몇 날 며칠을 달리다가 생존이 불가능한 황무지에 짐짝처럼 버려지는 조선인들의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그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땅을 일구며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김성호 전 의원은 내가 <아리랑>을 통해서 활자로만 읽었던 그곳들을 두 발로 딛고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사라져간 이름 없는, 혹은, 이름은 있었으되 오늘날 우리들에게서 잊혀진 독립 운동가의 한과 고통을’ 그 특유의 설득력 있고 박력 있는 문체로 이야기 해 준다.

‘만주와 러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 백추 김규면 장군’과 김규면 장군과 함께 ‘최초의 한인 사회당 활동을 하던 여성혁명가 김 알렉산드리아’ 여사는 우리가 새로이 기억해야 될 이름들이었다.

조선의 한과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만 길게 하여서 역사의식 없는 오늘날 우리들의 죄의식을 낱낱이 드러나게만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 책에는 조선인의 한과 좌절만 있는 게 아니라 러시아 문학과 역사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의 속삭임 등 광활한 시베리아의 영상이 파노라마가 되어 펼쳐진다. 그는 ‘여행의 숨은 재미 하나는 역사와의 만남이고, 여행의 숨은 재미 둘은 문학과의 밀애’라고 하였다.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에는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닥터 지바고>의 험난한 인생과 사랑의 이야기나 푸쉬킨, 고리끼, 솔제니친, 토스토에프스키 등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도 쉽고도 풍부하게 서술하여 준다.

또, 이 책에는 재미있거나 혹은 슬픈 역사적 일화들이 너무 많아 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까하여 줄을 쳐 가며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줄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디 줄만 쳤다 뿐인가. 특히 중요하거나 감동적인 데는 별표까지 해 가며 읽었는데 그 자체로도 또 다른 재미였다.

너무 슬퍼서 별표를 치게 된 하나의 얘기는 ‘바실리 성당’에 대한 것이다. 이반 4세는 서로 다른 아홉 개의 아름다운 지붕들로 이뤄진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건축가 포스토닉 바르마를 불러 혹시 성당을 다시 지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바르마는 손수 지은 건물이므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하자 그가 영영 똑같은 성당을 다시 짓지 못하도록 잔인하게 두 눈을 뽑아 버렸다’고 하였다.

아무튼 이 책에는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은데 마지막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오다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자기 도취(?)에 푹 빠진 김성호 전 의원의 사진을 감상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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