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화의 사회학 - 만화사적 접근을 통해 본 경쟁력의 기반 서남동양학술총서 29
정현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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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만화를 보면 소재의 다양성과 표현의 치밀함에 놀라게 된다.
아동,소년소녀물에서 출발해서 성인들이 관심가지는 진한 사랑, 험한 결투들로 넘어가고
정치(정치9단),경제(은과 금) 등 무거운 주제와 음식(맛의 달인),그림(갤러리 페이크) 등으로 자유롭게
누비고 다닌다. 특히 인간의 심리에 대한 세세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에 늘 감탄을 멈추기 어렵다.

이런 만화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는 무엇일까? 만화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생각해보는 게 이 책의 주제다.
우선 만화가 발표되는 매체로 잡지와 단행본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잡지는 일정 주기로 발간되고 회사의 편집부의 의도가 많이 반영될 수 있다. 수백만부의 발행 부수를 자랑한 소년 점프의 경우 건전한 기풍을 주제로 삼고 작가를 유도했다고 한다. 대규모 위력을 발휘하는 매체에서 성장할 수 있지만 반대로 아주 전문화된 곳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카이지로 유명한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도박관련 잡지에서 시작한 것은 좋은 예다.
우수한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만화작가에 대한 사회적 대접 또한 좋아야만 한다. 5000명에 달하는 작가들의 활동 이면에는 분명 만화가로서 국민훈장을 받았던 데즈카 오사무의 활약이 머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이현세와 같은 일류 만화가들이 검찰의 손에 의해 범법자 취급 받는 한국의 풍토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일본만화 칭찬하면 민족주의적 태도로 시비거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 분들에게 먼저 이런 불합리한 풍토에 대한 애정부터 빨리 거두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충고하고 싶다.

만화도 일종의 연예 사업이라 미디어 믹스가 중요해진다. 만화로 만들었던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캐릭터와 게임으로 포장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중요하다. 건담이 TV시리즈에서는 적자지만 완구 회사에서 꾸준히 서포트하면서 롱런하고 최근에는 아예 온라인 게임의 모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구조 덕분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캐릭터화에 성공한 작품은 둘리, 허영만의 날아라 슈퍼보드, 마시마로 이렇게 세가지 뿐이라고 한다. 하긴 카트라이더와 같은 게임 캐릭터가 초등학생들 가방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게도 한다.

최근 스크린쿼터 개방 논쟁을 보면서 노무현까지 나서서 이만큼 키웠으면 이제 독립하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키우는데 본인이 기여한게 있나 갸우뚱 하는데 과거 만화산업이 일본만화에 참담히 무너진 모습을 상기시키는 글을 읽게 되었다. 한때 수많은 대본소를 만들며 호황을 누렸는데 여기에 쉽게 적응하느라 스토리 개발 없이 반복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장시스템을 만들어 부수만 늘리다가 일제히 몰락해버린 한국만화의 비참한 모습이 나온다. 당시 몰락에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일본만화였다. 그들은 굳이 한국만화를 몰락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일본에서 유료독자들의 수에 의해 충분히 성장한 작품성 좋은 만화를 싸게 공급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국만화산업은 휘청하게 된다.
지금도 드라마 등에서 보여준 한류가 전혀 먹히지 않는 분야가 바로 만화 산업이다.

어쨌든 문화산업에서의 경쟁력 논의는 한두가지 요소만으로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똑 같은 우행이 영화에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 책으로 돌아가서 보자면 소개서 보다는 학술논문과 유사한 체제로 되어 있다. 읽기가 아주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흥미를 계속 끌어나가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감안해야 한다. 일본 만화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아주 생생한 느낌이 들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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