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이야기 -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아라사키 모리테루 지음, 김경자 옮김 / 역사비평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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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일본열도에서 대만 사이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의 모음이다.

예전에는 왕국이었고 이름도 류큐였으며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다.


고령의 대가야 박물관을 가면 <야광조개국자>가 있다. 조개 하나가 저 먼 바다를 넘어 한반도에 와서 고분속으로 들어갔다가 1500년을 지나 우리 앞에 서 있다. 고대세계의 여러 주인공 사이를 잇는 긴실을 드러내보여준다. 그 먼 바다를 넘어서 왔을 때 이 조개의 가격은 얼마였을까? 궁금했다. 같은 무게의 금? 아니면 철 등.


류큐와 한반도의 관계는 그것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문순득이라는 홍어장수가 바다에서 표류해서 약 10일이 지나 류큐에 도착했다. 환대를 받고 그를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가는 귀환을 도와준 호의를 베풀었다. 이를 제주에 표착한 네덜란드인을 붙잡아 풀뽑기 시킨 조선과 대비시켜보자. 

그런 넉넉함은 교역이 곧 생존인 상업국가의 특징이다.현대의 싱가폴과 홍콩의 편리함과 유사한 셈이다.


국립박물관에서 류큐왕국의 보물전이라는 전시를 했었다. 거기 나온 화려한 의상과 보물은 작은섬이 누린 부의 크기가 정말 대단했음을 알려준다. 이는 류큐가 명나라에게서 조공 무역의 특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방문횟수 등의 제한이 없이 막대한 교역을 하고 이를 다시 주변국에 넘겨 팔면서 벌어들인 부였다. 

명과 가까웠기에 조선침략에 일조하라는 일본의 요구를 명에 흘렸다. 그 덕분에 이미 명은 조선에 일본군이 나타났을때 개략적 상황을 알고 있었다. 반대로 조선은 둔했다. 원래 정보란 다 알면 값이 없어지니 가장 가치가 있는 곳에 먼저 푼다.


그런 류큐지만 임란 이후로 가면 일본에게 정복되고 만다. 그리고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제주도의 국제포럼을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오키나와(류쿠),해남도 이렇게 한중일 세 섬의 공통점을 논의하는 세션이 있었다. 관광산업의 발달 등에서 서로 참조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특히 제주와 오키나와는 전쟁의 피해자로서 역사적 유사성이 매우 컸다.

아름다운 바다를 자랑해서 여행객 특히 오키나와는 스쿠버다이버를 부르지만 그 바다는 또한 적에게 매력을 주어 화란 또한 불렀다.

태평양 전쟁 마지막에 오키나와 군인과 민간인 20여만명이 죽은 전란은 작은 섬에 닥친 과도한 비극이었다. 제주도에 가면 송악산 알뜨르 등 여기저기 있는 일본 군사기지의 모습이 여기 포개진다. 항일운동 기념관을 가면 독립군의 제주 진주 작전이 기획되었지만 아쉽게 무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전란이 벌어졌다면 오늘의 제주의 모습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국가라는 관점으로 보면 역사적 쾌거였겠지만 해당 주민들에게는 끔찍한 살상극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키나와 사람들로서는 자주성, 일본에 강요된 동화, 미국의 지배, 다시 일본 반환 등을 거치면서 많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특히 오키나와 일본 반환은 전후 일본외교의 쾌거였다. 그 이면합의를 다룬 소설이 야마자키 도요코의 <운명의 인간>이다. 


격량 속에서 휘둘리는 작은 배와 같은 운명 속에 인간은 종종 놓인다. 류큐왕국의 침몰은 멀리 보면 한반도 조선왕조의 구한말 모습이 될 수도 있었다. 


가끔 안다는 것이 꼭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하는 물음을 가져보게 된다.

제주 함덕바다에 델문도라는 바다에 툭 튀어나온 카페가 있다. 커피 한잔 놓고 바로 아래에서 파도를 느끼는 건 정말 상쾌한 기분이다. 그렇지만 함덕바다는 고려말 삼별초 정복을 위한 전투가 있었고 43사건에서 처형이 극도로 자행된 비극의 현장이다. 이걸 다 알면 파도 위에 얹힌 피빗이 흘러들어와 커피맛이 싹 사라진다.


오키나와도 거대한 수족관, 해양레포츠의 천국, 산호 바다 다 좋지만 그 위에서의 삶의 비극성을 포개볼 때, 서로 대비가 이루어진다.


오키나와의 운명을 키워보면 한반도도 그렇게 태풍 속 촛불 같은 운명으로 느껴진다. 

최근 카터 대통령에게 방북하지 말아달라는 미국정부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93년 YS 정부의 실책과 막 집권한 클린턴 정부의 견해차 덕분에 시작된 북한 위기에 카터는 결정적 해법의 물꼬를 텄다. 

암투병 하는 노인의 생의 마지막 불꽃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다시 가져올지 미지수다.


그와 반대로 문순득이 당대에 느꼈던 조선인의 왜소한 시각은 여전하다. 

한반도를 놓고 벌어지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자신의 위치도 자신의 역사도 제대로 모른다.

홍준표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은, 바로 그 YS 시절 전란을 만들뻔했던 무모한 모험의 데자뷰다. 

거창하게 미국 언론이 프리드먼의 맥도날드 햄버거 있는 나라끼리 안싸운다는 이론 안 들먹여도 개성공단이 몇배였다면 지금 이 상태가 될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컴퓨터가 조립되는 나라에 굳이 폭탄이 퍼부어질까?

그걸 다 끊어서 전쟁 상태로 몰아넣고 국방비만 늘려가는 박근혜 적폐의 잔존세력의 지지도가 올라감은 그만큼 한국의 과제가 크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약소국이란 한끗 비틀어지면 오키나와나 제주도와 같은 비극속으로 쓸려들어간다. 그 점을 다시 곰곰히 곱씹어보았다.

멀리 보면 희극이라지만 그걸 자기 운명과 포개보면 비극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비극이란 운명의 가혹함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노력의 약소함을 보며 같이 슬퍼함이다.


오키나와에서 한반도까지 주저리주저리 해보았는데 정말 시국은 위중한데 주변의 무지는 답답하다. 

작은 것, 남의 이야기에서도 나의 현재와 미래를 포개보는 훈련을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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