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
로버트 루빈 & 제이콥 와이스버그 지음, 신영섭.김선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루빈은 골드만삭스 회장을 거쳐 클린턴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장기간 정치와 경제의 권력의 중심에 있다. 미국의 국무부가 전세계 정치를 총괄하듯이 재무부 또한 전세계적인 경제 통치를 전개하고 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 경제는 호황을 거듭했지만 후반기에 동남아, 한국, 러시아 등에서 연쇄적으로 외환위기가 닥쳤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은행들이 휘청거리는 대형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는데 루빈은 이 해결과정에서 그린스펀과 보조를 맞추며 많은 성과를 냈다고 한다.

IMF 당시 한국의 위기를 놓고 미 정부 내에서 의견이 대립했는데 국무부 쪽에서는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이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지원을 요청했지만 모럴 해저드를 걱정하면서 한국에 냉정한 원칙을 강요한 인물이 바로 재무부장관 루빈이었다. 이곳 저곳 회의는 다니면서도 최종 의사결정은 미루었고 자기의 원칙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끊임 없이 불만을 이야기했다. 당시 그의 입장은 이 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한국 정부가 도청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정신을 차릴 것이니까." 라는 표현은 그만큼 그가 사석에서도 강경발언을 지속했다는 의미다. 결국 국무부의 설득에 의해 지원을 해주기로 했지만 은행들을 설득하면서 한편으로 한국에 많은 압력을 가한다. 이 당시 크루그먼 등 비판자들은 미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국에 대해 체제 전환을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더해서 고금리를 한국에 강요하는 식으로 밀어 붙여서 많은 기업들의 도산을 통해 헐값 매각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당시 한국에 활약한 골드만삭스의 기업 사냥을 잊지 말기를.

그가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 하고 있는데 잘 들여다보면 미국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한국 지원에 참여 했던 은행들에 대해서도 말레이지아의 부총리였던 안와르의 묘사가 재미있다. 나쁜 채무자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나쁜 채권자도 있다. 책임을 한쪽에만 몰 것이 아니라 나누어 져야하는데 만약 한국이 러시아처럼 디폴트를 선언해버렸다면 미국 은행들의 연쇄 도산 문제도 거론될 정도 상황이었다. 이 때 루빈은 이런 상황을 여러 관계자에 설득하면서 IMF 자금을 동원한다. 당시 미국의 지분은 20% 수준이었지만 의사결정 권한은 일방적으로 행사하고 있었다. 일본의 한국 지원 노력을 차단해버렸는데 여기에는 일본의 YS 정부에 대한 반감도 일부 작용했지만 본질은 미국이 나서는데 중간에 끼지말라는 것이었다. 
사카키바라와 같이 일본의 경제통들도 미국의 일방 주행을 피하기 위해 AMF와 같이 독자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하는데 이 때 미국의 얼굴색이 변했다고 한다.

루빈의 자화자찬은 계속 이어진다. 막대한 지원금이 동원되는데도 국민의 세금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추가적 부담은 없이 고민은 덜고 생색은 잔뜩 내고 이득은 한 껏 챙겼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이 멕시코에 대해서 강요한 조건도 매우 냉혹했고 지원 금리 또한 매우 높아서 멕시코는 상황이 호전되자 석유 팔아서 신속히 갚아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도 멕시코나 한국의 고된 현실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당시 지원을 논하는 협상자리에서 미국 의원들이나 고위 관료들은 이 참에 돈 받는 나라들이 미국 정책에 반하는 행태를 보일 수 없도록 강제하자고 주장하는 대목도 루빈의 책에 나온다. 그래 바로 이게 그들의 본색이었다. 은행의 해외 매각이나 여러 가지 조치들의 궁극적 의도는 미국 자본의 이익 확대였다.

협상조건이 가혹함을 호소하는 피협력국들에게 루빈은 계속 쉬운 지원이 만들어낼 모럴 해저드를 경고한다. 하지만 이 원칙은 자국에서 연달아 발생한 LTCM의 파산과 같은 부정적 현상에는 적용되지 못한다. 헤지펀드의 파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양의 통화를 그린스펀과 협력해서 만들어 냈고 그 결과는 계속 확대되어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되고 만다.

또 루빈이 자리를 물러나 시티은행에  경영자로 참여하자 미국식 경영시스템의 부정적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막대한 벤처 거품이 곧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당시 시티은행의 책임자는 한분기 앞만 내다보고 어떻게든 쥐어짜며 실적 맞추기 경쟁만 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우리도 잘 알 듯이 엔론을 비롯한 막대한 회계부정이었다. 과연 미국이 타국에 대해서 높은 수준의 모럴을 이야기할만 했을까?

루빈의 이야기는 백악관, 월가, 전세계 금융시장과 정치지도자를 오가며 이어진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어 놓지만 다 듣고 보면 역시 미국은 자기의 이익을 너무 앞세우는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국 재경부장관에 대한 독설도 이어지는데 어느쪽이 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의 협상능력, 위기 관리 능력, 세계를 보는 관점이 부족하다는 점은 미국과 잘 비교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자기 돈은 별로 안쓰면서 마음 대로 세계를 좌지 우지 해야 한다는 권력의 과잉 상태를 주장한다. 이를 무시할수는 없지만 무조건적인 우호적 시각으로 따라가는 것도 결코 현명하지 못 할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오만함은 최근 달러의 약세를 통해 업보를 받고 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국제정치에서 작은 국가가 생존하는 법은 현명한 지도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책에 더해서 한마디 하면 오역이 지독하게 많다. 이상과열이라고 통상 번역되는 그린스펀의 말에 대해서 쉽게 이해가 안가는 표현으로 번역했고 증권거래에 있어서 포지션이라는 단어도 도대체 말이 안되는 수준으로 번역을 해내어 버렸다. 지적하고 싶을 정도로 불만 있는 번역은 한둘이 아니라 수십군대에 이른다. 출판사의 편집능력이 함께 의심되는 수준이었다. 일반인의 눈에도 이렇게 띄는 오류라면 전문가가 보면 얼마나 많이 쏟아져나올까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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