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라졌다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3
수 코벳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누구라도 그러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똑딱거리는 시계바늘에 쫒기는 일상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고, 피곤에 늘어진 몸을 이 악물고 달려들지만 일감이 쌓이는 속도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고요, 군상들 속에 부대껴 누더기가 다 된 마음을 바닷바람이라도 휑하니 쐬고 싶기야 굴뚝같은데 껌같이 달라붙은 가족들 때문에 한 눈 팔 수 없는 딱 그 즈음, 세상이 내 실력을 조금은 인정해주기도 하는 것 같으나 하얗게 밤을 지새운 열정에 비하면 코딱지보다 더 작아요. 언제쯤이면 편안하고 만족스런 날이 올까요. 까치발을 들고 내다봐도 앞에 펼쳐진 날은 고되고 버겁기만 해요.


딱, 그럴 때, 유년시절이 막 그리워지잖아요?

평안하고 포근했던, 아무 시름없던 엄마 품속..... 마흔 즈음의 여자라면 누구라도, 남편이고 자식이고 일이고 다 때려치우고 철없던 유년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거잖아요.

책 속의 여자 버나뎃도 그랬어요.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며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신문사 기자로서 재택근무를 해요. 한국여자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수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주부의 사정은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네요. 그 즈음 그녀가 더 힘들었던 건, 얼마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밥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면 위로받는 게 우리들인데, 쯔쯔... 이렇게 열악한 틈바구니에서 마흔 번째의 생일을 앞두고 그녀도 우리처럼 맥없이 중얼거렸던 것뿐이었어요. 엄마 곁에 있고 싶다고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수 코벳’은 아일랜드의 신비로운 설화들을 이용하여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어머니 곁으로, 또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로 버나뎃(과 함께 우리도)을 데려다 주면서 상상의 공간을 열어요. 열두 살 시절, 여러분들은 어땠나요? 후훗, 제게도 아련한 추억이 깃든 시절이군요. 아, 정말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버나뎃에게 큰아들 패트릭이 있듯이 제게도 큰아들 윤이가 있어요. 책은 중학생 아이들 눈높이라  단숨에 읽도록 쉬우면서 구성이 흥미로운데요(현재와 과거가 교묘하게 겹쳐지고, 추리적이고 모험적인 내용, 그러면서도 현대의 아이들을 겨냥한 현실감각도 잃지 않아서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책이 배달 온 때가 시험 기간이라서 녀석은 사흘에 걸쳐 틈틈이 읽더군요. 그러다보니 아들과 제가 책갈피 두 개를 꽂고 번갈아가며 읽었답니다. 마치 본문이 엄마와 아들의 관점에서 번갈아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처럼요.


처음에 작가는 엄마 "버나뎃"을 주인공으로 초안을 잡았는데 이것을 문학지도 교수님의 요청에 따라 아들의 관점으로 재구성하여 아들 “패트릭”편이 삽입된 것이라고 해요. 그리하여 이 책이 청소년도서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눈치를 보니 우리 아들도 가슴에 느끼는 것이 많은가 보아요. 한창 친구 좋아할 시기이다보니 자연, 가족을 소홀히 하고 부모님(특히 엄마)에 대해 반항심이 많이 생길 시기잖아요. 시기적절하게 가족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고취시켜, 가정 안에서도 한 사람의 몫을 어엿하게 감당하려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도와줘요.


우리 아들의 관점에서 감상을 쓰자면 패트릭의 이야기가 주축이 되겠지만, 그건 아들 몫으로 남겨두고 저는 엄마 버나뎃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래요(요즘 독후감상문 숙제를 더러 베껴내는 학생들도 있고 하니^^;). 책을 덮고 나서, 제 자신에게 물었죠. 열두 살로 돌아간다면 버나뎃처럼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현재공간(40살)으로 돌아오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겠느냐고요? 40년 가까운 세월 속의 후회스러웠던 부분을 다시 무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도 불구하고 저 역시 지금으로 돌아오고 싶어 환장한다는 말이 정답이에요. 주부된 여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는 게 정신없이 고달파서 맘속으로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주부들과,

가족의 소중함을 배우며 가족(엄마)를 이해하는 마음 한 자락이 넓어지고 싶은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이 재미있을 거예요. /051128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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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1-27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뿔싸~ 제가 일등을 놓쳤군요~ 새벽별을 보며님께서 먼저 리뷰를 올리셨네요^^
에구..작은별이가 돌볼 동생이 없다는 게 좀 아쉽네요.
우린 모든 정황이 우리집이랑 똑떨어져서..우리 큰아들도 집안일을 많이 해야하거든요. 동생 숙제봐주기부터....책 읽더니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집안일을 감당하는 거예요. 짜식이..엄마를 좀 이해해 주네요..으흑.고마운 것..용돈을 듬뿍 주마!

mong 2005-11-27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이의 감상문도 궁금해 지는데요?
책갈피 두개를 꽂고 읽는 책이라~
새벽별님에 이은 진주님의 리뷰도
가슴에 지잉-하고 와 닿아요
(좋은 리뷰를 읽고 이 무슨 만화스러운 댓글인가?ㅎㅎ)

아영엄마 2005-11-27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청할까 하던 책인데 님의 리뷰 읽는 것으로 대신하렵니다. ^^

날개 2005-11-27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라~ 보관함으로 쓩~^^

진주 2005-11-2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윤이가 과연 쓸런지.....ㅡ,.ㅡ
아영엄마님, 언젠가 아영이가 자라면 이 책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몰라요^^
날개님, 앗..효주!

하늘바람 2005-11-28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두 친구 이야기가 리뷰대상자로 되었을 대 이 책도 너무 아쉬웠어요. 음 어여 봐야겠네요

blowup 2005-11-28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 님의 이런 리뷰. 진짜 맛나요.

진주 2005-11-2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전 두 친구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슬픈 이야기라고 해서..^^
나무님, 페이퍼같은 리뷰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