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 - 유라시아 지정학을 결정지은 위대한 전쟁 612~676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삼국시대를 시원하게 꿰뚫어주는 걸작이다.

한국사의 선구자인 신채호의 경우 역사는 곧 투쟁이고 독립운동이었다.

덕분에 고구려의 멸망과 신라주도의 삼국통일은 민족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천추의 한이었다.

그런데 정말 왜 신라가 통일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고구려보다 신라군이 강했던 것인가?

신라는 의자왕의 공세에 계속 밀려 가지 않았던가?

왜 일본은 백제를 구원하러 수만명의 대병을 보냈던것인가?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료 자체가 워낙 부족한 상황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수는 있지만 그것이 역사는 아니다.

서영교 교수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 도전하였고 이해를 한층 높이는 걸작을 내놓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꾸준한 탐방과 여기서 얻어진 사진들이다.

삼국시대 군대의 행로를 읽다 보면 동에서 서인데 어느 방향인지 도대체 알기 어려웠다. 서교수는 가급적 하늘에서 한눈에 내려다 본 사진들을 많이 담았다. 성이 있던 위치, 왜 그 성이 전장터일 수 밖에 없는지 등을 사진으로 알아보기 쉽게 해준다.

국내외에서 수도 없이 이루어진 탐받의 산물들이다. 하나 하나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진전은 중국과 일본의 사서를 폭넓게 독파한데서 나온다.

사서의 한 줄의 기록이 힌트가 되어 고민의 실마리들이 풀려나간 경우가 많다.

백제 의자왕이 당나라에 의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도 흥미로웠다. 

대가로 백제는 거꾸로 당에게 공예품을 바치기도 했다.

당의 지도자 이세민은 아버지를 밀어내고 형제를 죽이고 황제위를 거머쥐었다. 그의 통치술은 후세에 <자치통감>에 잘 드러난다. 먼 훗날 원을 세운 쿠빌라이가 죽기 직전 손자 쿠빌라이에게 자신과 당태종을 비교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한반도에 몰아닥친 폭풍과 이어진 격변을 이해하려면 세계제국 당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당은 강국이지만 주변 모두를 한번에 제압할 수 없었다. 

가장 우선순위는 북에서 끊임없이 압박하는 돌궐 대책이었다. 그 다음은 다른 유목민들과의 관계조정이었다.

당이 굴욕을 참아내고 돌궐을 최종적으로 격파하고 패잔병을 전투력으로 흡수하게 되니 가히 천하무적이 된다.

이들의 공세에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무너진 것이다.

이 책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고구려와 당의 전쟁에서 방효태 군단을 몰살시킨 전투였다. 당시 평양을 포위하다가 갑자기 기병을 돌려세우게 된 이유는 북방유목민족의 당에 대한 공세였다. 저자는 이를 고구려가 후한 예물로 공작한 것이라고 추론했다.

오래전 신채호는 어떤 대목에서는 용맹을 강조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장수의 지략을 강조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해명이 되지 못한다.

실제 당이 투입할 수 있었던 전투력과 고구려의 방어력 등의 조합이 현실의 싸움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역사의 흐름에는 힘의 작용이 크고, 그 힘을 행사하는 리더의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

당태종의 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역사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국사의 이해력이 점점 높아지게 되는 계기는 일본의 <일본서기>, 중국의 주요 사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라고 본다.

세계사라는 큰 판을 보면서 그 안에서 벌어진 작은 분파로서의 한반도 전쟁을 이해할 때 보다 선명하게 이해가 된다.


신라의 대당전쟁의 승리에는 당의 돌궐 용병군단이 티벳에서 참패를 겪고 몰살한 덕분을 입었다. 설인귀는 패장이 되어 간신히 죽음을 면햇다. 이 군사력이 쉬지 않고 신라를 압박했다면 한반도의 지도는 다르게 그려졌을 수 있다.


세밀한 탐방, 넓은 시야에 더해서 저자의 서술력 또한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문학과 친근하다. 쉽고 넓게 익힐 수록 영향력이 크게 마련이다. 이 책을 읽어감에 있어 마치 역사소설을 읽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새로운 사실들을 선명한 논리로 이해시키고 더더욱 그 공간 속에 들어간 듯한 현장감을 더 해주니 어찌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한반도의 현재는 중국과의 관련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정책, 경제 변동이 곧바로 한반도에 밀려 온다. 어떤 것은 순풍이지만 어떤 것은 해일이 되어 밀려온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록 생존확률이 높아진다는 건, 삼국시대의 말기가 잘 보여주는 교훈이다.

그렇게 과거에 대한 독서와 현재는 포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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