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서두칠,한국전기초자 사람들 지음 / 김영사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나니 한국사람들이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97년 77일의 파업으로 품질은 엉망이 되고 불량품만 잔뜩 쌓이자 거래선도 설레 설레 머리 흔들면서 외면하였다. 김영삼 말기에 벌어진 과잉투자로 기업의 부채는 수천프로에 달하는데 회사의 이익은 늘어날 기미가 없었다. 기술개발은 뒤쳐져 있었지만 아무도 위기라 생각하지 않았고 해외로 내보내는 특허료에 대해서도 별로 민감하게 느끼지 않았다.

이런 기업이 소유주가 바뀌어 대우그룹으로 넘어가면서 신임사장으로 부임하게 된 서두칠 사장은 부임 첫날 새벽부터 회사를 방문하게 된다. 아무런 가식 없이 그의 눈에 들어온 현실은 비참한 수준이었고 서로간의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한발한발 기업을 바꾸어나간 역정이 여기 담겨져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삶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이 책의 주인공들이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일 것 같다.
하지만 한국사람에게는 저력이 있다. 오늘 매출 대비 이익율이 얼마 이하고 덕분에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비전이 없다는 컨설팅사의 보고서가 있는 반면 더 열심히 일해서 매출을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서두칠식 사고방식도 있다. 이 대목에서 김우중이 해외 돌아다니면서 동구권 자동차기업 인수할 때 보여주었던 면모가 딱 떠올랐다. 아 이게 당시 대우식 해법이구나.
어쨌든 제조설비를 늘리지 않고 매출 늘리려면 제조공정에서 나오는 불량율을 줄여서 완제품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은 연구, 현장 등 구분 없이 모든 분야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올바른 비전의 제시가 CEO의 주요 임무라면 서사장은 분명 성공적으로 이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자신들의 머리를 과거의 투쟁에서 모두의 삶으로 전환한 이들의 노력에 의해 수율로 대표되는 생산성은 올라갔다. 더불어 연구팀들은 그동안 뒤쳐졌던 각종 신제품 개발에 매진해서 하나씩 히트작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은 아마 하이닉스와 대우조선해향 등 많은 워크아웃 기업들이 겪었던 것과 유사할 것이다. 하이닉스와 대우조선 등에 대한 혁신 스토리가 당장 책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용은 이런식일 것이다. 하이닉스는 공정에 투자할 자금을 더 이상 빌릴 수 없었고 대우조선 또한 dock를 늘릴 수 없었다. 물러서는 것은 곧 죽음이었고 개개인에게도 뼈아픈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금전적 대규모 신규투자는 없었지만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발전해야 하는 이들 기업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인간의 잠재력이었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렇게 되묻기를 수십번 반복하면서 공정의 개선을 통해서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것이다.

원래 기업에 가면 capa라고 해서 생산한계를 정한다. 그런데 이는 이론적 수치이지 현실에서는 늘 바뀌어간다. 그 숫자를 바꾸는 것은 역시 사람의 아이디어다. 일본의 자동차산업이 미국에 대해 뚜렷하게 생산성 우위를 거두는 것 또한 현장의 개선 아이디어가 잘 반영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숫자에 치중한 경영 리더십은 발휘하지만 막상 이런 노력은 덜 기울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타난 한국적 경영혁신의 모델을 보면 나름대로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전기초자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이어져간다. 적어도 이 책이 다루는 기간동안 서사장의 업적은 화려하게 빛났다. 하지만 일본 대주주와의 의견차이로 사장에서 물러나 지금은 또 다른 기업에서 경영혁신 이론을 현실과 접목하고 있다.

축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한국사람들은 때로 놀라운 성과도 보인다. 단 그것은 분명 서로 서로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한방향을 나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우리 앞에 새로운 비전을 줄 리더가 있고 제대로 된 리더를 알아볼 다중들의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광신에 가까운 맹목적 지지에서 냉철한 비판적 인식에 기초해 공감대를 유지해갈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이번은 아니지만 다음번에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6-04-12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보셨습니까!? 진짜배기죠. 이 책을 읽을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 당한 뒤에 남은 직원들이 울고 불면서 "살아남은 자들의 힘을 보여주자"던 제일은행 다큐멘터리도 비슷한 시기에 봤는데... 이 책의 글들이 더욱 감동적이고 심금을 울리더라구요. ^_^

사마천 2006-04-1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네요. 하여간 이름은 그 전에도 알았지만 이만큼 훌륭한분인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