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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ㅣ 삼국지 (민음사)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문열 대담을 보았다.
시대와의 불화를 겪은 베스트셀러 작가.
이문열은 영광과 그늘, 애정과 증오를 모두 가졌다.
수재로 태어났지만 철저한 연좌제 덕분에 늘 그늘에서 어렵게 헤쳐나가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고시공부에 실패해서 동아일보 편집기자를 3년 했지만 안식처는 아니었다.
그리고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로 나선 다음 인생은 새로운 길이 열렸다.
한풀이 하듯 마구 작품을 쏟아내면서 글이 세상에 주는 영향을 잔뜩 누리다가 결국 전환점을 맞았다.
처음 세상이 이문열의 작품을 환영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이문열 작품이 가진 독특한 색깔들이 있었다.
우선 지적세례가 작품 속에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경우는 프로이드가 쓴 논쟁적 모세에 대한 글을 잘 이용하였다. 아마 당시 원서로 이 책을 읽었던 문인들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직 한글로 소화되지 않은 서구적 지식조류들을 잘 인용해내면서 충격을 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김용옥의 경우도 하버드에서 공부한 썰들을 풀면서 공부하지 않던 학계에 자극을 주었다. 그러다 미움 사서 퇴출되었지만.
다음으로 남로당과 연관된 아픈 가족사가 시대가 겪던 아픔과 서로 포개졌다.
80년대는 해방 이후의 좌우대결이 반복된 시기였다. 사실 공산주의라는 운동은 청년들의 작품이다. 이문열의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북행을 선택하였을 때 37세였다고 한다.
가족사에서 겪어야 했던 감정은 고스란히 문학에 현실감을 주었고 이게 당대에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대박은 바로 이 책 삼국지였다. 현대적 고전해석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오래 오래 넉넉한 군자금을 주었다. 인세라는. 아마 지금은 그 만한 인기를 끌 문인이 나오기도 어려울 것 같다. 다들 모바일에서 파편화되고 짧은 글로 소비하니 말이다.
이렇게 애정을 담뿍 받았던 이문열이지만 목소리를 키우면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김윤식 등 평론가들과도 강하게 맞받아쳤는데 점점 정치와 연결되면서 파열음이 커져갔다.
한나라당 계열의 전국구 제의가 오가고 보수신문에서 좌를 질타하는 논설을 열심히 쓰고 하는 활동들이 많았다.
거거디 더해서 그의 고향은 상당히 보수적인 곳이다. 정치만이 아니라 전통 유교적 의식에서 말이다.
공지영과의 일화도 한몫했다. 이혼이 훈장이냐는 날선 비판은 공지영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덕분에 페미니즘과 남녀평등이라는 새로운 시대 조류와도 거꾸로 가는 셈이다.
이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시대는 자연스레 이문열과 거리를 두었다.
이후 나왔던 문학작품들의 대중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호모 엑스탄쿠스 그 책은 보다가 덮어버렸다. 한 시대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에 대해서 너무나 모욕감을 주는 정치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그 사건이 터졌다.
바로 화형식이다.
저자와 독자의 가장 비참한 만남이고, 이혼도 아니고 가족살해와 같은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이문열은 고집을 꺽지 않았다.
사실 난 이문열에게 다른 역할을 막연히 기대했었다.
분단시대의 종식을 위해 가족 분단을 겪었던 그가 문학적인 지향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사실 북에 건너간 아버지는 몇 번에 걸쳐 자식과의 만남을 원했다.
황석영, 북에까지 직접 간 그는 의외로 이문열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이문열이 사실 배려심도 있어서 IMF 떄는 김우중 회장을 직접 찾아가 어려운 문인들에게 현금지원을 타내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김우중 회장은 참 많은 걸 베풀었는데 안타깝다.
황석영도 미국에서 도피생활할 때 제법 많은 달러를 건넸다고 한다.
어쩄든 황을 통해서 북의 가족들 소식이 전해왔다. 그런데 왠걸 아버지가 건너가 재혼하고 자녀 다섯 낳고 잘 살았다는 소식에 통음을 금치 못헀다고 한다.
그러더니 더 이상 북으로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는 백화제방이었지만 북에 대한 아주 넉넉한 포용심은 김대중 정부때 반짝했을 따름이다. 이 떄 만약 이문열이 문학적 상징물을 만들었다면 꽤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리라고 가정해본다.
하지만 이문열의 선택은 보수였고 반북이었고 그냥 거꾸로 가버렸다.
그러니 그의 불화는 결국 빠르게 변해버린 시대에 적응 못한 낡은 명문가 의식으로 치부해야 할까 보다.
이제 시대는 변했다. 작가의 가슴의 깊게 남은 상처도 서서히 아물고 있고 독자들도 좀 더 관대해지고 있다. 작가는 작년에 신장을 암으로 절반 이상 잘라냈다고 한다.
남은 시간이 급속히 줄어드는 만큼 작가도 우선순위를 정해나간다고 한다.
그 맨 앞줄에는 과거 연인들과의 추억담을 문학화시키는 작업이 고려된다고 한다.
사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작품 하나는 바로 <젊은날의 초상>이었다.
거기에 나온 부자집 따님과의 연애담과 파국. 참 우스운 이야기다.
아마 그런 이야기로 기대가 된다.
작가란 결국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어서 계속 사랑 받는 것이 정말 가장 큰 승리인셈이다. 시대와의 불화에 대한 심판은 그렇게 먼훗날의 독자들에게 미뤄두고 작가는 다시 원고지를 펼쳐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