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 - 5공, 6공, 3김 시대의 정치 비사
박철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박철언의 책에는 대략 25년 가량의 한국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모습이 나타난다.
이 기간 동안 저자의 위치는 계속 바뀌고 거기에 다라 시선 또한 바뀐다. 
그 폭은 아마 최고대권을 누린 사람 이외에 한사람이 경험한 것으로는 엄청난 규모인 것 같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최고권력자가 바뀌면서 그 성격에 따라 권력을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의
관계 또한 바뀐다는 점이다. 전두환 때에는 군인이 매우 중요하다. 총칼로 사람을 죽이며 권력을
잡았기에 말을 해도 늘 살기가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점을 적절히 이용했다.
국회가 돌아가는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국회해산을 통해 판 자체를 바꾸어버린다는
언급을 해서 길을 들였다. 자신이 권력을 놓기 직전까지도 군을 이용한 친위쿠데타라는 심리 게임을
시도했다. 지금 평온한 사회에 살다보니 이런 것들이 가볍게 들리지만 경찰이 늘 주변을 감시하고
안기부가 간첩을 만들어내며 군인이 행세하며 다니던 시대에는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당시 DJ가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86년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 말이 나오자
전두환은 쿠데타 움직임을 뒤로 물렸다는 증언은 그러한 환경의 결과물이다.
덕분에 당시에는 군인의 서열이 1번이지만 다음은 경찰이었다.
박종철 잡아다 고문하다가 죽인 것도 경찰이고 권인숙을 성고문했던 것도 경찰이다.
이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답은 이들이 군인이 나서지 않는 방식으로 정권의 힘을 행사하는
일선에 서서 보위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즉 법이나 말이 아니라 힘이 정의인 사회 운영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경찰에 제동을 거는 역할은 검찰이 가끔 맡게된다.
박종철 고문에 대한 폭로도 뿌리는 담당 검사와 부검의였다.
노태우가 들어서게 되자 권력의 지도는 바뀐다. 이제 맹목적으로 몽둥이를 휘둘러대면서
통치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군인도 경찰도 뒤로 물러나고 검찰이 앞에 서게 된다.
노태우는 비자금으로 조사 받는 와중에 담당 검사에게 자신이 임기 중에 검사를 중용했다는
정치적 발언을 한다. 검찰 중용은 권력통치 요소가 뒤바뀌어가는 와중의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민주화의 힘을 업고 권력에 대드는 DJ도 서경원,문익환 등의 방북에 의해 형성시킨 공안정국으로
역공을 가할 수 있었다. 역시 남북문제는 정권의 고유한 권한이었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며
보안법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통치를 수행하였다.
자신의 파워를 선보이기 위해서 검사들은 과거 권력의 수장이었던 검찰 총수 급까지
법의 올가미를 씌우면서 위상을 부각시킨다.
이런 와중에서 공을 세우는 검사들이 하나씩 발탁되어 간다.

아울러 또 다른 수혜자는 바로 언론이었다. 민주화는 언론에 대한 권력의 통제를 어렵게 만들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공간에서 말을 내세운 논객들의 활약이 커져갔다.
하지만 더욱 가공한 것은 이들에게 중요한 흐름에 대한 정보를 주는 big mouth 들의 존재와
채널들의 역할이었다. 미리 언론에 꾸준히 투자했던 YS는 장학생이라는 언론계 친위대를 통해
권력 투쟁에서 늘 혜택을 보았다. 조선일보라는 보수 언론계 출신이었던 김윤환은 가끔 자신의
의견을 조선일보에 마련된 특별채널을 통해 터트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덕분에 조선일보는 고급정보를 캐내는 특종 발국력을 가진 최고의 신문으로 사세를 확장했고
김윤환은 여론을 반영하고 때로는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인물로 위상이 커져가는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아울러 재벌들 또한 법의 통치가 만들어낸 공간을 잘 활용했다. 이 책 초반을 보면 재벌총수들이
자신들의 알토란 같은 회사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빼앗기는 장면이 나온다. 반면 중반을 넘어서면
정주영이 과감히 정당을 만들면서 정면 대결을 시도해오는 모습도 나온다.
또 포항제철의 박태준을 구속하겠다던 전두환 정권의 서슬퍼런 기세도 후반에 오면 경제에 대한
경륜을 가진 인물이라고 대통령 후보로 두번이나 추대되는 듯한 모습까지 변모된다.
나중에 IMF를 겪으면서 특히 유능한 경제인에 대한 존중으로 나타난다.

권력을 둘러싼 갈등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도 있지만 당사자가 아니라 조금 떨어져 쳐다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높게 사고 있는지 알게되 우스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대통령 꿈을 꾸던 사람은 YS,DJ 뿐만이 아니라 이종찬,이한동 등 무수하게 많다.
중간 중간에 보면 이 책의 저자 박철언 보고도 그렇게 권고하며 권력욕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이
나온다. 권력 주변에 있기 위해 줄을 어떻게 잡느냐는 무척 중요한 일이고
인간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박철언을 늘 붙어다녔던 강재섭 의원이 갑자기 당 잔류선언을 해버리는
걸 보면서 비정함을 느꼈다지만 지금 강의원은 차기 주자까지 거론될 정도로 TK 권력의 수혜를 보고 있다.
권력자와 조금이라도 틈이 벌어지면 이를 밀고 들어오는 견제세력이 많게 된다.
또 좋게 좋게 두루 잘 지내지 못하면 거꾸로 역공이 밀려온다.
박철언 자신도 킹 메이커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김윤환, 이원조 또한 그 나름대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다. YS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들과 원활히 지내지 못한다면 박철언 자신도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YS의 기선제압과 분할 공격의 수법은 정치사에 길이 남을 성공작품일 것이다.
반면 이에 맞서지 못한 당시 민정계의 분열은 또 다른 실패작품이다.
이한동,이종찬이 끝까지 고집부리는 것을 보면 이들의 정치의식이 멀어도 한참 멀었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었다. 이 책을 보면 그러한 대목이 잘 나온다.
기 싸움에서 YS에 밀리고 오랫동안 준비도 하지 않았던 당시 민정계의 대응은 무너지고
박철언 또한 갈대가 없어진다.
그 결과 탄생한 YS정권에 의해 감방에 보내지는데 그 재판과정이 상당히 웃기는 것이었다.
특히 감방에 있다고 위로해주는 전두환,노태우가 구속되자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어 본인이
위로 방문하게 되는 꼴은 한국정치사의 일종의 소극이다.

JP를 압박하여 DJ와의 통합을 만들어내고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거명되는 것 까지는
정치인 박철언의 활약이 컸지만 그것이 그의 정치역정의 한계였다.
당시 나도 박철언의 공과 남북밀사로서의 경륜을 보면 충분히 감당하고 성과도 낼 수 있는
인사라 생각했지만 DJ는 보수주의자를 내세워서 시간을 까먹었다. JP 핑계를 대면서.
아쉬운 대목이었는데 어쨌든 이후로 박철언의 모습은 정치의 현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TK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들었지만 여러차례 호남과 영남의 연합을 주장했고
참 안재형,자오즈민 커플의 결혼 성사만큼 그의 북방외교에 대한
기여도 적지 않다. 이런식으로 남과 북의 새로운 관계를 꿈꾸며 매번 유서를 쓰면서 방북을 해야 했던
그는 분명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의 분점과 지역주의 또 다른 형태로의 극복을 추진했던
이상주의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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