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메이커 -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5년, 개정증보판
임동원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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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에서 통일원장관,국정원장을 지내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킨 임동원님의 회고록이다.

미국에는 레인메이커 rainmaker라는 말이 있다. 가뭄에 비를 내려주는 사람으로 존귀하게 대접받는다. 임장관이 사용한 피스메이커는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비를 내리는 역할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다고 보인다.


이 책은 김대중 정부 중반에 성공한 남북정상회담의 추진배경,진행과정,결과 등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시작은 북에 가까운 사업가가 박지원 장관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싱가폴에서 협상이 이어지고 점차 커져서 국정원장이 방북해서 사전 조정을 하며 최종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이 만들어진다.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당대에도 비판이 많아서 야당대표였던 이회창은 결사 반대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13년 가까이 지났지만 어느 누구도 당시를 넘어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당시 성과에서 하나씩 까먹기만 하면서 상대가 수그리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임기를 마친다.

그런 점에서 껄끄러운 상대 북한과 일을 만들어낸 거의 유일한 성공작품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도 희망의 대상이 되는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자서전이라 임장관의 개인사도 나온다. 고향은 평양이지만 단신 월남해서 미군부대에 붙어 살다가 육사에 들어가 국방에 충실하였다. 공부를 무척 좋아해서 직접 지은 <대공전략>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연과 함께 해외 견학기회가 주어져 다시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이 되었다고 한다. 역시 책은 내고 보아야 한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예편되어 소외되었지만 노태우 집권기의 남북화해 분위기에서 통일원에 들어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때 <훈령조작>이라는 사건은 한국의 수구보수세력의 위세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의 업적을 뭉개버리는 막강한 힘을 가진 보이지 않는 이익집단이 안기부에 자리잡고 통일로 가는 길을 방해했다. 이렇게 된 데는 차기 대권의 유력주자인 YS의 남북관계에 대한 무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 YS때 클린턴 정부와 보조가 맞지 않았고 덕분에 한반도에도 위기를 가져왔다. 

조문파동은 그러한 무지의 극대화였고 기회일수 있는 걸 위기로 만든 사건이다.

일련의 사태가 몇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는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진지하게 남한의 정권교체를 고려한 것이다. 이렇게 무지한 대통령과 무슨일을 할 것인가 하는 내부검토 지시가 내려갔다고 한다. 덕분에 대안으로 거론된 것이 당시 은퇴한 김대중이었다.


마지막 기회를 잡은 김대중으로서는 통일이라는 과제에 걸맞게 실행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의 주변의 이상주의자나 운동가만으로 일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임동원 장관을 삼고초려로 영입하게 된다. 

후일 세론으로 절묘한 결합이라고 표현되는데, 그렇다면 실제 노벨평화상의 일부는 임장관에게도 영예가 주어지는 셈이다.


지도자는 방향을 잡으면 되지만 그 방향으로 수레를 끌고, 말을 타고 돌격하고, 목숨을 걸고 창칼을 휘두르는 건 실무자들의 몫이다. 그런 일들의 세세한 기록이 이 책에는 잘 나온다. 업적 없는 이번 정부의 관료들도 이 책과 노태우 정부 시절 박철언 회고록 두 권을 보면 좋겠다. 맨날 가서 비밀접촉만 하고 아무 진도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두 사람의 성과는 대단했다.

중요한 자리에 있다는 건 기회를 잡고 바꾸어 보면 성과를 낼 의무가 있는 셈이다.

임장관 이후의 통일 사업에서 이름 낸 사람이 누가 있을까? 기억 나지 않는 건 그만큼 임동원이라는 산이 컸다는 걸 의미한다.


2001년이라는 시점에서 조금 더 잘 되었더라면, 미국 대선의 결과, 클린턴의 방북 직전에 놓친 것 등 이런 일들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매우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일종의 나비효과라고나 할까? 당시 미국의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나비형 인쇄, 대법원까지 간 판결 등. 그 덕분에 911에 이라크전쟁, 전세계적인 인플레 등. 

요즘 영국에서는 IS문제를 놓고 부시행정부에 동조해서 참전한 지도자들에게 비판이 가해진다.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당시는 땀나도록 중요한 시점이었는데 김정일도 너무 여유롭게 생각했고 클린턴의 의지도 막판에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골든타임은 역사에 길게 주어지지 않는다.

오바마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란,쿠바와 해빙을 해냈다. 돌아온 민주당 정권기를 그냥 흘려보낸 한반도의 지도자들에게 아쉬운 대목이다.

다음 대선? 누가 알 것인가? 워싱턴에서 긋는 선 하나가 어디로 나아가고 컬러를 무엇으로 입히냐에 따라 바람이 다르게 부는 점을 이해 못하나?


한국사람들은 군대간 자식 걱정은 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평화를 어떻게 하면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국사교과서를 단일화하는 논쟁은 하지만 세계사를 공부하지는 않는다. 역사가 선택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기운을 걷어내려고 무지한 노력을 했던 인물들에 대한 공부는 그래서 필요하다.


그렇지만 큰 일을 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단견이 팽배했다. 심지어 후임 노무현 정부에서 옥고를 치르게 한 것은 지금도 보면 답답하다. 별 통일 정책이없던 노무현이나 비서실장 문재인 두 사람다 지금 다시 봐도 답답하다. 사과라도 했는지 참..


80이 다 된 임장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자세도 꼿꼿하고 통일을 위해 준비한 여러 일들 아직 다 못 풀어낸 숙제 등 정정한 그 분의 모습은 한시대의 굵은 획을 그은 자부심 속에 건재하였다.

임동원이라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타 더 높게 올라볼 후배들이 이 책을 통해 역사의 교훈과 지혜를 얻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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