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정지용 시집
이숭원 주해 / 깊은샘 / 2003년 2월
장바구니담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하생략(향수 中)
우리 귀에 익숙한 이 노래는 우리나라 현대시의 아버지인 정지용의 시를 노랫말로 삼았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태어나서 유년기의 뼈가 굵어진 고향이 있기 마련이지만 시인은 더 넓은 의미의 조선 국토 전체를 고향이라고 여기며 시를 썼다. 지용시인은 일제강점기의 문화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위험 속에서도 조선민족이 굴하지 않고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모국어를 사용했다.

이처럼 민족시인이었던 정지용이었건만, 우리는 1988년 해금되기 전- 40년간이나 그의 문학을 만날 수 없었다. 지용시인이 김소월시인과 동갑이라니 놀랍다. 같은 시대에 시를 썼지만 소월은 '한'을 소재로 정통적인 시어를 구사했지만 지용시인은 우리 모국어를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시어들을 조탁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둘의 시쓰기는 적어도 100년의 차이가 난다고 했다.
이 책은, 처음 발표된 지면과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원전으로 삼아 두 권의 <시집>과 시집 미수록 작품을 원본 그대로 사.진.판. 으로 제시하였다.
사진은 당시 시집들의 표지사진.
이 책의 표지그림은 오른쪽 아래 사진-1941년 동명출판사에서 낸 <백록담>의 표지를 차용한 것이다.

현대어로 매끄럽게 정돈 된 정지용의 시도 좋지만, 이숭원교수가 엮은 <원본 정지용시집>을 만난 건 행운이다. 방언, 고어, 신조어 등의 시어를 현대어로 바꾸다보면 원작 훼손의 가능성이 커진다. 그 결과로 교과서나 논문 등에서도 표기의 혼란이 생긴다.
사진판 본문 아래쪽엔 이숭원교수의 주석이 빼곡하게 달려 있는데 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으음..솔직히 말해, 큰 도움 정도가 아니라 이 주석이 없다면 시를 읽어내리기 조차 힘들었다. 한자가 많기도 하거니와, 고어가 된 말의 뜻은 도무지 종잡을 수도 없었다. 초반부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고 자백한다. 향가 <찬기파랑가>를 읽는 기분이었다고.

한 편씩 곰삭혀 읽어보면, 지용시인의 놀라운 언어구사력에 혀를 내두른다. 적확한 묘사력과 탁월한 이미지스트로서 언어 감각이 탁월한 시인이라는 사실이 느껴진다. 그 중에 아름다운 시 한편을 소개한다.

유리창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

===
사족1 : 참 좋은 책인데, 출판사에서는 타산이 어떨지 괜히 걱정이다.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현대인의 미각을 속이는 날라리같은 항간의 시들이 난무한 가운데 이런 책이 어떻게 먹혀 들런지.... 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겐 더없이 좋겠고 우리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책은 눈여겨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런 연구와 책이 좀 많이 나오도록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거죠...)

사족2 : 원본 시전집 뿐만 아니라, 결정판 시전집도 나왔으면 좋겠다^^/060106ㅂㅊㅁ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2006-01-0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같이 귀한 책을 선물해 주신 '물만두'님께 감사드립니다.

물만두 2006-01-0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요^^

mong 2006-01-06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가 있는 멋진 포토리뷰에다
다정한 두분의 대화까지!!!
추천 열개가 아깝지 않아요 ^^

진주 2006-01-0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몽님, 우와 추천 열 개라닛!! 리뷰 올리면 와보는 사람이 없어 적막강산인데.. 고맙습니다^^

sayonara 2006-01-25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그저 노래가사인줄 알았는데.. 간혹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저의 문학적 소양이 놀랍습니다.(깊이가 너무 낮아서 거의 평평한... -_-; )

진주 2006-02-2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예전에는 시가 곧 노래고, 노래가 곧 시이기 때문에 詩歌라고 했지요. 이상한 말투로 낭송하는 것 보다 시를 노래로 부르는 것이 더 멋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박인수와 이동원이 부른 향수노래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시'라는 느낌이 덜 들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