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파편들 - 도널드 그레그 회고록
도널드 P. 그레그 지음, 차미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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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한민국은 혼돈속에서 항해중이다.


불안 속에서 후회가 밀려오는데, 선장이 이 모양이었다는 걸 다들 몰랐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화제가 된 2007년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정보보고서에 나온 <최태민에게 X와 마음을 다 지배당했다>라는 글을 생각하게 된다.

역시 강대국은 다르구나 하는 격차를 느끼면서 그들은 여기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핵심을 압축해서 알수 있었을까 궁금하게 된다.


답은 그들의 정보기구에 있다.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잠재적 전시상태이고 그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은 CIA가 활약하도록 하고 있다.


이 책 <역사의 파편들>은 CIA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면서 한국책임자와 대사를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의 회고록이다.


성취욕 많은 젊은이로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다양한 공작에 몸 담았다가 나중에는 미국의 안보협의 기구 NSC에서 중책을 맡았다.

예전에 한국정보부KCIA를 다룬 김당 기자의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는 원조인 CIA를 알게 된다.


그레그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하다고 한다.

미국이익을 최우선하는 정보요원에서부터 한국에 대한 높인 이해로 인연깊은 지한파, 아예 친북인사로까지도 이야기된다고 한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지는 책에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정보요원으로서의 활약상이다.

책을 보면 베트남전쟁 중에 적의 군사간부를 납치해서 정보를 취득해내고 이를 통해 대규모 폭격을 전개하는 활약상(?)이 나온다. 이 과정을 찬찬히 보면 저자는 심리에 상당히 능통한 인물이다. 그리고 상대를 알기 위해 베트남의 고전 소설을 탐독해낸다. 

이렇게 그는 근무지마다 현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노력한다. 일본에서는 술집을 드나들며 아가씨를 상대로 일어를 익힌다. 이렇게 익힌 일본말로 박정희와 골프를 칠 때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잘하네 하는 칭찬까지 들었고 개인적 유머감각 등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그의 지한파로서의 인연이다.

유능한 정보전문가 그레그가 한국에 있을 때 잊지 못할 활약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김대중이 납치되어 바다에 떠 있는 상태에서 목숨을 건지도록 도와주게 된다. 당시 대사였던 하비브와 공조를 통해 KCIA의 공작을 중단시킨 이 사건은 소신과 순발력을 알게 해준다. 

베트남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역할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라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는 한국의 민주화에 쉽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래서 김대중과는 오래 오래 깊은 인연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그레그의 지한파로서의 활약은 이어진다.

남과 북의 관계가 가장 진전된 건 노태우시대의 남북협상이다. 이 과정은 박철언과 노태우 회고록에 꽤 자세히 나오는데 여기에 더할 것이 있다. 바로 그레그가 미군사령관을 설득해서 팀스피리트를 중지시켜 준 점이다.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남과북은 화해를 위해 커다란 발걸음을 디디게 되었다.

이는 후기에 나오는 문정인 교수의 평론의 내용들인데 한국외교사에서 참고할만한 성공사례일 것이다. 


이외에도 그레그의 한국과의 인연은 다양하다. 대사시절 관저로 침입한 대학생들을 해병대를 동원하지 않고 조용히 경찰력만으로 처리한 점도 그렇다. 정보요원하면 우선 권총이 떠오르는데 그는 남한의 역사를 잘 이해하기에 되도록 선처를 부탁했다. 그 중 한명이 정청래 국회의원이었고 나중에 그레그는 대학생들의 사과를 흔쾌히 받았다고 한다.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에도 그의 발길이 닿게 되었다. 

처음 접촉 시도에 대한 북의 지도자들의 반응은 까칠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왜 이렇게 오락가락하고 거친지에 대한 항의가 많다. 그레그는 그들에게 찬찬히 북한이 미국의 첩보활동이 철저하게 실패한 지역이라는 점을 주지시켜주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안보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주면서 역으로 미국정책의 불규칙한 행보에 대한 납득을 시켜준다.

상대를 깊게 이해하면서 특히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자신의 이해관철을 해내는 솜씨가 대단했다. 협상가는 힘을 뒤에 가지고 있지만 앞에서는 항상 존대를 해야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아쉽지만 이런 노력들은 남의 정권교체, 아들 부시의 아버지 부시와는 전혀 다른 성격 등 여러 요인으로 큰 성취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6번에 달하는 그의 방북을 통한 노력은 한반도를 사는 우리들에게 기억할만한 친절로 남게 된다.


혼돈속의 한국, 아니 한반도 전체가 긴 혼돈이다.

혼돈을 헤쳐나가려면 냉철한 시선이 필요하다.

마치 미국이 박근혜의 실체를 매우 일찍 알고 있었듯이 우리 또한 남과 우리를 냉철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좋으나 싫으나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다. 남과북의 화해 또한 미국을 끌어가면서 진행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시각으로 우리를 보는지 잘 알게 해주는 책은 드물었다. 

이제 한반도는 남한의 탄핵정국을 넘어 트럼프의 중국과의 대립 및 북핵 대응을 앞에 두고 있다. 더욱 거칠어지는 파도를 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또한 상대를 알고 설득해내는 힘을 키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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