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의 전략가 쿠빌라이 칸
모리스 로사비 지음, 강창훈 옮김 / 사회평론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쿠빌라이.

징기스칸의 손자로 원제국의 창업자다.

수성의 전략가라는 수식어가 그의 앞에 붙은 책이 나왔다.

왜 쿠빌라이였을까?

우선 쿠빌라이와 한국은 인연이 많다.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었다.

특히 쿠빌라이와는 친손녀를 충렬왕의 비로 맞게 하였다. 그것도 고려의 요청으로.

쿠빌라이 개인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이 고려에게는 상당한 행운이었다.

아버지 툴루이의 자손으로 쿠빌라이에게는 뭉케,훌루이,아릭부케 등이 형제로 있었다.

뭉케는 대칸. 훌루이는 서방의 원정을 하고 있었다.

뭉케의 정복전쟁에서 고려는 쉬지 않고 항전하면서 소위 화약 조건을 어겨왔다. 당시 무신정권과 왕권이 서로 견제하면서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고려로서는 상대가 훌루이가 아니라 쿠빌라이였던 점은 대단한 행운인 셈이다.

쿠빌라이 개인으로는 초원에서 내려와 중국으로 영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대리를 정복하게 된다.

김용의 소설 천룡팔부의 주인공 단예가 황제로 있는 <대리>다.

이때 실권자 고씨가 사신을 살해하고 저항하였지만 쿠빌라이의 처벌은 상당히 관대했다. 고씨만 죽이고 단씨는 황위에 놔두고 몽고가 지배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고려의 훗날 모습이 떠오르지 않은가?

반면 훌루이는 이런 경우 일벌백계라는 원칙으로 상대 도시나 국가를 초토화시켜버렸다.

바그다드가 이 시대에 참담하게 무너져버렸다.

당대를 보면 세계의 지배자의 생각 하나에 한반도 정도의 땅은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게 되었다.
마치 2차대전 직후 미국 영관급 장교들의 손끗에서 수천만명의 운명이 갈렸다는 점과 비슷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쿠빌라이 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하다.
이 책은 쿠빌라이의 여러 면모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몽고의 장점으로 상업,장인을 우대한 점을 들고 있다.
거대한 상권은 곧 각지의 분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거대 시장과 유사하다.
분업이 이루어지려면 가장 뛰어난 기술이 개발되어야 하고 장인들을 우대함으로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
몽고의 서방원정에는 송나라가 만든 기술과 재력이 뒷받침되었고, 쿠빌라이의 남방원정에는 이슬람에서 가져온 대포 즉 회회포가 역할을 하였다.
이외에도 의술은 이슬람 의사를 데려와서 강의를 시켰고 덕분에 관념적인 한의학이 많이 진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언어를 개발하고자 언어끼리 비교 경쟁을 시킨 점 등 몽고가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혜택을 준 셈이다.
물론 나중에 이 혜택을 정복자들이 전유하면서 제국은 흔들리지만..

쿠빌라이 시대 속에서 고려는 원종,충렬왕,충선왕이 지배자로 등장해나가게 된다.
국란의 위기에도 기회를 찾아 유연성을 발휘했고 거기에 행운까지 따랐다고 볼 수 있는 고려시대.
중국의 대국화와 함께 증시의 등락이 곧바로 한국에 직격탄이 되는 이 시대에 힌트를 몽고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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