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별명 중 하나가 건달 정부다.
이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붙여준 사람은 바로 서울대 경제학과의 원로 좌파경제학자 였던 안병직 교수다. 386 운동권의 이념적 지주 역할을 했던 장본인의 비판이기에 노 정부도 쉽게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 원로학자가 과거의 생각을 바꾸면서 이렇게 냉정한 쓴소리를 던질까?
먼저 건달의 정의를 살펴보자. 쉽게 생각해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으면 건달이다. 그럼 노무현이 해야할 일은 무언가. 대통령으로서 월급과 사회적 대우를 받으며 대한민국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주어진 일은 돈 값을 하는 것이다.
막대한 세금을 지불하느라 허리가 휘청대는 국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 그의 의무다. 그럼 벌써 집권 말기가 되가는 이 시점에서 참여정부가 내세울 공적이 얼마나 될까? 그 공적이 많다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후보들이 대통령과 당에서 거리를 두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FTA를 보더라도 청와대에서 나온 비서관은 임기 중 실적 없기에 강박증이 걸린 노무현이 앞뒤 안가리고 몰아붙인다고 비판한다. 그는 심지어 노무현이 FTA의 파급효과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고 한다.
건달이 갑자기 일까지 열심히 하려고 하면 더 문제가 생긴다. 제일 위험한 것이 멍청한 사람이 부지런하려고 한다는 것 아닐까.
이 대목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김영삼 정권 말기의 OECD 가입 추진이었다. 이제 선진국 다 된것처럼 급작스럽게 제도를 업그레이드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인다고 했던게 어제 같다. 하지만 이렇게 투자를 자유화하는 속셈에는 각종 사업을 벌리고 그 대가로 이권 받아 챙기는 사악한 정치권과 재벌의 뒷거래가 있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한보철강과 이동통신을 비롯한 각종 분야의 과잉 투자는 한국을 IMF로 몰아갔다.
그 모든 근본에는 경제를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임기중 실적 강박증에 빠진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있었다. 이 잘못이 오늘 다시 반복되지 못하리라는 법이 있을까?
물론 사법고시 패스에 노동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노무현이 멍청하다고 단정짓기는 쉽지 않다.
탈무드를 보면 사람의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말을 논리 정연하게 하는 사람들이 꼭 남의 말을 논리 정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드물다. 사실 말은 논리만이 아니라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높이를 맞추고 가슴을 열어야 한다.
최근 벌어지는 현대차에 대한 검찰 조사는 이제 정몽구 회장의 구속까지 치닫고 있다.
죄야 밉지만 그를 구속시킨다는 접근 방법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전에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강력 지지한바 있는데 그 사안에 비해서도 이번의 검찰의 구속 품신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사태를 보면서 또 떠오른 기억이 있다. 바로 김영삼 말기의 김우중 실형 선고 사건이다. 당시 임기 후반으로 넘어가며 재벌도 야당도 별로 말을 듣지 않자 김영삼이 벌인 쇼가 재벌들의 줄기소 였다. 삼성 이건희를 비롯해 굴지의 재벌 총수들이 검찰과 재판소를 오가며 수모를 당했고 가장 엄한 벌을 선고 받은 김우중의 충격은 매우 컸다. 이는 곧이어 대우의 세계경영으로 무작정 확대되어 버렸고 그 결과가 세계 최대의 파산사건 중 하나가 되어버린 대우몰락이었다.
검찰은 늘 법을 엄정히 집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통령의 리더십 약화에서 나온 사회적 기강해이(?)를 검찰이라도 나서서 잡아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는게 사실이다. 권력은 자신의 무능에 대해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는 비정한 논리가 나오게 된다. 그래서 전두환은 수시로 친위쿠데타를 언급해 김대중의 불출마선언이라는 항복을 끌어냈고 김영삼은 재벌을 법정에 세우고 나아가 전두환 노태우까지 감옥에 보냈다. 이 자기 방어 논리가 이번에 또 다시 나오고 있다는 씁쓸한 감상이 먼저 들게 된다.
물론 법은 엄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법은 때로 힘 있는 자를 잘 비켜간다. 최근에도 정태수, 진승현이 풀려나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은 어찌하여 수천억, 수백억의 돈을 날려 먹고 이리도 잘 돌아다닐까? 거기에 비하면 그래도 한국의 자존심으로까지 기업을 키운 정몽구나 이건희가 낫지 않을까?
물론 재벌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올바르게 처신하고 살아 온 것은 아니다.
노무현과 현대의 악연은 정몽준의 단일화 뒤집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초선 의원 때 노무현이 현대 노조에 가서 지원 발언 했다가 현대의 언론플레이에 호되게 당했었다.
솔직히 요즘 처리를 보면 아직 노무현의 그런 감정들에서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이건희를 오랫만에 만나고서도 말 한마디 안하고 지나가는 꼴이나 정몽구에 대해 매정한 모습을 보면 솔직히 자본에 대한 증오가 느껴진다.
재벌 그들의 부정한 행위를 미워할수도 있지만 개같이 벌어들인 정주영의 돈이 결국 북으로 들어가 고향의 가난하고 굶주린 어린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 돈줄 끊으며 정주영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것이 바로 노무현이었고 당시 법무부장관이 바로 강금실 아니었나?
물론 노무현도 한국 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한국 부동산 값을 올려서 나라 전체의 부동산을 팔면 프랑스를 여섯번 캐나다를 여덟번 살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이 정도의 부 창출은 이건희나 정몽구가 반도체와 자동차 판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냐고 자위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를 전혀 모르는 소리다. 한 나라가 보유하는 자산의 가치는 그 나라가 창출하는 외국에 대해 경쟁력 있는 생산물의 가치와 비례한다. 한국에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없다면 부동산 가치는 단번에 사상누각이 될 수 밖에 없다. 1960년대 허허벌판처럼 말이다.
경제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지 않다는 노무현, 그런 그가 지금 하는 행동이 자신의 말과 얼마나 부합되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건달, 그 소리가 듣고 싶지 않다면 제발 건달짓 좀 그만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