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 이병주 장편소설 나남창작선 122
이병주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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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당대를 제대로 꿰뚫어 본 기인이다.

임진란이라는 난리를 헤쳐나오면서 기존 체제의 허망함을 보았다.

수도 서울을 임금이 가장 먼저 버리고 떠나고, 거기에 분노한 백성들 특히 하층민들이 궁궐과 기록물들을 태워버린다.

사대부들이 늘 이야기하던 인의예지에 대한 허균의 허무와 반감은 그를 불교 심지어 천주교 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꺠우침은 그가 인간을 구분하는 형식이 별 소용 없다는 점을 안 것이다.

홍길동전이 그 대표다.

서얼이라고 왜 차별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강한 반론과 통찰이 핵심이다.

이병주의 소설 허균의 첫머리에도 그런 대목들이 나온다.

아버지가 임종하는 마당에 재주는 아끼지만 걱정하면서 허균의 어렸을 적 일화를 떠올린다.

과부를 꼬셔서 자기 서얼 스승과 재가시키는 대목이다.

과부재가,서얼차별처례 등 허균의 생각은 조선에서는 낯설었지만 시야를 약간 넓혀보면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의 관백 도요토미는 아버지도 헷갈리는 가난한 농부 출신이다.

하지만 당대에 관백이 되었고 그의 부하들의 출신도 아래에서 일어난 인물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함경도에 가서 왕자들 잡아간 가토 기요마사의 경우 도요토미 고향의 친척으로 조카뻘 된다.

그 집안은 그냥 농부의 집안이었을 따름인데 이제 수십만 석의 다이묘가 되어 한국인의 머리에 깊에 피해와 인상을 남겼다.


임진란이 명의 군대가 아니라 개혁의 힘으로 극복되었다면 어떠했을까?

과거 공민왕이 신돈을 썼고, 이성계와 정도전의 결합이 이루어졌듯이 허균 또한 난세를 구할 기재라고 평가 받았을 것이다.

요즘 뜨는 명재상 유성룡의 경우 당시 내놓은 해법들이 대체로 경제와 관련된 것과 신분을 뛰어넘는 상승 기회를 주어 천민과 백성의 힘으로 왜군을 물리치자는 것들이었다.

이를 보면 허균의 차별철폐가 오다 노부나가의 라쿠좌 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오다는 일본의 절들을 없애가면서 종교혁명을 했듯이 허균도 불교를 들고와 유교만을 맹신하는 사대부에게 충격을 주었다.

딱 하나 없는 것은 무력이다.

이점에서 허균도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그의 서얼 친구들은 기껏해야 은상을 털다가 조령에서 잡혀 처형당하고 만다.


현실에서의 삶은 기재에게 팍팍했는데 늘 재주는 있지만으로 시작되는 허균에 대한 조선 당대의 기록들이 그런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시대를 다르게 아니면 지역을 다르게 해서 당대 일본의 전국시대에 태어났다면 대단한 일을 해냈을 인물이지만 조선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소설이 수백년 시간을 뛰어넘었고 그 안에 담았던 사상이 뒤로 갈수록 빛나 선각자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역시 영원한 것은 문학이구나 하는 끄덕임과 현장에서 이루어짐이 적었다는 아쉬움 두 가지가 다 마음에 들어온다.


난세의 재주꾼 허균의 불우한 삶을 이토록 잘 그려낸 이병주의 솜씨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한다. 전란을 헤쳐나오면서 인간의 진면목을 보았던 작가이기에 더욱 허균의 삶에 공감하였으리라.


최근 한국에서 나오는 책 중 <진격의 대학교>,<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도발적 제목들을 보았다.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선지력은 차별이 강화되고 꿈이 사라지고 나라가 가라 앉는 이 상황에서 더욱 빛나게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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