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 편애하는 마음과 인문학적 시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하루키에 대해서 참 많은 걸 알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 우치다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서 책도 여러 주제로 내었고 한국에도 거의 10권이 번역되었다. 

하루키는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다. 그것도 전세계에서.

그의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이도 많지만 (내 주변에서도 확 호불호가 갈린다) 그의 영향력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의 문학의 특징에 대해서 우치다는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던진 한 마디 "오직 구조밖에 없다"에 강하게 공감한다.

구조밖에 없지만 그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게 새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키의 시대를 좀 더 알아야 하는데 전공투 시절 대학에 가서 공부는 제대로 안했다. 운동에 공감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사람을 죽이는 운동이 되자 대실망하고 떠나 자기 삶을 간다. 재즈바 운영 등.

바로 이 부분 즉 세계를 뒤엎어 보겠다는 거대한 열망이 사람을 밀어 올려 산봉우리에 올라서게 했다면 막상 올라가서 느낀 허망함으로 계곡으로 추락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계곡에는 안개가 가득하고 서로 서로 알아보기도 어려워진다.

그 속에서의 각자 도생이 중요해진다. 세계를 구한다는 꿈 같은 건 이제 잊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는 반복된다.


하루키를 폄하하는 듯 들리는 구조밖에 없다는 비평은 이 대목에서 적확하게 들린다. 그의 소설들을 보면 몇 가지 특색이 있다.

여자들은 강하다. 1Q84의 아오마메는 직업이 킬러다. 반대로 남자들은 유약하다. 초식남의 원조다.

오죽하면 <여자없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의 단편까지 나올까?

이 부분도 일본 고유한 사회현상을 잘 반영한 대목이다. 문학은 자유롭기에 사회학을 앞서간다는 걸 여기서도 실증해보여준다.

다시 돌아가면 하루키의 구조 밖에 없는 이야기는 전세계적으로 소비에트의 붕괴를 통한 이념의 붕괴가 일어나는 지역에서 발생한다. 가깝게는 한국, 유럽에서는 동독 등 세계 곳곳에서 하루키의 문학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는 이야기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본원적으로 해야 하는 기능은 위치잡기다. 지도 없는 세상도 하루키 현상의 배경이 된다. 하루키는 일본의 국어교사 부모에게서 외아들로 장시간 양육되어왔다.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동네에 살았고 부모가 하도 국어(일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거부감이 커서 세계문학을 읽었다고 한다. 그가 일본을 떠나 세계인이 되는 것 또한 부모의 잔소리 처럼 들리는 일본 평론가들의 귀찮게 굴기(대체로 적대적, 한국도 전통문학 전공 원로 교수들이 매우 싫어함)에 대한 거부감이었을 것이다.

가만 되돌아보라 하루키 소설에 부모가 어떻게 그려져있는지? 아무 역할도 없고, 세상에 대한 지도 읽기 기능 등 생존술을 배우지 않는다.

이는 1Q84, 색채없는 다자키.. 기사단장 등 매번 같이 반복된다.


세상에는 부모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부모의 경험이 지금 자기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 약간 크게 보면 골짜기로 뚝 떨어져버린 이들에게 하루키의 문학은 약간의 생존술 훈련이 된다고 본다.

구체적 기술은 다 보이지 않지만 무엇보다 출발점은 자기 치유이기 때문이다.  

그 치유의 구체성은 <다자키.. 순례여행>에서 잘 보인다. 이 책이 한국에서 수십만부의 히트를 친 건 그만큼 사회가 치유가 필요한 이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리해보면 하루키는 소설로서만 보기를 넘어 그 소설이 수용되는 사회의 구조를 보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일본에 뿌리를 두지만 세계적인 몇몇 상품들 처럼 볼수도 있고,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처럼 근대문학이 끝난 자리에 남은 웰메이드 오락으로서의 일본문화라는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근대의 종언은 영웅신화의 종료이고, 방향이 없어진 시대의 각자도생.

하지만 과거가 남긴 구조물이 주는 강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야 생존이 가능해지는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어야 한다는 스토리.


저자 우치다는 하루키 현상을 놓고 다각도로 보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고 그의 관점은 이해를 높이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노벨상은 놓쳤지만 하루키는 노벨상 이전에 권위 있는 카프카 상을 받았고( 그 자신이 카프카도 좋아했다) 트위터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긴 글 읽기의 매력을 알려주는 역할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다. 또 하나의 신작을 만들어내는 그의 마라톤 같은 인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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