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는 낡은 전축과 레코드판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어. 그런데 전축에는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더라고.나중에 알았는데, 할머니가 하시는 일이었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레코드판을 한 개, 두 개 빼 보았지. 그러다 카라얀 그림이있는 판을 보았어. 카파얀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노을빛 같은 배경으로 꿈꾸는 듯한 표정이었어. '운명'교향곡이었지. 낡은 전축에 레코드판을 올려놓았어.

"바바바......바."

나는 누워서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걸 보고 있었지. 집채만한 파도가 덮치는 것만 같았어. 가슴이 '쿵쿵' 뛰었지. 그런데 밀물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운 소리가 뒤이어 다가오는거야. 내 속에는 파도처럼 출렁거림이 일었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괴더군. 내가 구석방을 처음 만난 날이야.



-김춘옥의 '작은 나라' 중에서-

----------------------------------------------------------------------------------------------------------------------------------------

운명교향곡을 처음 들었던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오늘 공부한 아이들 또래였을 듯 한데......아이들 눈높이로 옛날의 내가 느꼈던 느낌을 생각하며 함께 . -2004. 8. 23. 5학년 은꼼팀/ 讚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 열세 살 여자
양해경 지음, 이정아 그림 / 파란자전거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동화책을 고를 때, "*학년이 읽는~"이라든지 "저학년용~"이런 식으로 독자층의 학령을 표기한 책은 거의 고르지 않는다. 출판하는 측 에서는 고르는 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썼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방해가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저학년용이라고 표지에 씌여 있으면 4학년 아이들은 지레 읽지 못할 책이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해당하는 나이의 아이들 외에는 내용을 만나기도 전에 선입견이 생겨 버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수용하는 폭이 굉장히 좁다. 열 세살에 여자 아이에게만 해당되므로.

그러나 이 책은 나이와 성별의 제한을 둔 것이 오히려 장점이기도 하다. 또 반드시 열 세 살 여자아이에게 절실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제한을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마침 6학년 여학생만으로 구성된 모둠이 있어서 이 책을 사용했다. 이 책의 내용이 자신들에게 너무나 딱 맞는 이야기라 책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은 어느 때 보다 생기가 돌았다. 그들에게 부닥친 문제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의 모임은 은밀하면서도 신비스럽기조차 했다.

이 책의 서술방식이나 구성이 신비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꼭 알아야 할 여성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듯이 다루는 내용이 사회적인 부분도 많다. 유난히 편견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위치와 인식에 대한 비판과 불만도 나타나 있다. 이는 여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찾는 이가 바로 여자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불평등을 아이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순서가 맞을 것 같다.

여성 고유의 초경과 임신에 대한 생리적인 설명이 명료하게 잘 되어 있다. 학교에서 여러차례 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상식이 있을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이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초경을 경험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월경에 대한 거부감이 무척 심했다. 이 책을 통해 초경을 징표로 완전한 한 사람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부분을 좀 더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하였다. 여자에게 있어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건이 아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업시간에 "초경파티"라는 이벤트를 하였는데 이 책으로 공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정성껏 포장하여 서로에게 선물하며 이미 시작되었을, (아니면 곧 시작 될) 초경을 자축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장미꽃만큼이나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던 소녀들을 보며 내 가슴도 얼마나 뛰던지......

이제 갓 사춘기에 접어든 열 세살 여자 아이. 이 책을 통해 자기 신체의 변화를 지혜롭게 이해하고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에 당당해지길 바란다. 주위에 열 세살 여자 아이가 있다면 권할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의 전화박스 아이북클럽 7
도다 가즈요 글, 다카스 가즈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학년 모둠에서 이 책을 교재로 사용했던 적 있다. 그 때 여자아이 한 명이 한 달 동안 무려 30여번을 읽어 나를 놀라게 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었니?"라는 나의 물음에 물론 재미있어서 그렇게 재독을 한 것이겠지만, 그 아이의 대답은 이러하다. 속상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실컷 우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는 것이다. 우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는 슬픈 일이 없어도 매일 읽고 싶어졌고 읽을 때 마다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한달 내내 울며 지낸다는 것이 걱정이 될 정도였다.

마지막 시간에 독후감상문을 편지형식으로 쓰게 하였다. 그 아이의 글 속에는 순하디 순하게 정화된 마음이 밑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잔잔한 옹달샘을 보는 듯 투명하게 비쳐졌다. 너무 감상에 빠진게 아닐까 우려했던 나의 기우는 말끔이 가셨다. 역시 책은 대단하다. 책은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이 가장 강한 매체일 것이다.

동화의 기능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가르치기 보다는 감동을 주어서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것을 깊은 감동으로 가슴에 박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화에서는 현실을 초월한 상상의 세계가 자주 동원된다. 이 책에서도 아기 여우를 잃은 엄마여우와 읽은 이가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세계가 열리고 무생물 전화기 조차도 따뜻한 세상을 위해 한 몫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수상하는 안델센상이라고 불리는 "히로스케"동화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빼어난 동화이다. 감상적인 부분이 조금 지나치다 싶기도 하지만 가슴이 따뜻한 아이가 되길 원한다면 초등학교 저학년(1,2)때 읽히면 좋을 것 같다. 이 책 표지만 봐도 나는 한 달 동안 책 한 권에 빠져 내내 울던 아이의 그 촉촉하던 눈망울이 생각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출했을 때 잘 데가 없어 무작정 계속 걷기만 하면서도 
집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않더라고 너는 말했다.
배는 고팠지만 행복했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어.



...홍신자의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中에서...


--------------------------------------------------------------------------- 
나는 학생들에게 푸른 형광펜과 붉은 형광펜을 사용하면서 책을 읽으라고 한다.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안 사실 등 지적으로 보탬이 되는 글귀에는 푸른 형광펜을, 
인상깊거나 감동을 받았던 가슴에 와 닿는 문장에는 붉은 형광펜을.....
 
오늘 수업 중에 윗 부분의 본문을 읽을 때 
아이들이 너도나도 붉은 형광펜을 긋는 것을 보았다. 
나도 같이 그었지만 말이다. 
가출을 한 번도 안 한 녀석들이 가출한 소녀의 이야기에 마음이 통했을까? 

-讚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119

바람.

세상에서 드물게 보는 깨끗한 것의 하나이다.

 

-다시는 자살을 꿈꾸지 않으리라 中 / 알베르 까뮈-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