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럼독 밀리어네어>

지난주 토요일 이 영화를 보러 갔을땐 마침 모 여중 아이들이 단체로 이 영화를 보러와서 시끌벅적했다. 어인일인가 했더니. 한달에 두번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자신들은 영화 동아리인지라 영화관에 온 것이라고.

영화를 보기 전이었지만 그 영화 동아리 학생들은 참 행운녀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시절 보는 한편의 영화는 때론 가슴깊이 '추억'으로 각인될수도 있기에...내가 중학시절 처음본 영화는
한진희 정윤희 주연의 <사랑하는 사람아>였는데, 그 수준 차이라니....^^

아무튼, 이 영화 감동적이었다. 여중생들이 영화 홍보지를 전부 쓸어가 버려 예비 지식이 전혀 없는
가운데서 영화를 보며  영화 전반 모든 면이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빈민가 인도의 현실도
충분히 보여주었다 생각했고, 현재와 회상의 적절한 교차, 깔리는 음악, 무엇보다 세련되었던 음향 등등 남우주연,
여우주연(케이트 윈슬렛 받음을 사전인지)빼고 다 줘도 되지 않을까 나름 상상하며 .... 영화끝나고

소녀들이 팝콘과 함께 흘리고 간 영화홍보지를 주워 확인해본 순간 ,
'어머, 나 자리 깔아도 될까봐. ㅋㅋ'
정말이지 여우주연 남우주연 빼고는 다 받은듯~~~

그러나 참 묘한것이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는 세상에 완벽도 이런 완벽이 없다 생각했는데
극장문을 나올때 까지는 괜찮아도 집에 도착하니 더이상 영화가 복기되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영화는 볼때는 지루해도 지나고 나서 자꾸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볼때는 감독이 신의 손을
빌려서 만든 작품이 아닐까 싶었었는데 끝나고 나니 여운이 없었다. 참, 뭐라해야 할지...
게다가 그즈음 한겨레 21에서 영화는 영화일뿐 인도빈민의 삶은 여전히 암울하다는 기사와 사진을
접하자 더더욱 감동이 시큰둥으로 바뀌어 버렸다.

영화속 빈민가도 충분히 현실을 반영한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한겨레 21에서 본 사진은 그 보다 더 함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더러운 물도 아니고 완전 독극물같은 물이 들어있는 통에서 서너살 꼬마가 목욕을 하는지 노는지.....
안 가보았으니 알수가 있나.

아무튼, 우쨌거나, 그럼에도 <슬럼독...>은 좋은 영화였다. 내가 늙어서 봐서 그렇지 청소년들이 보면 그 여운이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아니, 갈것이다.^^

2. <그랜 토리노> <더 리더>

클린트 감독의 마지막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광고 덕분에 기대를 하고 보았는데 음...클린트 행님은 역쉬 대단혀~~~ 내용이야 지극히 평범한 노년의 일상과 주변사람들과의 소소한 다툼의 나열이었으나....
그렇게 천천히 얽어가다 영화 후미 찐한 감동을 주었다.

마지막 노래는 누가 불렀는지 혹 클린트 행님이 부르신것은 아닌지 이글스의 조 웰시가 늙어서
더이상 기운이 없을때 마지막으로 기운을 차리고 노래를 부르면 그런 목소리가 날까...

무엇보다 관속에 미리 들어가 누워보다니... 고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만큼이나 평안하고 원없어 보였다.
아마, 세월 더 지나 클린트 행님은 꼭 그렇게 영화처럼 아름답게 가실것이다.
원래 마지막이라하면 또 다른 마지막이 남을수도 있는바, 아마 향후 한편 더 찍으시지는 않을까나..ㅎㅎ

찍기 힘든 영화 말고, 총도 무거우니 총도 들지 말고, 그저 좋은 경치 보면서,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옛추억을 떠올리는, 첫사랑 같은 그런 영화 한편 더 만들어 주시면 안될까요?

.......

책읽어주는 남자는 케이트 윈슬렛을 다시 보게 만든 영화였다. <네버랜드를 찾아서>에서의
그녀도 좋았지만 이번은 그때보다 훨 멋있었다. 비록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그 주름마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반대로 랄프파인즈가 그렇게 늙어 버린것은 영 애석했다. ㅋㅋ..

언어가 독일어 였다면 훨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이 영국배우라 할수 없는가...

....
언급한 세 영화중 가장 기억에 남든 장면은 클린트 행님 총맞는 장면과 관속에 누워있는 장면.
더리더에서는 성당(성당 묘지?)으로 향하던 누런 들녘의 풍경과 넓은길, 그리고 죽은 한나의 묘지석을 손으로 쓸어
낙엽을 치우던 장면이 지금도 생각나... 이상. 3월에 본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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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3-3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트 윈슬렛 연기가 완전 물이 올랐더군요.
그랜토리노도 묵직하니 그러면서도 가볍게 치고 달아나는 듯~

폭설 2009-04-01 10:28   좋아요 0 | URL
그런 영화 한편 완성하고 나면 죽어도 원이 없을것 같아요.ㅋㅋ..
그리고 독일의 도시, 시골 풍경 넘 좋았어요.
 

언젠가 신문에 난 통계를 보니 한해 성적비관으로 삶을 버리는 학생이 적게 잡아야 200명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성적을 비관해 삶을 버리다니. 게다가 역설적이게도 성적을 비관해 자살을 감행하는 학생들의 경우 의외로 성적이 좋은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공부에 취미 없는 아이들에겐 공부하고 목숨하고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잘하면 좋겠지만 안 되는 것을 어쩌고 또 노력도 안했는데 점수 좋기를 어떻게 바랄 것인가. 공부 못하는 자신이 때론 갑갑하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내 놓을 정도는 결코 아닐 것이다. 

사례1

막내 조카의 경우 가족들은 녀석의 성적에 대해 걱정이 태산인데 본인은 전혀 걱정을 않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어느 날 조카와의 대화 끝 한마디 덧 붙였다.

"니가 지금 공부를 못하기는 하지만 공부 못한다고 해서 행여 기죽지는 말아라. 너는 지금 너의 길을 찾는 것에 다소 혼란스러울 뿐이니 전혀 주눅들 필요 없어. 공부도 적성에 맞아야 하는 것 아니겠니?"
  

"전혀 기 안 죽는다. 걱정을 하지마라. 시키는 대로 공부 하는 애들이 불쌍타."

기죽을 필요야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기죽지 않을 것까지야 없겠거늘 천하태평도 그런 태평이 없었다.

사례2

초등 전반기 늘 반평균 언저리를 맴돈 나의 첫째에게, 공부하라는 소리에 지친나머지 집에다 불을 낸 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스펀지>를 보며 역시 말했다.

"공부가지고 뭐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절대 저런 끔직한 지경까지 가면 안된데이?"

"걱정마라. 반 평균만 넘으면 된다."

나 참. 안도와 함께 '그러니 너는 성적이 안 오르는 거구나.'하며 혀를 찼다. 공부에 욕심이 없어도 유분수지. 학생의 본분이 배우고 익히는 것일진대 반평균만 넘으면 된다니. 그런데 공부에 대해서는 반평균 언저리가 어떻고 말하는 녀석이 노는 면에서는 단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의 경우 오전 11시에 나가서 저녁 6시에 들어왔다. 그 중간의 점심은? 물론 굶었다. 중간에 두세 번 전화를 걸어, 들어와서 라면이라도 먹고 나가라고 쌍심지(?)를 켰지만 '지금 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놀이를 멈출 수가 없다.'고 하였다.

얼마나 놀이터에서 마구잡이로 뭉개고 놀았는지 돌아온 아이의 옷에는 먼지가 자욱했다. 함께 온 친구 녀석들의 옷도 말이 아니었다. 눈은 다들 허기로 몇 리는 들어가 보였다. 인즉슨, 녀석들은 집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누구 집에서 점심 먹었다며 서로 친구를 팔아 거짓말을 하고 논 것이었다.    

사례3

반면, 공부 잘한 한 둘째 조카의 경우 시험을 치고 점수가 나오면 자신보다 앞선 아이들에 대한 질투 땜에 성적이 올라도 견딜 수 없었다고 하였다. 아주 잠이 싹 달아나고 속에서 자신을 향한 분노가 부글부글 끓었다고 하였다.

'똑같은 시간 공부했는데 왜 나는 등수가 낮은지 역시 내 머리는 돌이야.' 하며 죽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 죽고 싶었다의 정도가 어느 만큼이냐고 하니 배고파 죽겠다, 우스워 죽겠다식의 수사가 아니라 정말 목숨 줄을 놓는 그런 죽고 싶다였다고 하였다. 나 참. 그런 배수진을 친 마음으로 공부하니 그렇게 성적이 올랐는지 몰라도 정도가 지나침에랴.

"왜 그렇게 열심히 해야 되는데? 그냥 적당한 등수에 만족하면 안 되겠던?"

"몰라. 당시 한창 유행하던, 유럽의 성으로 안내하는 듯한 한 아파트 광고를 보며 나도 돈 벌어서 저런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었어.ㅎㅎ"

"공부 잘한 학생의 동기가 기껏 화려한 개인의 삶을 위해서였다는 게 씁쓸하네. 그게 먹혔다는 것도 놀랍다. 내 친구의 경우 이 나라 교육을 뜯어 고쳐 보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고 목표를 이루던데 성(城)과 같은 아파트에서 공주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 학습의 동기가 되었다니..."

"글쎄.. 요즘 공부하는 애들이고 시키는 부모고 간에 이 사회를 위하여 뭔가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부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동기가 좋아야 그 결과가 더 빛나고 오래 지속되는 게 아닐까?"

"그렇기는 한 것 같아. 내 경우 고교 때 너무 많은 정열을 쏟아 부어 지금은 그렇게 몰입하는 일이 안 돼. 오히려 지금 더 탐구해야 할 시점임에도...."

결론은, 현재를 살자

'기회비용'이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말하자면 나의 아들과 막내조카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대신 성적이 나쁘다는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다. 반면 공부 잘한  둘째 조카는 그 공부 덕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라는 인생 1회전은 성공했으나 문제는 더 이상 그 무엇에건 고교 3년 때와 같은 집중력을 발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조카에겐 그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음이 기회비용이라면 기회비용이라 할 수 있겠다. 언뜻 보기에는 모범생 둘째 조카의 기회비용이 적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다음에 고교시절을 떠올릴 때 공부 못한 막내조카의 경우 친구들과 놀았던 갖가지 사연이 있을 테지만 모범생조카의 경우 오로지 책상 앞에서 문제집만 풀었던 기억이 전부라면 얼마나 삭막한가.

서양 어느 교육학자가 말하기를, 과거에는 청소년기의 삶을 일러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이라 하였는데 이젠 다르게 보고 있다고. 즉, 청소년기는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가 아닌 '청소년기'라는 바로 그 '현재'를 사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 말에 백번 공감한다.

내 아이나, 막내조카처럼 노는 것이 땡기면 본인이 원하는 대로 원 없이 노는 게 자신의 삶을 보다 충실히 사는 게 아닐까. 물론 이 녀석들은 노는 것의 반의 반 만큼은 공부가 싫으면 독서나 음악, 미술, 체육 중 한두 가지는 꾸준히 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가 되는 아이들은 어떡하냐고? 공부가 되면 공부를 하되 너무 점수와 등수에 연연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만족을 하고 대신 나머지 시간을 자신이 추구하는 분야에 깊이 파고 드는 것이 남는 장사 아닐까싶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이미 중학교 때 영화에 눈 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영화를 두루두루 섭렵하였었다. 그가 그러지 않고 학창시절엔 오로지 공부만 하고 대학에 와서야 영화에 빠졌다면 얼마나 시간낭비 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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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떠오르는 봄 나물(채소)하면 당연 돈나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보다 더한 것을 발견했으니 바로 미나리이다. 얼마전 티비에서,미나리 먹으러 시골 논바닥 비딜하우스 촌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았을땐, '하여간 사람들 별나기는...' 했었는데...

어디 좋은것 있다면 우르르 몰려가는 그 벌떼 근성땀시... (머 그 덕에 농민들은  돈을 버니 오히려 고마워 해야되나. ㅎㅎ 나보다는 나은 사람들.. ) 나는 그 미나리 촌이 지척이라, 언제든 갈수 있기에 밍기적 대다 보니 10여년을 살아도 아직 한번도 못갔다.

그랬는데 어제는 인근 온천으로 마실나갔다가  온천 앞 장터에서 그 무공해 미나리를 보게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티비에서 그 미나리를 상추삼아 돌돌말아서 똬리를 튼다음  그위에 삼겹살, 마늘, 쌈장을 얹어서 입을 쩍 벌리고  크게 한입먹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군침이 일었다.  

'미나리 줄기의 뻣뻣함이 먹기 거북하지 않을까. 우좌간 한번 사서 먹어보고 아니면 말고... ' 해서 미나리 한단을 사와서 간만에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 맛은?  '워매, 이거이 무신맛!!!!! '그동안 삼겹살 싸개는 깻잎과 상추가 제일 인줄 알았는데 미나리로 쌈해서 먹어보니 미나리가 제일이었다. 미나리 줄기부분이 센줄 알았는데 아싹아싹 보드라워서  입안이 거북하지도 않았다. 해서 지난 10여년 매 해 봄 이 미나리를 먹어보지 못한것이 후회스럽기 까지 했다.

몇해전에는 언니가 미나리 사서 가다가 한단 줄까 하며 손전화를 만지작 거리다 말았다고 했서... '잘했어. 줬어도 다 소화 못했을거야.' 하며 다행이라 말하기도 했었는데... 뒤늦게 먹고 보니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네!  반절을 삼겹살과 함께 먹고나니 반절이 남았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무쳐보기로 하였다.

큰언니가 언젠가 미나리는 이렇게 무친다 하면서 지름 1센티정도로 채썰어서 고추장, 식초, 깨, 간장, 마늘,참기름을 넣고 버무리는 것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언니처럼 해봤다. 쓱쓱 잘도 썰리는 미나리를 썬다음, 양념장을 만들어 서너숟가락 듬뿍 넣고  비볐다.

그리고 한입쓱~~~  

재료가 좋으니 내 솜씨와는 상관없이 무척 맛있었다. 이로써, 봄날, 반드시 먹고 지나야 할 먹을 거리로 이전에는 단연 돈나물이었는데 어제 이후로는 미나리가 되어버렸다. ㅎㅎ (물론 돈나물도 좋다. 둘다 먹어두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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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이 너무 적어서 혹 신해철씨가 실망할수도 기분나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그러나, 넘 기분나뻐하지 마시고 쓴약이라 생각하고 삼키는 것도 좋을터... 쓴약이 싫으면 그간의 사랑이 너무 지나쳐 그 반대급부를 돌려받는다 생각하던지.  

나또한 백토에서 신해철발언을 듣고 몇년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을 맛본 사람으로서 그의 사교육 광고는 저으기 뜨악했다. 해서 그에게 뭔말을 하고 싶으나 문장이 안되고 논리도 안되었는데  이렇게 내 마음을 대신해 주는 글이 있었네.  

아래의 글은 신해철을 비난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라 생각한다. 집단지성의 토대가 얕은 우리사회의 수준을 한번 되새겨보자는 것이지...  계동이 행님도 한때는 월매나 멋진분이었냐말이다. 잘은 기억 안나는데 그는 말했었다.  

노태우 비자금이 얼마나 되냐하면 그것을 이땅에 쫙 뿌리면 대한민국 사람 만원짜리 하나씩 다 가질수 있는 그런 돈이라 했던가..그렇게 비장하던 그분이...요즘은 어떤가. 타산지석으로 신해철은 이번 사교육 광고를 액땜으로 더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빈다. 괜히 변명에 변명을 거듭하다 자기도 모르게 영 우스운 사람이 되버릴수도 있으니....

그럼 즐감하시길~~~~

  

신해철의 몸값은 10원이 적당할까?   -김동렬-

인간 신해철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말했지만… 자연인 신해철은 개인적으로 자기 소신을 말한 것이고… 액면으로 봐서 잘못한 것이 없다. 왜? 그는 범민주세력 공론시스템 안에서 이득 본 것이 없으니까.  


이득 본 것이 없는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시민단체의 감투를 꿰차지도 않았고, 강단에서 교수 노릇을 한 것도 아니고, 정당인도 아니다. 얻은 것이 없는 사람에게 책임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TV토론에 나와서 인기와 신용을 얻었지 않느냐고? 에이! 그거야 연예인의 캐릭터고 상술이지. 소인배가 돈 벌자는데 무슨 짓을 못해. IQ 124의 머리 좋은 정준하는 바보형 이미지로 벌어먹고 신해철은 투사 이미지로 벌어먹고.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신해철 개인의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성의 부재’를 비판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우리 사회다. 반면선생 신해철을 교훈 삼아 비판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공동체다.

만약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스승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응애에요. 나를 봐줘요! 저기요! 내 생각은요.’ 하는 유아적인 치졸함을 보이기 전에… 스승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의식했을 것이다.

진보는 집단지성이다. 개인플레이가 아니다. 독불장군은 안 된다. 신해철에게는 동지가 없었고, 동지의식이라곤 없었다. 애초에 동지의 존재를 의식할 필요조차가 없다. 주변에 조언해줄 좋은 친구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그런 기초적인 소양의 훈련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이다. ‘지성의 범주’ 안에서는 상식적인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문제는 그런 독불장군들이 이재오, 김문수, 오세훈, 전여옥, 박계동들이었고 결국 한나라당 가더라는 경험칙. 믿기지 않겠지만 전여옥도 한때는 진보에 페미니스트였다나. 하긴 이명박도 한때는 운동권이었다나.

네티즌들이 애꿎은 신해철에게 화를 내는 것도 당해본 경험 때문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격으로…. 이재오, 김문수, 오세훈, 전여옥, 박계동들에게 당한 것을 만만한 신해철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다.

진보는 시스템 안에 있다. 스승이 있고 공론이 있고 동지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서 집단지성의 큰 강을 이룬다. 그 강물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이 굽이쳐 이루어놓은 역사가 있고, 그 역사의 맥박과 호흡이 시대정신을 열어젖히는 것이며 그 배후에 든든한 진리가 있고 신이 있어서 얼마든지 보증을 서준다.

그런데 왜 유아틱하게 ‘저기요! 나는요. 내 생각은 이렇걸랑요.’를 앞세우나. 변론하려면 신을 먼저 언급하고, 신의 진리를 언급하고, 선열들의 역사를 언급하고, 그 면면히 이어지는 도도한 흐름 안에서 자기 포지션을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요, 사교육이 좋걸랑요.’ <- 이런 자는 반드시 한나라당 간다. 신해철이 저래놓고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만… 더 많은 작은 신해철들이 수년 후 한나라당사에서 전여옥 가방 메고 뒤쫓아 다니는 모습을 본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어디 한 두 번 당했나?

신해철은 잊어버려도 좋다. 그러나 ‘지성의 시스템’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진도 못 따라오는 떨거지들은 뭐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고, 말귀 알아듣는 우리끼리 진도 나가자는 거다. 왜? 우리에겐 이상주의가 있으니까.

신해철들에게는 없지만 내게는 있다. 스승이 있고 동지가 있고 함께 가꾸어가는 우리들의 꿈, 이상주의가 있다. 우리 편이 있다. 강단의 스승은 없지만, 조직된 동아리나 패거리는 없지만… 백범, 장준하, 김대중, 노무현. 전태일은 원래 나의 스승. 예수, 노자, 묵자, 공자, 석가는 나의 스승.

신이 나의 큰 스승이다. 나의 가장 가까운 동지다. 동지를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내 생각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신의 생각, 석가의 생각, 예수의 생각, 노자의 생각, 소로의 생각을 묻는다.

나는 말한다. 세속의 사제관계를 떠나, 조직된 정당이나 패거리나 조직체를 떠나… 대붕이 큰 날개를 펼치듯이… 대자연의 품 안에 무위자연으로 안겨 홀로 있어도 스승이 있고, 스승들이 이어온 역사가 있고… 그 역사의 호흡한 바 시대정신 안에서 동지가 있고 내 편이 있다고. 그래서 외롭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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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자기 몸값이 1조 원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신해철의 생각을 바꾸려면 1조 원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러나 그건 그의 주관에 불과하고 객관적인 시장가격은 어떨까? 10원이 적당하다. 신해철을 위하여 1초 정도는 나도 시간을 낼 수 있고 나의 1초는 10원이니까.

가치는 동지가 결정하는 것. 동지가 없이 개인 생각을 들이대는 유아적 사고의 인간에게 몸값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가치는 동지가 몰아주는 것이다. 무릇 힘이라는 것은 내 머리와 내 몸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우리 편들이 대표하여 나서는 이에게 몰아주는, 위임하는 것이다. 항상 그렇다.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다. ‘지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사실. 지성이 없는 자는 잠시 반짝할 뿐 결국 저런 식으로 자폭하고 만다는 사실.’ 동지가 있고 내 편이 있어야 한다. 신의 편, 역사의 편, 진리의 편, 문명의 편, 약자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 출처 - http://gujoron.com/xe/17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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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디파이언스>를 보기 전 두 편의 '작전' 예고편을 보았었다. 하나는 톰크루즈 주연의 <작전명 발키리>였고 다른 하나는 박용하의 <작전>이었다. 두 개의 '작전'예고편을 본 옆지기 왈.

 "똑 같은 작전인데 두 번째 작전(박용하의)은 왜 저리 없어 보이노..."

나또한 그렇게 느꼈기에 '푸훗~' 웃음으로 동조했으나 뒤끝은 씁쓸하였다. 서구사대주의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객관적으로 우리가 확실히 못났나. 동남아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좀 잘나보이듯 저들이 우리보다 잘난 것은 사대주의 아닌 사실일까.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이렇게 인간들을 차별하여 내질러 주셨나.(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고 모든 존재는 있는 그대로 다 귀할지니)

아무튼, 예고편에 실망해서 영 볼 생각이 없었는데, 이런, 안 봤으면 후회할 뻔 했다. 주식에 살짝 발을 한번 담가본 사람으로서 주식공부 마무리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한번 보자 싶어 보았는데, 영화는 상상 외로 두루두루 흡족하였다.

주인공 강현수(박용하분)는 저대로 끝인가 싶은 순간순간들을 매번 넘기며 구사일생 살아남았는데 그것은 시종 관객에게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각본도 훌륭했고 배우들 또한 다를 너무 '적역'이었다. 어쩜 그렇게 각자 맡은 역할들을 맛깔나게 소화하는지, 그들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조연들의 연기가 눈이 부셔...

'저분은 분명 뜰 거야' 누군고 하니 '덕상이'역의 박재웅이다. 오호라, 그 멍한 표정. 순진한 건지, 순수한 건지, 우직한 건지, 아니면 나름 꿍심이 있는 건지 아무튼 그 표정. 첫눈에 반해버렸네.(웃음) 뿐인가. '됐어, 거기까지'의 황종구(박희순분)는 또 어떻고. 현실에 저런 인물이 주식시장을 휩쓸고 다니고 내가 만약 그 주식에 물렸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리고 브라이언 초이(김준상분)의 오도 방정, 증권사 직원 조민형(김무열분)의 뺀질뺀질. 연구보다 연구비 조달이 힘겨워 축 쳐진 어깨의 윤상태박사(유승목분)와 그것을 이용하는 재벌2세 망나니 동창의 기름진 자태. 심지어 황종구가 잡혀갈 때 단 한 컷 나온 형사아저씨 마저도 어찌 그리 실재 같은지...

금감원 직원으로 나온 이재학(김승훈분)도 어쩜.... 어리 쑥하고 수줍은 외모이나 '내모'는 수재의 느낌에다 우직하게 정도를 걷는 공무원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해 실지 금감원에도 저런 공무원 많이 있어주었으면 하며 살짝 소망하기 까지 했다.

아무튼, 위에 언급한 분들 외에도 어느 하나 빠지는 분이 없었다. 주연 조연이 따로 없고 모두가 주연 같은 완벽한 영화였다.

대한민국 주식시장 안 망하는 이유

이 영화에서 특히 무릎을 치게 한 대목은 다른 아닌 증권사 직원 조민형의 다음 한마디였다.

 

"대한민국 주식시장 안 망한다. 왜? 개미들이 있으니까."

개미 중에서도 가장 작은 불개미의 한사람으로 주식시장을 경험해본 사람의 입장임에도 그말은 너무도 쓰라린 말이었다. 하물며 큰돈 투자한 사람이라면, 해서 큰 손실을 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아릴 것인가. 그나마, 돈이 없어 큰돈 투자할 수 없는 입장인 내 처지가 오히려 천만 다행이다 싶었다.

풍부한 정보력에다 대 자본을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손잡고 개인투자자들을 그럴듯하게 유인하는 데는 아니 당할 수 없으렸다. 물론 한두 번 이길 수도 있겠지만. 아니, 나름 고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고수의 경지에 오르자면 수업료는 또 얼마나 지불해야 할 것인가. 그러니 수업료 내지 말고 고수 안 되는 것이 돈 버는 것 아닐까. 하려면 자기자본의 최소로만 하든가.

하여간, 이 영화를 보고나니, 소위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의 목적이 좋으면 투자자들 또한 '순한 투자'를 하지 않을까. 영화 마지막 '슈퍼개미' 분의 말씀.

"처음엔 무조건 이윤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번 돈은 쉽게 까먹게 되더군요.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보니, 가치 있는 기업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기업의 장래를 보는 가치투자를 하게 되었지요."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영화배우 폴 뉴먼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그 수익의 전부를 사회에 환원했다던데 그런 기업들이 많아지고 개미들 또한 그러한 기업에 투자하면 서로 상생하지 않을까. 아예 주식시장 같은 것을 없애버리면 개미들 손해 볼 일도 없겠지만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판 갈이가 되지 않는 한 불가능 할 터이니 그 대안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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