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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나를 남의 눈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이미 우리는 자신에 대해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걸음 나아가 남이 자신을 본 것과 자기가 본 것의 차이를 받아들기가 쉽지 않다. 특히 그것이 약점일 경우는 더욱 어렵다.
박노자 선생은 한국의 근대를 돌아보며 자신이 느낀 바를 정리해서 한권의 책을 내었다.
그 곳에 나온 여러가지 생각들은 학교를 다니며 혹은 위인전을 통해 우리 마음 깊이 자리잡은 가치관이다.
민족성이 발아되고 성장해서 키워져나가던 시기가 구한말에서 식민지, 분단체제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외국의 문물을 모방하기 급급했다. 특히 당시 서구가 추구하던 제국주의 체계 속의 우상들을 고스란히 모방하기도 했는데 그 속에는 위인전과 함께 종교도 포함된다. 제국주의의 가치관은 무엇일까?
한국 7,80년대는 이상은 크되 현실적으로 힘이 부족한 나라였다. 식민지의 아픈 경험에서 나온 피해의식은 곧 우리도 강한 것을 가져야 한다는 적극적 자세로 바뀌었다. 그래서 치고 받고 싸우는 권투에서 세계챔피언이 나오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다면 모두가 내일처럼 함께 기뻐했다.
이런 사고방식을 역사에 투영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바친 이순신 장군, 외적을 물리친 많은 장군들은 자연스럽게 우상으로까지 떠 받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정복자가 나오려면 수 많은 전쟁을 거쳐 피정복민으로 몰락한 더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숭배하는 영웅에는 분명 희생이라는 그늘이 존재한다.
바로 그것이 근대의 그늘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근대적 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한국사회의 가치관에서 힘 없는 자는 무시당한다. 장애인, 여성, 노동자, 빈민, 호남, 지방대학 등 수 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이를 고착화시키는 구조가 너무나 강하다.
군대를 동원한 강압적 폭력이 유신 속의 실미도와 80년 광주의 비극을 만들었어도 총든 놈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이 깔렸다. 정신대원들의 희생에 대한 위로금을 가로채 포항제철 만드는 돈으로 돌려버린 영악함을 보고도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한다.
이런 자세는 나아가 똑 같은 미국사람을 대할 때 흑인을 무시하거나 베트남 등 동남아사람에 대한 멸시로 고스란히 발현된다. 그 결과는 바로 어글리한 코리언이다.
물론 박노자 선생의 시각에 모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나 평화주의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간디가 된다면 모를까 모두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중간쯤 어디엔가 서로 좋게 생각할 수 있는 타협점도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힘이 너무나 없던 시절 그나마 보여준 저항은 동정을 받지만 이제 한국도 그렇게 작고 약한 나라만은 아니다.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달려오던 때에 비해 이제 한번 쯤 남의 눈으로 차분히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 하나의 좋은 계기를 이 책이 마련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