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로 急회춘하신 옆지기!>
머스마가 아기자기하게 꽃도 심고 집안을 가꾸고 앉았는 거다. 옆에서 흘깃 흘깃 보다가 급기야는 '야~ 재미있겠다. 나도 한번 해보자'며 졸랐다. 아들이 어디에 살고 싶냐고 해서 나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선셋 벨리'라는 산이 겹겹이 둘러 쌓인 조그만 마을을 찾아냈다.
호수가 앞에 있는 산 기슭 이층집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진 돈이 적어서 접었다. 하다못해 도서관 옆에라도 살고 싶었는데 형편에 맞춰 집을 골라야만 했다.
"당장은 안 되니 꿈은 잠시 미루어야 해요.
괜찮아요. 처음엔 이렇죠 뭐. 돈 벌어 이사가면 돼요."
아쉬워하는 나에게 녀석은 심즈에 먼저 살아본 주민답게 말했다.
가진 전 재산 18,000$ 중에서 14,000$를 주고 얻은 코딱지만한 우리 집 구조는-작은 욕실 딸린 침실 하나, 거실, 거실엔 주방도 달렸다. 가구도 여러가지 들이고 싶은데 역시 같은 이유로 절약을 해야 해서 최소한의 살림인 침대와 2인용 식탁, 컴퓨터를 들여 놓았다(음식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주방용품과 냉장고와 세탁기는 원래 세팅이 되어 있었다). 다른 가구는 차차 사더라도 집안은 화사하게 만들고 싶어서 적당한 가격선에서 밝고 예쁜 벽지와 바닥재를 고르느라 한참 걸렸다.
"어휴...사람 사는 게 다 돈이예요....웬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지...
엄마, 당장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만 사고 돈 좀 아껴요."
집에 물건을 갖다 놓을 때마다 해당 금액이 술술 날아 없어지는 것이 화면에 나타났다. 내가 예쁜 가구와 앙징맞은 소품들에 한눈 팔면 아들은 단호하게 말렸다. 돈 아끼라고 타박하는 아들. 이건 뭐 엄마 아들이 바뀐 것 같다.쩝. 철부지 딸 시집 보내는 아버지처럼 아들은 살뜰하게 살림 장만을 거들었다. 음... 우리 아들 자라서 언젠가 장가들면 나도 저렇게 말 할까? 신혼은 원래 없이 시작하는거야. 괜찮아, 하나씩 늘여가는 재미도 좋아. 부지런히 돈 벌어 차차 마음에 드는 곳으로 이사하면 되고. 아기 태어나기 전에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아끼고 모아라.이렇게?
"마음은 이팔청춘이라잖아. 가상 세계에서라도 좀 아리땁게 살아 보잣!"
엄마아빠의 은퇴 후 생활을 그려보자고 했으면 노년부부, 적어도 중년부부 케릭터를 정해야 했는데, 막상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게 아니다. 젊고 날씬한 청년이 눈에 갔다. 그래서 나는 군살이라곤 하나도 없고 적당한 근육의 미끈한 몸매로 태어났다. 승마가 취미이고 '친환경적, 검소함, 예술가, 글쓰기, 유머러스함'으로 꽤 좋은 성격도 지녔다. 옆지기도 한 20여년 전으로 회춘하는 경사가! 마당이 생겼으니 털 달린 동물을 키우자는 아들의 바람대로 슈나우저 한 마리 샀다. 털복숭이 이름은 슈. 그런데 이 강아지 성격을 설정할 때 재밌으라고 '멍청함'을 택한 게 화근이었다. 이 멍청한 놈이 신문을 물어 뜯고 가구를 갏아대는 것이다. 의자를 다시 구입하고, 야단치느라 오븐의 요리를 다 태워 먹고 불까지 났다. 119 아저씨, 아니 911아저씨가 와서 엄청 잔소리 했다는.
<멍청한 슈, 너 충성심이 강한 애견이라며? 충성심은 어떻게 했니? ㅋㅋㅋ> 사진www.dog-zzang.co.kr
옆지기가 맨 먼저 한 일은 종묘상에 가서 채소 씨앗을 사는 일이었다. 작은 뜰이 있어 빨래 건조대를 설치하고 개집을 놓고도 텃밭을 만들 공간이 나왔다. 텃밭에 갖가지 채소를 키우고 싶은데 처음부터 너무 일을 크게 벌이면 뒷감당이 안 돼 낭패 본다고 이번에도 아들이 조언했다. " 어! 어떻게 알았지!" 하며 나는 아들의 지혜에 놀랄 뿐이었다. 몇년전에 나는 주말농장 한답시고 열 댓가지가 넘는 작물을 의욕있게 심었었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시작해서 나중엔 감당이 불감당이었다. 무모하게 덤비는 엄마보다 녀석 제법 똘똘한데? 외국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이라 고추와 상추는 없어서 양상추와 토마토 씨앗을 택했다. 샐러드는 원없이 해먹을 듯.
멍청하게 앉아 게임만 하거나 놀기만 하면 패가망신,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 경험치와 기술능력이 올라가니 부지런히 움직ㅇㅆ다. 기술 습득을 위해 책을 사 읽고 인강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한창 젊어 보이는 옆지기에게 돈 벌이를 시켜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직 아무런 기술이 없으니 할만한 직업이라곤 청소부, 커피 판매원, 장기기증.... 장기 기증에 식겁했다. 커피 파는 일로 골랐다. 나는 글쓰기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3류 소설이라도 쓸 수 있는 레벨이 되었다. 가상 세계속에서 나는 깐깐하게 작품을 골랐다. 3류 소설 의뢰도 있었지만 공부에 더 매진하여 드라마 대본을 의뢰받게되는 쾌거를 이뤘다. 드라마 제목은 "빨강머리 앤여사". 짝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목을 급조해서 드디어 나는 드라마 대본 집필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룻 밤 자고나면 옆지기는 커피 바리스타가 되는 꿈을 안고 커피 팔러 갈 테고, 나는 빨강머리 앤여사를 열심히 쓸 것이다. 글 쓰다가 간간이 뜰로 나와서 슈도 쓰다듬어 주고(멍청한 짓만 해서 야단 많이 쳤는데 역시 사랑이 약이 아니겠는가ㅋ)텃밭에 물 주는 것도 까먹으면 안 된다. 지금 새 순이 돋았는데 물도 주고 풀도 뽑아줘야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명색이 작가라면서 책장 하나 없이 딸랑 컴퓨터 한 대로만 글을 쓰다니 너무 안쓰럽다. 옆지기가 돈 좀 벌면 책장과 가득 메울 책을 사자고 상의해 볼 일이다. 오늘은 첫날이라 정신 없이 일만 했는데 살면서 여유를 내어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고 살아야지. 그러나 이 놀이는 오늘로써 끝이다!(시간도 없고 눈도 아프고, 무엇보다 게임에 폭 빠질만큼 내 마음이 여리지만은 않다는 것) 내가 더 이상 와보지 않아도 이들은 희망대로 예쁘게 살아가겠지.
모니터 속의 나는 한시도 게으름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살았다. 그러면서도 행복지수는 높다. 그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새파랗게 젋어서 더욱 아름다운 이들은 이제 갓 살림을 이루어 가진 것 없고 집도 초라하지만 둘은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보고자 하는 꿈으로 행복하다. 살고 싶은 동네에서 큰 벌이는 아니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하며 산다.
우리는 어떠했던가? 삯월세 단칸 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살림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훨씬 많았지만 우리도 행복했었다. 먹고 사는 일이 녹록치는 않았지만 젊었으니 힘차게 일 하고 알뜰히 살림 살아 통장 불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함께하니 고생이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요즘 혼인 풍속은, 신랑이 24평 아파트 정도는 마련해서 장가 든다. 집 살 형편이 안 되면 전세라도 얻어야 하다. 신부는 아파트를 꽉 채울 살림살이들을 종류대로 다 장만한다. 둘은 신혼여행 다녀와서 몸만 쏙 들어가면 불편함 전혀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는 아들이 장가들어도 아파트 장만 해 주기 어려운데, 이 녀석이 언제 공부 마치고 취직해서 신혼집을 살까? 서른 안에 장가가긴 글렀다. "처음엔 이래요. 아끼고 열심히 일해서 차차 좋은 집으로 가면 돼요"라고 오늘 자기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소박하게 신혼을 시작해주면 좋겠다. 갖출 것 다 갖춰서 혼인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혼인하여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림 불려 나가는 재미도 알았으면 좋겠다.20120213ㅇ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