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연산조 시대 바야흐로 문화혁명이 일어났다.
출신이 아니라 재능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재능을 마음껏 선보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시장바닥에서 푼돈 벌어들이려고 아까운 재주의 단면만 보이던 각지의 예능인들이
일제히 모여서 최고의 솜씨를 뽐내게 된다.
당시 조선의 연산왕은 가까운 일본의 경우 각 분야에서 최고의 솜씨를 닦은 사람은
귀천을 불문하고 명인 호칭을 붙여서 높이쳐주었기에 사회가 고루 발전된다는 사실을
벤치마킹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조선의 문화계에서도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장안의 기생 중 최고 솜씨를 발휘한 녹수가 왕의 후궁으로 발탁되는데
이어서 광대 중 최고 솜씨를 발휘한 궁길이도 벼슬을 받는다. 무려 종4품이라는
당상관의 지위에 올라서게 된다.
조선 왕 중에 이렇게 문화인을 우대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연산왕의 후원책은 관객의 수준을 단시간에 높여버린다. 시정의 평민들에서 왕과 후궁
더불어 고위 신료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 이어지게 된다.
여기에 발맞추어 광대들 또한 조직화가 일어난다.
궁중의 후원을 받아 풍부해진 자금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가 생겨났다.
그 우두머리 장생이는 최고의 예능인들을 뽑아 훈련시켰고
높아진 관객의 지위와 수준에 따라 극의 성격 또한 풍자극에서 정치시사극으로 올려버린다.
당대의 관료들은 세조의 찬탈 이후로 권력남용이 매우 심했다.
전두환이 깡패짓하고 나서 군인이나 권력자들이 각종 인사청탁과 뇌물수수를 마음대로
자행했던 것을 돌아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이렇게 비대해진 조정의 권력자들은 툭 하면 유교를 명분으로 삼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때 장생이는 각종 정치시사극들을 제작하여 이들 관료들의 행위를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덕분에 멀리 보면 민중문학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들이 연이어 나왔고 사회적 파장도 컸다.
평안감사 뇌물수수 실태 고발은 죄가 많았던 형조판서의 자진고백과 퇴출을 가져오게 된다.
그동안 왕에 대한 언로가 조정신료들에 의해 차단되었지만 이제 새로운 정치시사 프로그램과
이를 방영하는 채널이 형성됨에 따라 언론의 백가제방 시대가 열린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시장바닥의 민초들이 가졌던 여론이 고스란히 왕에게 전달되는 정치 혁명이
발생된 것이다.
광대 극단의 소재와 기교는 점점 확장된다.
중국 경극을 벤치마킹해서 후궁들의 왕의 사랑 쟁투기를 만들었는데
이게 불똥이 잘 못 튀어 연산왕이 선대왕 후궁들을 죽이게 하는 비극을 만들고 만다.
연극과 현실이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버린 결과다.
그리스 비극처럼 카타르시스를 통한 정신의 고양이 아니라 직접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선동극이 되어버린 꼴이다.
당시 관객 중에 연산왕의 할매가 있었는데 급작스러운 혈투에 놀라 사망하고 만다.
이렇게 현실에서 점차 비중을 확대하는 문화예술계의 발전에 대해 조정의 신료들이
무리를 지어 반발하게 된다. 궁길이에 대한 암살 기도는 그러한 반발의 일환이었는데
일단 몸을 던진 동료 문화인들의 희생에 의해 보호될 수 있었다.
연산왕은 창작의 자유를 통해 만들어진 백가제방을 발전시켜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 대한
수출을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을 만들려고 한 자신의 의도가 너무 곡해되었다고 생각한다.
후일 조선이 도자기 산업에서 일본에 뒤쳐지게 된 것 또한 제작을 담당한 도예인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것이 근본 이유다.
문화 상품 또한 제작자들의 수준이 올라가야 걸작이 나오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료들에
대해 불만이 쌓인다. 가까운 선왕인 세종대왕이 노비 출신인 장영실에 대해 고위직을 주려고
했을 때 그렇게 반대하던 것이 조정 신료들 아닌가. 궁길이에 대한 높은 대접 또한
문화인의 사기를 앙양시켜 조선의 문화를 아시아 곳곳에 퍼져나게 만들 한류를 만들려고 한 것인데
너무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참 안타깝게 느끼지만 여기서 물러설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자유로운 시대를 기득권층은 강하게 거부하게 된다.
후일 성군이라 꼽히는 정조 또한 문체의 자유로움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유가 매한가지였다.
문체의 자유로움은 권위를 부정하게 되고 이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도 잘 나타난다. 웃음을 가져오는 문학이 종교적 경건성을
위협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 희극 부분을 불태우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조선의 신료들이 보기에 풍자극을 계속 놔둔다면 신분의 상하도 없는 혁명이 일어나고 자신들이 쌓은 권력이 다 무너질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연산왕에 대한 반란과 함께 광대들의 숙청이 일어나고 질서는 예전으로 돌아간다.
멀리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장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모여 음란패설을 포함한 시대비평을
보고 웃었는데 그 관객에 엘리자베스 여왕도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조선에서 연산왕의 시도가 실패로 결말지어진 덕분에 사회 발전을
수백년 앞당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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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는 영화였습니다. 패러디 했으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시고 같이 한번 웃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보는 시각 또한 다양해질 필요가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