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정의를 훔치다 - 박홍규의 세계 의적 이야기
박홍규 지음 / 돌베개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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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서로 상반되는 듯한 의미의 두 글자인 올바름을 나타내는 의와 도둑이라는 적의 결합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두 글자를 붙이는 주체가 서로 다르다.
도적은 분명 그의 질서에 반하는 행태를 보고 체제가 붙여준 글자이고
의자는 아마 그를 동경하는 민초들이 붙여준 글자인 것 같다.

원래 질서 자체는 정의롭기 보다는 오히려 힘에 의해 강제되는 측면이 많다.
덕분에 로마, 대영제국 현대에서는 미국에 의해 구현되는 질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정하지 못함에 대한 불만이 잠재워져 있다는 점을 알게된다.
가깝게 오늘의 이라크, 한국에서는 효순,미순양 사건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이러한 질서에 대해 과감히 자기 목숨을 걸고 저항하던 집단들이 존재한다.
크게 되면 혁명의 선구자이고 작게 되면 동네를 주름잡는 의적이라고 한다.
이들의 활동은 오래 기억되는데 그 과정에서 일종의 변질이 발생한다.
원래 있던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 담기는 것이다.
덕분에 로빈훗은 실제 존재 보다 시대에 맞추어 국왕의 권력과 맞서려는 다양한 사회계층의
시각과 가치관이 반영되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박홍규 교수께서는 잘 드러내 보여준다.

보다 후대로 내려와서 러시아의 혁명운동의 선구자인 푸카초프나 스텐카라친이 카자흐 출신으로
소외된 농민운동의 발전이라고 보여준 것이나, 바다의 해적들이 군대의 해산을 통해 만들어졌고
내부 운영이 민주적이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시대를 넘나들다가 현대 미국으로 오면 아주 실존적인 인물들이 나타난다.
빌리 더 키드와 같은 인물들을 놓고 철도와 은행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압박이 당시 남과 북의
치유되지 않은 전쟁 후유증에 더해서 신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잘 묘사한다.
은행은 북부의 괴물 자본이 교묘하게 남부의 선량한 농부들을 침탈하는 최전선이다 보니
은행강도는 곧 영웅이 되고 만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들이 전설이 되어 오늘날도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 다시 살아온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잡지에 꾸준히 연재된 내용이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 의적의 대표작으로 하면 수호전을 꼽을 수 있는데 깊게 다루어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질서를 개인에게 부과하고 싶은 체제, 때로는 그 질서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싶은 개인이 있는 한
의적의 신화는 결코 사라지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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