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 44 - 완결
아기 타다시 지음, 오키모토 슈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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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채워진 유리잔에서는 은은한 향이 퍼져나온다. 

잔의 주인들은 발그랗게 달궈진 볼을 하고 시선을 한 곳으로 모은다.

이윽고 각이 선명하게 잘생긴 매너남이 등장해 싯구 하나를 읊어낸다. 

와인의 신 바쿠스는 그렇게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고 마음을 열고 관계를 이어간다.


자 이제 와인을 찾아서, 그 긴 대장정이 끝났다.

2005년에 시작해서 10년 동안 쉬지 않고 주인공들은 격투를 펼쳤다.

그 10년을 돌아보면 한국에서 와인은 엣지한 트렌드였다. 

그리고 이 만화는 그 트렌드의 속에서 교양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새롭고 귀한 와인을 만날 때, 

어 이 와인은 하면서, <신의 물방울>의 그 와인 하는 감탄사가 붙는다.

초반기의 와인은 대중적으로도 쉽게 접근 가능한 경우들이 있어서 선물용과 함께 와인이 등장한 장면이 같이 언급되어 세일즈포인트로도 작용했다.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을 동시에 강타한 이 만화는 무엇을 남겼을까?


그냥 술 한잔일뿐, 이라는 사고 속에서 소주와 맥주의 폭탄비율을 논하는게 한국적이라면

와인은 깊이가 있었다.

한잔 한잔이 다름은 만든이의 개성이고 시절의 은혜이고 발에 놓인 땅의 연륜으로부텨였다.

천지인이라는 세글자는 와인을 탄생시킨 어머니들이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한잔에서 다시 그 시절과 그 땅과 그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하나의 여정이된다.


와인은 일반술과 다르게 오래 가고, 그 안에 역사를 담는다. 심지어 땅의 역사도 담는다. 

굴요리와 잘 맞는 <부르고뉴의 샤블리> 와인은 알고보니 예전에 바다여서 굴껍질이 땅에 녹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앎의 지평을 넓혀갈 때 내 앞의 와인 한잔은 달라져 보인다.


선배 덕분에 독특한 와인을 맞본적이 있었다. 마데이라라고 포르투갈의 태평양 식민지였는데 걸쭉했다. 뜨거운 태양 속에서 버텨내려면 가벼운 도수로는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는 선배의 한말씀 

이건 나폴레옹의 와인이야, 

세인트헬레나에서 가까운 곳에서 나는 유일한 와인이거든. 아하.. 다 잃고 좁은 섬에 가두어진 유럽위에 군림했던 갈기 잃은 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또다른 보르도의 고급 와인들은 나폴레옹을 그렇게 시궁창에 밀어 넣은 탈레랑이 소유했던 곳으로 그의 추억과 고급스러운 탐욕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와인은 이렇게 알면알수록 더 신기해지는데 작가가 10년 동안 사람들을 끌어온건 넓은 와인의 지식과 더불어 호흡 긴 스토리텔링이었다.


스토리의 핵심은 싸움이고, 두 경쟁자들의 위에는 이제는 죽은 아버지가 있다.

아들과 아버지, 영원한 숙제다.

처음에는 재산과 명예의 싸움으로 보였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인정투쟁이 된다. 보세요 이렇게 성자했죠 하는 듯한 와인 초보자인 주인공.

그리고 서서히 종장으로 치달아가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인정투쟁을 본다. 바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려보이는 삶의 정체성에 대한 인정욕구다. 


술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바쿠스는 췌장암으로 대가를 요구했다. 술은 그렇게 인간을 줄이게 만들지만, 바쿠스의 향연들은 현실을 뛰어넘는 재기로움으로 인간들에게 깊은 추억을 남긴다. 신과의 거래는 그렇게 매번 신기하고 비싼 대가를 치르기에 인간들은 기대를 하게 된다.

소믈리에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감상을 더욱 깊게 하고 언어라는 인간의 도구로 포획하여 안겨주는 봉사자다.

주인공들의 쟁투 속에서 피어나는 핏빛 같은 언어들은 작가의 손에 담겨 우리에게 길게 남겨진다.


와인은 결국 마셔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추억을 함께 할 동반자들을 곁에 만드시기를 성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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