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과 제왕 2 - 중원의 고구려, 제왕 이정기
이덕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해서 한동안 논란이 많았다. 앉아서 당할 수 없다라는 인식이
과거 타민족과 대결에서 활약했던 조상들을 찾아나서는 열풍을 불게 만들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니
거꾸로 중국에서 활약했던 한민족의 선조를 찾는데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동안 알려졌던 인물로는 고선지가 유명한데 이 책에 거론된 이정기는 고구려계 유민으로 거의 동시대에 살면서 독자적 왕국까지 건설했던 존재였다.
삼국사기 등 한국의 역사서에는 당에서 활약하다 돌아온 장보고와 비견되어 이름 정도만 간략히 나왔었다.

이덕일은 당대의 사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같이 중국대륙을 놓고 경쟁하던 인물들 속에서 이정기의 활약상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려고 시도 했다. 쭉 읽어 본 소감은 새로운 대상을 찾았다는 점에서는 신선하지만
서술의 과정에서 중국의 사서에서 크게 벗어난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 사관의 시각이 화이관에 기울어 있던 관계로 왜곡되었던 기술을 바로 잡는다는 의의는 있었지만 그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당대의 사회가 겪게 된 변화는 이민족의 본격적 진출과 함께 보다 근대적 사회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고선지 시절에 보여준 활약만 놓고 보아도 티베트를 넘어 아랍까지 진출하면서 활약했지만 몇십년 사이에 역으로 북방민족에게 밀려버리는 형세가 된다. 개방적이고 발전적일때는 확장 정책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지만 교역이든 정복이든 한번 관계를 넓혀 놓게 되면 상대방을 마음대로 떼어놓기가 어렵게 된다.
즉 지나친 성장정책이 내부 동력을 약화시켜 빛 좋은 개살구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 당대의 모습이엇다.
어쨌든 변화를 주체적으로 소화하지 못한 당제국이 급격히 붕괴하면서 만들어진 권력의 공백에서
그동안 정복을 통해 이주시켰던 이민족이나 북방경비를 맡겼던 이민족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영역을 잠식해버린다. 그 일환으로 고구려계 유민의 활약속에서 이정기라는 인물이 태동하게 된다.

이정기가 세운 왕국을 보면  절도사의 번진 답지 않게 60여년을 지속했고 가장 크게 영토를 누렸지만 어차피 힘으로 만들어진 정권으로서 한계가 존재했다. 창업자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한데 권력을 다음대 그 다음대로 물려주려고 하면 매우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안록산, 사사명 등 반군의 수장들이 창업은 가능했지만 이를 지속하지 못한 것은 자체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못 믿고 신하와는 더욱 못 믿어서 서로를 죽이려드는게 당대의 사회였다. 이정기가 죽자마자 투항자를 비롯해서 반란이 나오게 되며 급격히 약화되는 것 또한 이러한 구조였는데 이를 극복할만한 특별한 시스템 수립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딱 하나 장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이덕일이 여러차례 언급하는 세금이 적고 균등했다는 부분이다. 하지만 당왕조 또한 기존의 균전제를 양세법으로 바꾸는 등 체질을 개선해가게 되니 이런 부분의 우위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세력은 점차 약해지다보니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으로 귀결된다.

고대사 관련해서 한동안 히트를 했던 이론이 신라왕조가 선비족 모용씨 계열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중국의 사서들이 이 이론을 근간으로 동북공정이 아니라 한반도 공정까지 나선다면 모양이 우스워질 것 같다.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한때 중국을 지배했지만 그걸 중국사로 보아야할지 몽골사로 보아야할지 구분이 애매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고구려계 유민의 활약이 대단했던 부분이 있지만 한국사라는 맥과는
다른 흐름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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