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 최대 갑부 역관 ㅣ 표정있는 역사 1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독특하고 신선한 주제, 깔끔한 표지, 활발한 마케팅으로 잔뜩 기대를 안고 읽어본 책이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만 못한 편이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어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많다. 우선 가장 필요한 영역은 외교다. 칼들고 오는 사람도 말 잘하면 설득해 돌려보낼 수 있다는 것을 고려시대 서희가 잘 보여주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의 영역은 장사다. 머나먼 이국에 가서 이색적 물건을 가져다가 팔면 서로 크게 남는 장사가 된다. 이때도 말과 함께 문화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조선시대 역관들의 활약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평소의 선행 하나를 기초로 명나라 군대를 끌어들인 솜씨도 놀랍지만 오가며 만든 수익으로 부를 쌓았던 솜씨 또한 놀랍다.
가깝게 한국의 최근 역사를 보면 어떨까? 일제 시대가 열릴 때 일본어 빨리 배운 사람들이 행세를 했고 미군이 밀려오자 통역의 위세가 엄청커졌다. 중간에서 적당히 브로커링 해서 한재산 마련도 하고 아예 기업을 통채로 먹어버리기도 했다. 정주영의 전기를 보더라도 동생 정인영이 미군 통역으로 들어가 발주하는 건설공사를 딸 수 있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다.
대한항공을 만든 조중건의 삶을 보더라도 용산 미군기지 주변이나 베트남 현지에서 미군과의 대화를 통해 큰 사업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어학은 상대와의 관계가 두터워지는지 여부와 자신이 그 관계를 어떻게 응용해내는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최근 중국어가 급부상하지만 과거에는 분명 러시아어과 보다 한 수 아래로 치부되고 있었다. 불어, 독어 등에 대한 필요성이 급락하는 것과도 대비가 된다.
어학이 사업과 연결되는 과정은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이덕일의 책을 보면 매한가지 였다고 한다.
저자는 나름대로 역관이라는 직업을 가졌던 여러 사람들의 삶을 역사에서 들추어내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전달하려고 노력은 했다. 그래도 수준이 우리가 알던 사람들에서 확 넘어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역사책의 기술들을 모아 보아서 야 참 다양하구나 하는 느낌은 갖게 해도
막상 내용들이 잘 녹아서 하나의 시원한 줄기를 만들어 보여주지는 못한다.
모으는 노력에 비해 소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최근에 나왔던 장군과 제왕 등 몇권의 책들이 이덕일 다운 글솜씨의 발휘나 문제의식의 깊이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 다시 정약용과 형제들과 같은 수준의 작품이 다시 나올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