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폐지할 것이라는 예측은 예전부터 했었다. 정권 초기에 이미 폐지하겠다는 언급을 했고
이창동이 장관되더니 입장을 급선회하면서 더 이상 말릴 사람은 없어졌다.

물론 폐지하지 않는다고 지금 한국 영화계가 가진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폐지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개방이야말로 대세라고 하는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개방을 강요하는 미국이
왜 크라이슬러가 파산직전으로 몰렸던 80년대 자동차산업을 보호하려고 일본에 막대한 통상압력을 넣었는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강제로 자율적 수출 규제를 부과하고 나아가 환율 변화를 통해 일본의
수출을 강제로 억제하던게 당시 상황이다.
또 최근 부시도 집권하자마자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한 세이프가드를 만들어서 원성을 듣게 했다.
이런 단순한 사실 몇가지만 상기해도 무조건적인 개방이 선이라는 주장은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한걸음 나아가 장하준의 분석을 살펴보면 개방론이란 주로 당대의 가장 선진국이 자신감이 넘칠 때
주변에 강요하는 논리고 보호론은 후발주자로서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쪽이 주장한다고 한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서 보면 한국이 과연 모든 산업을 보호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무조건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이 어리석은 만큼 영화산업은 무조건 개방해야 하는가 답하는 것도 그리 현명하지 못할것이다.

한국 산업 중 자동차는 그러한 보호를 통해 성공을 하고 있는 반면 항공의 경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단기간 보호해야 할 대상은 성장 잠재력이 강하고 향후 세계시장에 경쟁력이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영화산업이 너무 약해서 보호해야 하는지 아니면 앞으로 잠재력이 꽤 있기에 한시적으로
보호해야 하는지를 묻는 쪽이 더 좋을 것이다.

먼저 영화산업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돌아보면 그동안 쿼터가 기여한 부분은 적지 않다. 우선 영화를 만들 자금의 상당부분이
영화업자인 극장주의 손에서 나왔다. 이들이 어차피 의무상영이라는 족쇄가 있어서
꽉 차지 않는 극장의 좌석을 해결하려면 좀 더 재미 있는 영화를 만들도록 후원하는게 득이 되었다.
대표적 감독이자 제작자인 강우석의 경우에서 보면 첫번째 손잡고 후원을 받는게 바로 이런 극장주의
돈이었다.

그렇게 푼돈으로 어렵사리 한두편 만들어가는데 가장 큰 족쇄는 역시 제작비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였다.
투캅스를 만들면 경찰이 반발하고 여승이 등장하면 불교단체가 난리치고 오세암이라고 그려냈더니
기독교 단체가 보이코트하는 것이 바로 한국영화의 현실이다.
특히 정치 코미디의 경우 죽은 독재자의 아들이 소송까지 걸고 이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는 희한한
사태도 나타난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는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영화공간의 넓이 또한 그리 넉넉하지 못한다.

이러한 여건속에서도 다양한 감독들이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자 갑자기 돈이 들어온다.
삼성,대우 등 재벌의 돈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CJ,오리온 등 식료품과 과자팔아 먹던 기업들이
현금 동원력을 무기로 진입한다.
멀티플렉스 극장을 늘리고 고객을 위한 마케팅을 하면서 배급력을 키워 나간 이들의 공도 크지만 반대로
돈되는 것 아니면 별로 후원하지 않는 과도 작지 않다.
강우석의 경우 따르는 후배들에게 통크게 후원도 하지만 한번 찍히면 철저히 밟는다면 악평도 고스란히
따라다닌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역시 그가 대표로 있던 배급사는 일종의 권력이 되어버리고 만다.
헐리우드의 직배로부터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배급권력으로부터 자유도 필요한 부분이다.

어차피 영화산업에서 돈은 필수적이다. 자본의 육성 또한 필요한 부분이지만 현재의 정권의 경우 전체적인 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 시절은 그래도 IMF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수천억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고 스크린쿼터를 고수하면서 일본문화를 개방해서 한편으로는 역으로 시장확대라는 긍정적인
기반도 닦았다고 평할 수 있다.

헐리우드는 왜 이렇게 스크린쿼터에 집착할까? 혹자는 직접 영화관을 지어서 자국의 영화를 많이 틀어
돈벌려고 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는 한류의 확산으로 상징되는 한국 영화의 부상에 대해
싹꺽기라고 생각된다. 전세계적으로 헐리우드 영화의 점유율이 높지 않은 경우는 딱 3곳 프랑스,일본 그리고 한국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한국영화는 이제 한류 바람을 타고 동아시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별로 돈들이지 않는데도 이정도면 더 커지면 어떻게 위력발휘할지 모르니 이제 제어를 해야겠다는게
아마도 그들 생각일 것이다. 그러면 막바로 적의 본토로 진출해 공략할 필요가 있구나 하고 요구하는게
스크린쿼터 폐지 주장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영화 점유율이 지금 정해진 쿼터를 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상대방의
저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은근 슬쩍 다른 성과를 위해 희생을 시키는 의도일 것이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지금 로컬 시장에서 개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시장을 넓혀나갈 수 있는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할 것인가는 지금 기로에 놓여 있다.
한국이 진정 그러한 성장을 원한다면 다국화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외국진출을 줄여서 미국과의 대립을 줄여나가는 게 오히려 좋을 것이다.

물론 상대방은 무척 강하다. 제1의 경제대국이고 자국에 여러가지 서비스 시스템을 훌륭히 갖추고 있다.
타국에는 적자 보지 말고 부실기업 처분하라고 강요하면서 IMF를 통해 구조조정 요구하지만 자국이 적자를 보이면 열심히 종이 찍어서 타국에 넘긴다.
어차피 세상은 공정하지 못하다.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 만들었다고 침공 당한 것인가?
그런 거대하고 별로 공정하지 못한 미국에 대해 맹목적으로 가치를 추종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현명할리가 절대로 없다.

노무현은 폐지하고 미국과 FTA 맺으면 대단한 성과가 난다고 열심히 홍보한다. 일자리 몇개 등등
홍보자료는 솔직히 거슬리는 수준 뿐인데 한번 묻고 싶은게 서비스 산업에서 개방만이 경쟁력을
키운다고 생각하는가다. 때로는 적당한 보호와 육성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분명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데
솔직히 노무현에게서는 아무리 봐도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동료 유시민이 취직은 알아서 하는게 아닙니까라고 말하듯이 영화도 알아서 커야 하는것 아닙니까라고 되묻는 것 아닐까?

노무현을 자주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곰곰히 따져보면 주한미군 재배치를 비롯해서
분담금 등 여러 부분을 보면 그는 말이 많은데 그 말의 값을 치르기 위해 뒤에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인간이다. 겉으로는 생색내는 것 같지만 부담은 결국 커져서 돌아오는 것인데
몇년 해보더니 돈이 없으니 세금 더 주세요라고 한다.
영화 문제를 놓고 접근하는 방식 또한 그렇게 신통치 않은 것 같아 다시 한번 안타깝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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