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토란대가 한창이다. 그저께 단돈 5000원을 주고 큰 다발로 하나 샀다. 두 다발이면 일년은 나겠다는 셈에 토란대 껍질을 손톱으로 벗기는 그 모진(!) 작업에도 시종일관 콧노래가 나왔다. 작년에는 깜박하고 그만 토란을 장만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얼마나 토란을 굶었는지 모른다. 육개장을 끓인다던지 꼭 써야 해서 사러 가면 할머니들이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걸 얼마나 비싸게 팔던지!  이 한 다발이면  열 번도 더 사먹고 남을 양이니 그만큼 가계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자신이 좀 알뜰하다 싶은 주부는 시장으로 달려 나갈 일이다. 롸잇나우~ 

 

토란대 껍질을 까느라 손톱 밑이 까매지는 것과 깐 것을 또 잘게 쪼게 햇볕에 말리는 일련의 조련치 않은 수고는 응당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저녁을 먹고 시작해서 밤 늦게까지 껍질을 깠다. 이참에 TV도 실컷 보았다. 바보상자라고 같잖게 여겼던 텔레비전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3인'이라는 유세윤이 나오는 개그코너*를 보며 킬킬거리다 내 모습이 우리엄마나 돌아가신 시어머님과 무척 닮았으리라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옛날 한적한 저녁답이면 티비 앞에선 흔히 빨래한 옷을 개키거나 채소거리를 다듬으시던 엄마 모습이 예사로웠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보고 싶은 엄마......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 계시는 모습이 아닌 '내일 아침밥은 또 뭘 해먹나?' 하는 일상적인 걱정을 하며 눈은 티비에, 손은 연신 채소를 다듬으시던 엄마가 그리워진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그리고 우리 엄마가 병원 신세를 지기 전까지 나는 그분들의 수고를  먹고 살았다. 무거운 토란대를 장 봐오고, 밤 새워 껍질을 까고, 몇 날 며칠 바람과 볕에 널어 말려 만든 먹거리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손 많이 타는지도 모르고 그동안 편하게 그저 받아 먹었다. 채소의 거무스럼한 진물이 익숙했던 그 분들의 투박한 손을 떠올리니 내 손톱 밑의 까만 때가 생뚱하였다. 

 

오늘은 날 궂으리라는 일기 예보와는 달리 햇볕이 종일토록 쨍쨍 나고 소슬바람도 불어주니 토란대가 잘 말랐다. 한 이틀 더 바짝 말려 망에 넣어 서늘한 바람이 사철 통하는 뒷베란다에 걸어두면 갈무리도 끝이다. 토란대 끝물 전에 한번 더 시장에 가야겠다. 손끝 아리게 손질하는 게 엄두가 안 나지만 올해는 두 다발에 도전해 볼 요량이다. 그 정도면 우리 식구 일년은 풍족히 먹을 것이다. 애들이 좋아하는 돼지 등뼈찜이나 감자탕에도 넣고, 육계장같이 특별히 국물을 진하게 맛내야 하는 국물음식, 들기름에 달달 볶으면 소고기보다 더 쫄깃쫄깃 맛있는 토란대 나물도 해먹을 생각에 입맛이 돈다. 가을을 심하게 타느라 예전엔 식욕을 잃었었는데...흠, 마흔 다섯의 가을은 이렇게 오는가 보다. 2011년 9월의 마지막 밤,ㅂㅊㅁ  

 

  

 

 

-사진은 다른 분에게서 빌려 왔습니다 

 

'아3인'이라는 유세윤이 나오는 개그코너* 
이 글을 쓰고 나서 몇 차례 그 개그 프로그램을 보았더니 오류가 있어 바로 잡는다. '유세윤'과 '아3인'은 별개의 팀이었다. 유세윤은 옹달샘팀이고 아3인팀은 (내가)처음보는 개그맨들. 
여담인데, 졸탄이 제일 재미나다고 했더니 이젠 애들이 "엄마 빨리 와요~~엄마 좋아하는 졸탄 나와요" 이런다.에궁~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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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11-10-0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부터 토란이 좋아요. 나이를 먹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저는 게을러서 직접 하는 것은 안하고 매번 얻어오거나 삽니다. 전 조금 덜 말랐을 때 냉동실에 넣어 놓는 것을 좋아해요. 질기지 않아서 좋고, 오래 삶지 않으니 좋아서요. 껍질 벗길때 전 감자칼 씁니다^^;;;;
아주 얇게는 잘 안되지만 좀 하다보면 그래도 꽤 얇게 되거든요. 게으른 아줌마인지라..
그나저나 정겹네요. 엊그제 청량고추 사서 냉동실에 넣었어요. 없으면 아쉬우니까.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하면 그나마 수월한데 혼자서 하면 시간도 더디고 힘드실텐데 싶어서
괜스리 짠합니다.

진주 2011-10-03 18:54   좋아요 0 | URL
청량고추는 어딜가나 비슷한 신세인가봐요 ㅋㅋ 우리집은 워낙 매운 걸 못 먹어서 2000원어치면 1년 먹어요. 저도 냉동실에 넣어 두고 먹지요. 그래서 우리집 냉동실은 꽉 차 있어요. 반디님처럼 토란도 있고요. 가끔은 말리지 않은 부들부들한 맛이 필요하거든요.

감자칼을 쓰시는군요 ㅎㅎ 우리 애들이 아가였을 때ㅋㅋ그러니까 큰놈이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복숭아 한 상자 사놓고 외출 나갔다 왔더니 두놈이 감자칼로 반 상자자 싹싹 다 깎아 먹었더라구요 ㅋㅋ 필러로 감자나 오이만 깎는게 아니란 걸 우리 애들도 알았나봐요 ㅎㅎ

그나저나 무지 오랜만이네요 반디님 방가방가~~~

2011-10-02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3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1-10-0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란이 저렇게나 쓰임새가 많은 식재료였군요. 저는 육개장에만 넣어먹는 건줄 알았네요.:) 저는 어제 데친 열무를 된장에 버무려서 냉동실에 넣었어요. 사촌언니 덕분에 덩달이 같이 한 거지만, 올 겨울은 잘 먹겠다 싶어 맘이 든든해요. 날씨가 추워지니깐, 뭐든 마련해서 넣어 놓고 싶어지나봐요!

진주 2011-10-06 21:17   좋아요 0 | URL
토란은 없으면 없는대로도 살아지지만 한번 그 맛에 길들여지면 꼭 있어야 할 식재료인 것 같아요.
북극곰님 이미지가 달라졌네요? 아이와 곰님 사진???

북극곰 2011-10-10 10:45   좋아요 0 | URL
네~ 4살 된 아이의 돌 적 사진을 대문에 걸어둔 게 그래서 그나마 제가 들어간 사진으로 바꿔봤어요. 하지만 정면을 바라볼 용기는.... :)

2011-10-06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6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11-10-1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이 토란대를 손질하는 시간에 저는 은행을 손질하고 있었네요.^^
우리집 컴퓨터도 어찌나 느린지, 그냥 아예 컴을 끊고 산답니다.
텃밭 농사 지으니, 알라딘 접속할 여유가 더 없어져요.
농사 지은 것 갈라 줘야하고 손질해야 하니......
토란대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떠오르는 건 육계장 뿐이네요.
은행 손질하면서, 은행의 그 역겨운 냄새에도 불구하고 참 행복했어요.
-역겨운 냄새 맡으며 까는 건 남편 역할, 저는 담는 역할만 했지만- ^^
가을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아서...
님도 그러셨겠죠?

진주 2011-10-18 21:15   좋아요 0 | URL
우리집 풍경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부엌창으로 내다 보는 풍경이예요. 부엌창이 제법 크기도 한데 창 너머로 은행나무가 풍성하게 보이거든요. 차 한 잔 마시며 계절별로 변화하는 은행나무를 바라보 ㄹ때장 행복해요.

바로 그 은행나무의 은행을 올해는 저도 좀 주웠답니다.
냄새 정말 역하죠 ㅋㅋ 누군가가 봉지에 겹겹이 싸서 한달 가량 푹 삭힌 후에 까면 쉽다고 해서 우린 뒷베란다에 보관하고 있어요. 양파망에 넣어서 흐르는 물에 흔들기만 하면 저절로 술술 벗겨진다는 말만 믿고 있어요.


텃밭 농사, 요즘 한창 갈무리 하느라 바쁘시겠군요.저도 다시 기회가 된다면 텃밭 해보고 싶네요. 한 4~5평 정도만 농사..음..부러워요.

2011-11-11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3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4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