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이 세면 반작용도 센 것일까. 전실 자식을 부려먹고(‘신데렐라’‘콩쥐팥쥐’), 죽이려고 하고(‘백설공주’‘장화홍련’), 모함하고(‘백조왕자’), 내다버리는(‘헨젤과 그레텔’) 등 온갖 못된 짓을 서슴지 않았던 동화 속 새엄마가 ‘천사표’로 바뀌었다. 적어도 최근 출간된 국내 창작 동화에선 그렇다. 새엄마의 사랑이 친엄마에 버금간다. 이른바 ‘계모 신화’에 대한 대반격이다. 너무 착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즉 생동감이 떨어지는 건 아니냐는 말마저 나온다.
"새엄마랑 살래요"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초판 1994년)으로 시작해 최근 '밤티마을 봄이네 집'으로 완간된 이금이 작가의 '밤티마을' 연작(총 3권, 푸른책들, 각 권 120~144쪽, 각 권 7800원)에는 "핏줄을 떠나 정을 나누는, 가족 관계의 미래지향적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이 실려있다.
큰돌이는 가출한 엄마가 돌아올 날만 기약없이 기다리는 신세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 할아버지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큰돌이와 동생 영미는 이유도 없이 집에서 쫓겨나 옆집 외양간에서 밤을 나곤 했다.
하지만 '얼굴엔 곰보자국이 숭숭 나고 손은 커다래 멋이라곤 조금도 없는' 새엄마가 들어오면서 큰돌이 집은 달라졌다. '냄새 나고 헐어서 버리고 싶은 담요' 같았던 할아버지는 집안 어른 자리를 찾았고, '술 취해 있거나 화가 나 있지 않으면 무뚝뚝한 표정만 지었던' 아버지의 얼굴은 '부드럽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술은 물론, 담배까지 끊었다. 갑자기 나타난 친엄마가 영미를 데려가 키우겠다고 했을 때도 영미는 따라가지 않았다.
사춘기 소녀 보라의 새엄마 적응기를 그린 '나의 비밀 일기장'(문선이 글, 정문주 그림, 푸른숲, 200쪽, 8000원)에서도 새엄마의 위상은 친엄마를 능가한다. '이혼한 엄마.아빠가 재결합했으면…' 하는 보라의 희망을 뒤로 한 채 아빠는 재혼을 결심했다. 미장원 놀이를 하면서 새엄마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족사진에서 새엄마 얼굴을 도려내고, 새엄마를 골탕먹이기 위해 동생을 잃어버린 척했는데도, 새엄마는 보라를 감싸주고 다독인다. 결국 보라의 마음은 새엄마에게 넘어왔다. 첫 생리 기념으로 일주일 동안 친엄마에게 가 있기로 했던 보라는 '엄마를 보니 새엄마가 생각났고', 결국 사흘 만에 새엄마에게 돌아간다.
새엄마의 고운 마음을 강조하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친엄마는 이기적이고 무심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보라는 자기 생일날 친엄마한테 전화를 걸지만 엄마는 생일인지도 모른다. 반면 프리랜서 속기사로 일하는 새엄마는 틈틈이 모은 돈으로 보라가 가장 갖고 싶어했던 컴퓨터를 선물한다. 또 친엄마는 재혼 상대인 '대머리 아저씨'가 보라의 면전에서 "같이 살 것도 아닌데 이런 어색한 자리를 앞으론 굳이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도 아무런 대응도 안 했다. 그래서 보라는 '마음속 꽃밭에 핀 엄마에 대한 예쁜 감정의 꽃이 시들까봐 겁이 났다'.
사별 뒤 이어진 재혼 가정에선 새엄마의 희생정신이 더 두드러진다.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유효진 글, 황성혜 그림, 채우리, 120쪽, 7000원)나 '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원유순 글, 원유미 그림, JDM중앙출판사, 116쪽, 7000원)의 새엄마들은 아이가 밥상에서 반찬그릇을 뒤집어엎고, 아이의 거짓말 때문에 남편에게 뺨을 맞아도 화내는 법이 없다.
새엄마의 변신에 대해 '밤티마을 …'의 이금이 작가는 "새엄마에 대한 낡은 틀을 깨 줌으로써 비슷한 상황에 처한 요즘 아이들의 두려움을 없애려고 했다"며 "나와 다른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 반응 중엔 "우리 아이의 짝이 새엄마와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준비물도 제대로 안 챙겨오는 문제아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책을 읽은 뒤 그런 편견이 없어졌다"는 한 엄마의 고백도 있었다. 육아사이트 '해오름'에서 어린이책 상담을 하고 있는 황경숙씨 역시 "늘어나는 이혼.재혼 가정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게 해준다"라고 평가했다.
새엄마는 슈퍼우먼?
하지만 "새엄마를 너무 완벽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수필가 박찬미씨) 는 의견도 만만찮다.
동화 속 새엄마는 못 하는 게 없다. 텃밭을 가꿔 채소를 길러 먹고('밤티마을 …' '엄마가 보고…'), 빨래는 꼭 손빨래로 하고('엄마가 보고…'), 세 살배기 동생을 업고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돈도 벌어온다('… 블랑카'). '새엄마 손만 닿으면 아무리 낡고 허름한 것도 다시 쓸 만한 것으로 바뀐다'며 '밤티마을 …'의 큰돌이는 신기해했다.
또 지나칠 정도로 헌신적이다. '밤티마을 …'의 새엄마는 친엄마가 나타나자 "나만 없으면 애들도 친엄마랑 살 수 있고, 아범도 자식 낳아준 사람에게 마음 끌리겠지"하며 집을 나갔고, '엄마가 보고…'의 새엄마는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봐' 잠적해 버린다.
아동문학평론가 유영진(서울묵동초 교사)씨는 "인물을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그리는 우리 동화의 단점이 드러난다"며 "새엄마도 친엄마와 똑같이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개연성 있는 인물로 그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동안 새엄마가 지나치게 나쁜 인물로 그려진 데 대한 반작용으로 긍정적인 모습이 강조된 것"(이금이 작가)이라며 과도기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들 책에서 새엄마의 외적 조건을 곰보('밤티마을 …'), 장애인('엄마가 보고…'), 동남아 외국인('… 블랑카') 등으로 다소 부족하게 그리는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모자라니까 착하기라도 해야한다는 또 다른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급변하는 가족관계를 생생하게 따라가되,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게 '살아있는' 동화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지영 기자
*** 너희 집은 아빠 없니 우리 집은 엄마 없어
가족이 변하고 있다. 또 너무 복잡해졌다. 이혼.재혼.입양이 늘어나면서 가족간 역할분담도 달라졌다. 요즘 동화책 속의 가족관계를 들여다 보면….
'엄마 따로 아빠 따로'(임정진 글, 허구 그림, 시공주니어)는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사는 건희 남매의 이야기다. '엄마를 만나면 아빠를 놓치는 것 같고 아빠와 살 때는 엄마와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엄마는 어디 가셨니?"라며 묘한 눈빛으로 묻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속이 상하다. "엄마는 아빠랑 이혼한 거지 너희랑 이혼한 건 아니야"란 아빠의 설명이 큰 힘이 됐다.
스테디셀러 '너도 하늘말나리야'(이금이 글, 송진헌 그림, 푸른책들)는 소위 '결손가정'에서 자라는 세 아이의 성장동화다.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함께 사는 미르,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소희,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와 둘이 사는 바우는 서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감싸안는다.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최나미 지음, 정용연 그림, 청년사)에서 불화를 겪던 가영이 엄마.아빠는 별거를 선택한다. 전공을 살려 일을 하겠다는 엄마와 치매 할머니 병시중 때문에 안 된다는 아빠. 가영이는 부모를 이해한다. 부모의 불화 역시 생활의 일부분일 뿐 불행의 씨앗은 아니다. 가영이는 '남들이 우리 집에 대해 어떻게 말하건 나한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불행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호주제의 모순을 드러낸 동화 '나는 김이박 현후'(오시은 글, 유기훈 그림, 푸른책들)의 소재는 새아빠와 현후 사이의 끈끈한 사랑이다. 현후의 이름은 '박현후'. 아빠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새 아빠와 결혼해 동생 '김민후'를 낳았다. 동생과 성이 다르다고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현후. 새아빠는 현후를 위해 이민을 제안하고, 현후는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불편해지는 게 싫다며 거절한다.
이밖에 입양가족을 다룬 '엄마 아빠가 생긴 날'(제이미 리 커티스 글, 로라 코넬 그림, 비룡소) , '엄마 잃은 아기 여우'(이리나 코르슈노프 글, 라인하르트 미흘 그림, 경독)와 기러기 아빠를 내세운 '아빠가 보고 싶어'(김중석 글.그림, 보림) 등도 읽을 만하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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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4 20:51 입력 / 2005.11.04 21:32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