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지인 짱구박사님의 프랑스-이탈리아전 관전기입니다. 재미있어서 올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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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지단을 봤을 때, 나는 한참을 웃었다. 이딸리아 수비수의 가슴을 들이받는 그 장면은, 안 그래도 새벽 3시에 일어나 근 3시간을 버틴 비몽사몽의 정신상태로 나의 착각처럼 느껴졌었다. 내가 지금 졸고 있구나, 에이 깨! ... 그 꼴 뵈기 싫은 아르헨티나 심판, 시인이자 체육선생이라던 회색머리 아저씨가 빨간 카드를 꺼내들 때에도 여전히 꿈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그 장면은 다 같이 꾼 꿈이었다. 월드컵 결승전 연장 후반에서 지네딘 지단은 공이 아닌 이딸리아 마테라치의 가슴팍을 들이받고 퇴장 당했다. 이것은 이제 역사적 사실이다.


잠을 못자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나는 머리가 아팠다. 하루 종일 제대로 일이 되지 않았고, 지단이 왜 그랬는지 정말 알고싶어, 생각이 날 때마다 포탈 사이트로 들어갔다. 감질나는 추측기사조차 없었다.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을까.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저녁에는 지단이 이번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는 기사로 이 하루가 마감되었다. 도대체 왜 그런거야? 

상상력을 발휘하면, 오만 가지 상상을 다 할 수 있을 것이고, 비난하건 이해하건 지단의 상태를 진단하라면 이런 저런 분석이 다 가능할 것이다. 나도 나름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인종차별 발언", 이딸리아 말로 "들이받아라~~ 들이받아라~~"라고 하면 혹시 프랑스 말로는 "빛나리~~ 대머리~~"라고 들리는 것은 아닐까? 아님말고... "계속되는 잔 반칙에 끓어넘친 한 성질" 등등 많은 가설을 세워 검증을 해보려 했으나, 사람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걸로 묻어 가야지... 

웬 관심이람...사실 난 지단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던 시기와 지단이 선수생활을 하던 한 시기가 이리도 일치하건만 이 시대 최고의 선수인 지단에 대해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유야 많다. K-리그 골수 팬인 나에게 지단은 천상의 신이었다. 인간계를 깔보는 범접할 수 없으되 그리 존경할만한 인간성은 아닌 듯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희노애락애오욕을 인간과 똑같이 누리던 그런 신과 같은 존재. 조금 비하하지면 축구를 위해 누군가 설계한 사이보그인 듯하기도 하고...어쨌거나 그가 펼치는 환상의 플레이를 중단시킨 김남일에게 나는 환호를 보냈다. 진정 골리앗을 누른 다윗, 그대 이름 김남일!!! 

그런데....그런데...오늘 나는 봤다. 지단이 뚝뚝 떨어뜨리는 눈물을. 그리고 두 세걸음 다가가 마테라치의 가슴팍을 들이받는 그 원한의 동작을... 왜 그랬는지는 차차 밝히질테니 내가 더 이상 어쩌고 저쩌고 할 필요가 없겠다. 내가 여기서 이런 글로 뭔가 이야기해야 한다면, 아마 그런 것일 테다...축구선수는 그냥 축구선수라고. 그냥 운동선수라고...정말 단순하고 순진한 부류들이 대부분인...지단도 그냥 그런 부류의 하나였던 것이다...머리 좋으면 플라티니 처럼 조직위원장도 하고, 마테우스 처럼 감독도 하겠고, 베켄바워나 후일의 홍명보 처럼 축협을 이끌 수 있겠으나, 그래봐야 축구를 소재로 이런 저런 삽질을 하는 것 말고는 더 잘할 것도 없는, 그냥 선수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지단은 시기와 장소의 중요성이 구분되지 않는, 한 마디로 축구적 머리 말고 사회적 머리는 도대체 돌아가지 않는, 아주 머리 나쁜 선수임에 틀림없었다. 참~~나~~, 아무리 머리가 안 돌아가도 그렇지 축구선수가 십 수년 현역생활을 마감하는 은퇴경기에서 갑자기 웬 레슬링 동작으로 퇴장을 당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저녁을 먹고서야 나는 절절한 마음으로 그를 이해했다. 아, 나는 지단을 정말로 이해했다. 나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 지단, 그대는 정말 진정한 축구선수였다.
 

월드컵 결승에서 상대 수비수를 머리로 폭행해 퇴장당한 골든컵 최우수 선수 지단. 우리는 이 명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비상식적, 때로는 반상식적이라고 보아 당연한 결론에 대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우스개 소리지만, 나도 종종 그런다. 아무리 동네축구고, 매일 경기하는 사람들이지만, 경기를 하다보면 도저히 참기 힘든, 내 안에 있는 모든 폭력성이 한꺼번에 솟음쳐 올라올 때가 있다. 원인과 과정이 어떠했건, 이 즈음의 나는 축구가 단지 폭력의 수단일 뿐 도무지 스포츠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럴 때 축구라는 스포츠는 아슬아슬한 일탈의 선을 그으며 경기와 폭행을 구분할 뿐, 나를 제어할 어떤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뭐, 그러다가 고성 삿대질에 멱살잡이까지 가는 건 다반사 아니던가. 

그렇다. 우리가 아는 축구는 분명 공을 갖고 노는 스포츠이지만, 그것은 경연과 격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른 구기 스포츠가 신체의 접촉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반면, 공을 사이에 두었을 경우,  축구는 격투를 금지하지 않는다. 격투를 금지하지 않는 축구의 극단이 미식축구라면 사커는 아주 소극적인 방식이지만 격투를 인정하고 용인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축구는 격투의 반대편, 즉 공을 갖고 노는 "경연"이 있을 때만 격투를 정당하다고 판정해준다. 내 정의가 맞다면 지단은 축구의 최고봉에 서 있었다. 그리고 지단의 폭력성은 지극히 정상적인, 길들여지지 않은 축구의 한 면일 뿐이었다.  

지네딘 지단, 그는 분명 아트사커로 대표되는 최고수준의 개인기를 보여준 선수였다. 그의 축구를 예술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전혀 이의가 없다.  펠레? 마라도나? 클루이프? 호나우두? NO!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선수는 분명 지단이었다. 축구가 혼자 하는 족구가 아닌 이상 지단은 축구가 어떤 식으로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입증해낸 선수였다. 가슴에 손을 얹고...그가 뛰었던 몇 몇 이름난 경기를 아무 해설 없이 보고 있으면, 뒷골을 꾹꾹 쑤시며 등골에 소름을 일으키는 그 육체적 작용을 거부하고 거부하다, 한숨이 나오고 눈가에 이슬이 맺힐 수밖에 없다. 그는 축구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사람들의 가슴에 아로새긴 진정한 축구영웅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 편에는 정확히 거친 반칙으로 상대를 가격하고 그래서 퇴장 당한 지단의 모습이 있다. 때로는 당했지만 분명히 상대를 일어날 수 없게끔 만들어버릴 정도로 거칠었던 지단의 폭력도 분명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 언급했듯이 그것이 축구다. 그는 축구를 했을 뿐이다. 폭력이 축구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직접 공을 차면서 뛰어보면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래서 빨간 카드도 있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다행스러웠던 것은 치사한 언어폭력이나 얼굴에 침을 뱉는 따위의 폭력은 지단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그는 그러지 않았다. 차라리 머리로 가슴을 들이받을지언정... 

오늘 새벽부터 저녁까지 머리 속에 틈이 날 때마다 떠오른 지단의 모습에 대해 축구를 가운데 세워놓고 결론을 내리려는 내 사색은 사실 잡념의 모듬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 갖가지 일들 중에 아주 특수하고 특별한 일 중의 하나일 뿐이라, 뭐라고 규정하건 며칠이 지나면 사람들은 다 까먹을 것이 틀림없고, 내 분석은 그야말로 지나가는 헷소리가 될 것이다. 글을 맺자...글을 맺으며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하루 종일 상념처럼 머리 위를 오가던 것...내가 과연 지단을 이해하는 것인가... 

그렇다. 나는 지단을 이해한다. 지단은 거의 나처럼 행동했다. 뚜껑 열리던 그 순간 지단은 경기에 몰입해 있었다. 은퇴경기고 월드컵 결승이고 따위는 뭐래도 상관없었다. 뚜껑이 열리고, 지단은 누가 내 뚜껑을 열었는지를 쳐다 보고 살펴 보았다. 내 뚜껑을 열어젖힌 놈이 앞에 파란 유니폼을 입고 서 있었다. 뚜벅뚜벅 다가가서 머리로 들이 받았다!!! ... 내가 지금은 이렇게 산다만, 내가 지단 니 나이 때는 정말 그렇게 했단다..지단, 나는 너를 이해한다. 그걸 참으면서 남은 10 여분을 다 뛰고 눈물 짜면서 고별인사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너는 정말로 사람답게 그 순간에 충실했던 것이다. 뭘 고민하고 생각하란 말인가, 축구선수가... 

p.s. 녀석, 순진하기는... 내가 너였다면 얼굴을 들이받았을 건데, 근육 가득한 운동선수 가슴팍을 니 머리로 받는다고 뭔 일이 나겠니. 너도 알다시피 그 놈은 멀쩡하게 일어나 승부차기까지 다 찼단다. 앙심을 품고 경기를 하다가 뒤꿈치를 밟는 짓을 하지 않고, 그렇게 면전에서 깨끗하게 경고하는 니 인간적인 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감동 먹었단다..지단..너, 사이보그 아니다, 사람이고, 축구선수 마자... 아듀 지네딘 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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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1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재밌네요
전 이해까지 하는 건 아니지만요..^^;;
어쨌든 프랑스인들이 축구를 졌다는 사실보다 지단의 행동에 더 놀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던 뉴스멘트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사마천 2006-07-1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성하신 분이 재미있는 분입니다. 전에 PC통신에서 역사동호회 같이 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