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 심행일기 나남창작선 140
송호근 지음 / 나남출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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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 불에 타오른다. 

왕은 끌려내려가서 안위를 채 모른다.

그 와중에 송선비는 허겁지겁 몸을 피해 배를 타고 한강을 내려간다.

그의 행선지는 강화도, 거기서 자신이 품었던 생각들을 모아 연달아 책을 내었다.

왕의 근신이었던 송선비로서는 군중의 폭압이 자신에게 미치기 전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연말연초 우리는 세 권의 책을 연달아 만나게 된다.


첫 책은 촛불혁명의 와중에 박근혜와 송호근 교수의 인연을 정리했다.

한때 대선 선대위원장으로 거명되고 총리로도 수시로 물망에 올랐던 건 사실 별 것 아닌 인연이었다는 점을 매우 강조한다. 

마치 경력사원 자기소개서 다시 쓰기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번째 책부터는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 노조의 귀족적 행태가 향후 한국자동차 산업을 몰락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었다. 현상만 수집한게 아니라 그래도 하버드 사회학박사로서 한국의 미래에 대해 미국산업과 연관지어 꽤 심도 있는 분석을 했다. 실제 현대차 노조는 여기에 반박을 못했다고 한다.

이 화두는 고스란히 5월 대선에서도 활용되었다. 홍준표 후보가 자주 귀족노조 비판하며 문제인과 논쟁할 때 사용한 했었다.

학문은 과거를 설명하기를 넘어 미래를 전망할 떄 유용하다. 

알 낳는 닭을 잡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학자가 계속 통찰을 내놓는다면 그는 분명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더욱 놀라게 한다.

강화도. 

바로 이 소설이다. 형식도 주제도 제법 도전적이다.

컬럼을 잘쓰고 대중적인 소재인 58년 개띠들의 탄식까지 다룬다는 걸 알긴 했지만 소설까지? 그런데 알고보니 송교수는 원래 문학청년으로 심지어 시에도 도전했었다고 한다. 그의 솜씨를 알아본 서울대 김윤식 명예교수는 "자네 문학 해볼 생각 없나"라고 두 번 권유했다고 한다.


그럼 왜 강화도일까?


강화도는 한때 한반도의 수도였다. 고려때 몽골에 맞서 궁궐을 품었고, 조선때도 행궁이 있었다. 그만큼 권력의 피난처로 중시되었다. 이렇게 안전한 섬이었다가 근대에 와서 해양세력들이 밀려오면서 거꾸로 최일선에서 여러 차례 전란을 겪어야 했다.


피난처가 전장이 되는 전환기에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왕이 감옥에 갖히게 되는 시대상도 마찬가지로 전환점이다.

전환기의 경계에 선 인물.


주인공 신헌은 정약용과도 사제의 인연을 맺었지만, 실제 그에게 주어진 군인으로의 임무에는 천주교 신부 체포가 있었다. 

국가 수호라는 막대한 임무가 주어졌지만 그에게 주어진 건 구식대포였다.

백성들은 포대에서 적과 맞서다가 목숨을 통채로 잃었지만 조병식(동학농민전쟁의 고부군수)은 슬쩍 관직에서 도피한다.


거친 바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적에게 포대에서는 일제히 대포를 발사했다. 그런데 한발도 제대로 적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한다. 반대로 날라온 포는 정확히 진지들에 화염을 퍼붓는다. 

진지 하나가 무너질 때 수백명씩 몰살하는 참혹함은 반복된다.


싸우는 법, 사상, 과학이 모두 바뀌어가면서 세상은 새로운 시간속으로 들어간다. 그 경계가 바로 강화도였다.


강화도조약은 그 전란의 말미에 개항이라는 새로운 시대로의 선언을 뜻하는 항복문서였다고나 할까? 강화도를 방휘하던 책임자에서 조약을 맺은 외교 당사자로서 신헌은 소임을 마감한다. 


그 이후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안다.

여전히 변화에 무심하고 과거에 머물다가 벌어진 많은 일들을..


사드를 비롯해 한국에서 벌어진 최근 일들은 한국인들의 시야가 좁아서 바꾸어 말하면 국제정세에 무지해서 자초한 경우가 많았다. 


강화도가 주인공이 된 몽골전쟁,병자호란,강화도조약 등 여러 국난 또한 국제정세에 유달리 무심한 한국인들의 속성이 자초했었다. 


변화에 따른 사회의 영향, 나아가 변화를 내편으로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할런지 등은 모두 사회학의 과제일지 모른다.

이 모든 일들의 뿌리에는 여전히 학문의 유효성이 있을런지 모른다. 

학자는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 같다.


강화도의 포대들을 무너뜨린 이양선의 홍이포는 혁명의 결과물이다. 배를 타고 멀리 멀리 격량을 헤쳐가게 하는 힘 또한 혁명의 결과물이다. 


프랑스 혁명은 기회의 배분에 대한 욕구였다.


그렇게 사회학의 출발은 혁명이었다.

혁명을 만들려는 마르크스, 막아내려는 베버의 논쟁들이 만들어낸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이 격량의 시대에 일말의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보자. 


첫 책 촛불혁명은 사회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격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두번째 책은 혁명의 해법 하나로 현대차의 귀족노조에 의한 봉건시대로의 복귀를 보여준다. 

기회의 창출 및 공정한 배분이 사회학이 제시하는 과제다.


멀리 좌에서 우로 오가며 살아온 한 사회학자의 유랑의 그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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