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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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는 제법 화제가 되고 있다.

소설 안팔리는 시대에 몇만부를 찍어대고 저자 장강명은 여기저기 일간지 인터뷰에 등장한다.

조선 앞에 붙은 헬조선 현상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소설을 다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먼 옛날과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1600년 즈음 벌어진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도자기 전쟁이라 부른다.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 붙들려가 도자기 산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 역사가 안 가르치는 대목이 있다. 조선 도공들을 기술에 따라 일본에서 매우 후한 대우를 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조선 도공들은 사명대사 등의 회유에도 조선으로 회귀하지 않았고 심지어 조선으로 살짝 들어와 가솔을 챙겨 다시 가는 사태가 있었다.

또 당시 함경도에서 왕자들을 잡아 넘긴 이는 아전 국경인으로 조선인이었다.

헬조선의 원조는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이었다.

원인은 재능있는 이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였고 왕실과 관료의 탐학이 지나쳤다.


최근 내 주변에는 한국의 반도체 엔지니어들에 대한 중국의 구애 소속이 많이 들린다.

연봉도 들어보니 두배를 쉽게 준다. 세율이 틀리다고 계산 다시 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개인으로는 잘 되는 일이지만 사회로는 핵심 산업이 무너진다는 우려가 든다.

이때 임진왜란의 도공이 떠어론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삼성전자가 1위는 하고 있지만 생태계를 이루는 주변회사들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중국은 파고 들었다. 조사도 꽤한 상태다.


과거와 현재, 부분과 전체를 두루 보자.

이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핵심은 노오력은 무지 강조하면서 인간답게 대우하는 데는 무척 인색한 한국인의 민낯이 속속 드러난다.

미래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지 않는다면 도자기 전쟁에서 참패한 조선의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점은 분명하다.

그때보다 훨씬 커다랗고 돈 많은 중국이라는 상대가 정면으로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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