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시대 -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알고 있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읽고 느낀 감상은 우선 그동안 나왔던 잡다한 홍보 혹은 비판서에 비해 강준만의 이 책이 훨씬 고려해 볼만한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준만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건희에 대한 각종 기록을 잘 모아서 종합적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이 어려웠던 것은 이건희 본인이 발표한 책이나 글이 적기 때문에 자료 취합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것 때문이다.

현 시대를 놓고 노무현과 같은 통치자로 상징을 삼기 보다는 기업인 이건희를 내세워 이건희 시대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이건희라는 인물이 가지는 중요성을 높이 산다. 그 다음 강준만이 지적하는 것은 막상 사람들이 이건희를 잘 모른다는 점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의 참모습은 이미지와 다릅니다라는 가르침을 주는데 이 책의 상당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은둔자이고 까다로운 개성을 가졌다는 지적 등은 가쉽성이 될 수 있는데 정작 중요한 비판은 삼성의 성공이 모두의 성공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은 삼성이 성과를 주변과 골고루 나누지 못하고 총수 일가의 지위를 방어하는데 과도하게 쏟고 있고 이 과정에서 사회가 1등에게 요구하는 높은 도덕적 기준과는 거리가 먼 행태가 발생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판의 과정에서 한가지 같이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기업이 사회의 발전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경제발전과 함께 이루어진 정치적 변화 또한 매우 급속도였다. 박정희 시절 이병철이 세배를 가지 않은 점을 놓고 자기 존중이 강하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아마 한국비료 사건을 통해 밀수를 통한 정치자금 제공을 공모해놓고 박정희 혼자만 빠져나가 버린 원망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전두환 시절에는 재벌이라 해도 강제로 협박에 의해 기업을 정부에 헌납해야만 했다. 유신이나 5.18과 같은 쿠데타를 통해 총칼로 주변을 위협하며 절대 권력을 세우는 정치적 상황에 기업이 대응하다보면 기업 또한 절대적 권위가 강조된다. 국가의 운영 스타일과 기업의 운영 스타일이 닮아간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재벌총수가 제왕적 운영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 이전에 재벌이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 적응력이 뛰어났던 조직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하는 쪽이 좋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노태우 시절을 보아도 경제관료 한명 (김종인 경제수석)만나기 위해서 정주영 회장이 여러시간 문앞에서 기다리다가 박대를 당하는 장면도 나온다. 상하관계에서 정치자금에 대한 요구는 주는쪽 받는쪽 모두 당연시 되는 행위였다. 김영삼, IMF 시절 등을 겪으면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서 만들어진 위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한 몇몇 기업들과 정부와의 힘의 관계는 급속도로 역전되어 간다.

그 결과가 지금 보여주는 이건희 시대로 표현되는 삼성공화국이다. 학문을 한 사람, 민주화 운동에 매진한 사람의 경우 재벌의 성공을 단지 정부의 특혜 내지 노동자의 착취 정도로 간단히 치부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부정족 요소만으로 세계적 기업이 나올 수는 없다. 김영삼 정부의 혜택을 많이 받은 기업은 한보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국민의 돈을 빨아들이고 무너져버렸다. SK와 같이 통신과 같은 인허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도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요지는  안에서 일등하는 것은 정부의 혜택으로 될 수 있지만 밖으로 나가서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1등하는 산업이 하나씩 늘어나는 현재의 상황이 앞으로도 꼭 그렇게 될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에서는 한국을 경계하려고 하고 중국 또한 배울점과 배워야하지 않을 점을 구분하며 한국에 대해서 연구한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이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연구해보려고 나서는 것이지 단점만 있다면 시간을 할애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찾고자 하는 장점에 대해서 한국사람들 스스로는 별로 발견하려고 하지도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강준만의 이 노작 또한 장점 발견은 한사코 외면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 중간에 네티즌들의 서평이 인용되었는데 과분하게도 내가 알라딘에 올린 글 또한 들어가 있었다. 아쉽게도 글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삼성의 강점 부분은 짤려 나가고 비판은 고대로 실렸는데 더해서 마지막에 토가 달렸다. 강준만이 보기에는 내 글이 삼성에 대한 비판이 철저하지 못하고 긍정적인 지적을 덧붙였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이런식의 태도가 결국 책의 방향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가지게 했다.

가령 이건희가 혼자 틀어박혀 사색을 많이 한다고 책에 지적되었다. 그게 무슨 경영이냐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식의 비아냥이 연상되는 대목이지만 삼성의 그런 식의 기업운영과 말 많고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노무현의 국정운영을 비교해보면 어느쪽이 효율적인 경영인지 비교되지 않을까?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분명 일본이 부러워 할 정도로 삼성식 경영에는 우월한 점이 존재한다. 이건희의 해외 출장을 지원하기 위해 주재원들이 고생하는 점은 지적되지만 그런 과정에서 찾아진 일류화의 노력의 기반이 되는 디자인, 마케팅 역량 강화에 대한 이건희의 집념은 칭찬되지 못한다. 그러한 안목과 꾸준한 노력 없이 삼성 애니콜의 세계 제패가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연결해볼 줄 알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강준만에게는 칭찬의 미덕이 부족한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삼성의 발전을 놓고 양극화를 논하기 이전에 장점을 찾아서 적용하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우스은 예로 얼마전 신문을 보니 민방위 훈련을 개혁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참여자가 지겨워하기 때문에 이제 재테크 강연 등 재미있는 강연으로 바꾸어서 만족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공무원들 스스로 생각하는 혁신의 수준이다. 공무원이 존재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이 기반이 된다면 차라리 세금 더 낼 수 있도록 민방위 교육을 폐지해서 국민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 더욱 중요한 혁신 아닐까? 실제 강남구는 편한 시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터넷으로 민방위교육을 제공한다. 조금만 신경 쓴다면 이런식의 혁신 과제는 주변에서 정말 무수히 찾아낼 수 있지만 노무현식 개혁은 대부분 종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한 마디만 더하자면 강준만이 늘 거론하는 서울대 비판에 대해서 짚어 보고 싶다. 서울대가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비판한다고 해서 다른 부분이 우월해지지는 못한다. 최근에 내가 아는 사람이 박사학위를 받고 자리를 잡으려 돌아다닌 다음 하는 말이 가장 문제 많은 조직은 지방 국립대라고 한다. 국립대라는 권위의식에 더해서 지방대라는 소외감을 역으로 남에 대한 우월함으로 대치하려고 할 때 훨씬 비합리적인 행태가 나온다고 했다. 덕분에 앞서 이야기했듯이 서류 본인 지참 후 출두와 같이 남들의 시간을 빼앗는 행위에 대해 명문대생에 대한 보복심리인지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삼성, 분명 성공도 하고 있지만 문제도 많은 조직일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 중 상당수는 사회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들이 많다. 정치자금이 가장 좋은 예일 것인데 이러한 부분은 기업 혼자만 해결해나가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양극화 문제도 지배구조와 연결된 부분이 있고 교육정책에 대한 이건희의 비판 또한 해외유학으로 나가는 현실과 견주어 보면 고려해볼만 요소가 많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금 개혁해야 할 가장 비효율적인 부문은 정부다. 최소한 물류 허브로 발전 이야기하면서 주말에 공무원들 쉬느라고 통관업무 처리안하는 웃기지도 않은 행태는 언제 사라질 것인가? 부동산 거품 걱정하는 척하면서 금리 내려서 자산거품 만드는 모순 또한 바뀌어야 할 행태다. 한국 정부가 삼성의 장점 일부라도 받아들인다면 나라 전체의 발전이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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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6-01-0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의 진정성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사료가 2차적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리영희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직접 말을 듣어보기 보단 책을 통한 재조합이더군요. 이런 면은 아쉬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한면만 본다면... 그의 치열함은 존중하는데, 너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우가 드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곁에 그가 있다는 것은 비판 정신이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마천 2006-01-0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교수들이 다 강준만처럼 치열하게 살면 세상에 책이 너무나 많이 쏟아지겠죠. 강준만 교수의 가치는 터부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반면 경제,경영,행정의 영역으로 내려오게 될 때 현실감이 떨어지는게 아쉽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라는 두 대통령을 만드는데 큰 힘을 보였지만 만들어진 이후 참여과정에 명확한 자기 롤을 못가진다는 게 한계라 보입니다. 결국 두 대통령이 실망을 주면서 강준만의 진정성 또한 같이 내려앉게 되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