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ㅍ/<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저자 서민 교수와의 유쾌한 하루
“제가 서민입니다. 반갑습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의 저자 서민(39) 교수를 그의 연구실(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에서 만났다. 그의 책이 보통의 서민들 편에서 세태를 꼬집는 내용으로 서술한 탓일까. 자신을 '서민'이라고 소개한 서 교수의 첫 인상이 낯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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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 교수는 정리되지 않은 더벅머리에 순수한 미소가 매우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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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정구 | 그의 연구실에서 눈에 띄는 몇몇 풍경은 기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반쯤 열린 사물함엔 예비군복과 군화가 삐죽 나와 있었다. 공중보건의로 복무한 그는 올해까지 예비군 훈련을 받았단다. 덧붙인 한 마디가 압권이다.
“사실 이 곳에서 근무를 시작한 99년부터 7년 간 단 한 번도 세탁한 기억이 없어요. 매년 그 자리에 방치돼 있다가 예비군 소집 때나 한 번씩 꺼내 입었죠.”
과연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할 만한 사람이라는 감이 왔다. 외향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의사면허 소지자에 의과대학 교수며 박사라는 직책이 왠지 차갑고, 깔끔하고, 절제됐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서 교수는 정반대의 푸근한 인상만을 안겨줬다.
그의 손때 묻은 서재도 들쭉날쭉 키 높이가 일정하지 않았으며, 거꾸로 꽂혀있는 책도 심심찮게 보였다. 한쪽 벽면 모서리엔 수북이 쌓인 책들이 놓여 있었다. 책의 저자들이 보내온 책이란다. 어떤 책을 주로 보느냐는 질문에 서 교수는 거침없이 “잡식성”이라고 답한다. 소설부터 시집, 에세이, 고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본다는 것. 특히 언론 관련 책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탐독한다고.
“사실 책을 많이 읽어야 할 때 그러지 못했어요. 학창시절 책 읽은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요. 본격적으로 책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9년 전입니다. 그 전에 살아온 30년의 시간보다 책과 함께 지낸 최근 9년이 몇 배 더 값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 교수는 계간으로 출간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보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강준만의 사상에 매료돼 세상을 다시 배웠다고 한다. 그 후엔 3개월마다 그 책을 기다리며 살았다고 한다. 올해 종간 된 34권까지 본 것이 자신의 가장 값진 기억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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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실 한 쪽 벽면에는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그의 집에는 이보다 몇 배 많은 책들이 있다고 합니다. 서 교수는 이틀에 한 권씩 책을 본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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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정구 |
| 최근에는 검사 출신 법조인이며, 대학교수인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분명 어느 조직이건 건강한 이단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책을 통해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약자층을 대변해야 할 어떤 의무감이 들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에서 천안까지 왕복 2시간을 전철과 버스로 출퇴근한다. 그 2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황금독서 시간이다. 때론 그 시간에 글을 쓰기도 한다. 평균 이틀에 한 권의 책을 본다는 서 교수는 습관적으로 하루에 두 편의 글을 쓴다고 한다. 이미 5권의 책도 발간했다.
“적당히 무식할 때 책을 내라는 진중권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들였죠. 완벽을 기하려 한다면 평생 책을 못 내고 말 것이라고 하더군요.”
“길은 많다. 의사만 고집하지 말라”
“의사가 필요한 곳이 병원뿐이겠습니까. 우리 나라 식약청을 한 번 보시죠.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업무를 보아야 하는 그 곳에 의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절대비교대상은 아니지만 미국 식약청엔 400명의 의사가 포진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병원 이외에서 해야 할 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말을 이었다.
“의사 출신 법조인도 배출돼야 합니다. 동업자 정신으로 똘똘 뭉친 의료계의 잘못된 관행을 환자의 입장에서 명쾌하게 해결해 줄 정의가 필요하죠.”
의대 시절 교수님으로부터 강의 시간에 들은 이야기를 전해줬다.
“한 의사가 조그만 가위가 환자 몸 속에 있는 걸 모른 채 꿰맸다고 합니다. 환자는 계속 통증을 호소하다 다른 병원을 찾았답니다. 그곳 의사는 방사선으로 가위의 존재를 확인하고 환자에게 수술 부위가 곪았다고 하면서 전 의사의 과실을 덮어주고 재수술로 몰래 가위를 꺼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어찌 건강한 사회겠습니까.”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본문에 있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서 교수는 의과대학 인기과의 명암을 조명하고 있다. 인기과의 판도를 결정하는 요인은 바로 돈이며, 의사들 역시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의료계의 현황과 미래도 특유의 설득력 있는 논조로 조망하고 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에 매료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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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요청에 본인의 책을 들고 사진찍는 서민 교수의 표정이 영 쑥스러운 듯 하군요. 하지만 그는 책과 참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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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정구 |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마루타가 돼야 한다. 의사들이 자궁경부를 찌르는 것도 심란한 일이건만, 애 낳는 걸 보려고 대기하던 학생들이 실습 삼아 너도나도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극도의 불안과 긴장에 시달리는 산모에게 이게 무슨 행패일까.”
일찍이 의과대학 교수가 대학병원을 이처럼 호되게 매질한 일이 있을까.
“나는 윌을 먹는다. 헬리코박터를 없애준다는 음료 말이다. 이유는 그 음료가 위염과 위궤양, 위암까지 일으키는 악의 온상인 헬리코박터를 없애준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말 뒤에는 인도네시아 국민의 80%가 헬리코박터 보균자지만 위암발생율은 한국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물을 제시한다. 또한 헬리코박터가 아이들의 설사병을 억제하고 위궤양의 원인인 위산을 억제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덧붙인다.
엉터리 의학지식, 잘못된 의료계의 관행 등에 대해 유쾌한 항변과 함께 유익한 정보를 가득 담은 도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이 화제를 낳는 이유다. 이 책은 지난 8월 출간과 함께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현대 의학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수록된 내용 하나 하나가 어쩌면 의료계의 감추고 싶은 치부일 수 있는데도, 서 교수는 스스럼없이 유머까지 곁들여가며 일관된 목소리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대학병원의 순기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물론 아니다. 다만 그 속에 감춰진 불합리한 점들을 들춰냄으로써 개선점을 찾자는 내용이다.
의대 재학 시절부터 의사면허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의과대학 강단에서, 또 다시 의학도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고민한 내용들을 진솔하게 털어놓은 이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신선한 충격과 함께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서 교수는 상업적 목적에 의해 제약회사가 공포를 조장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은 의사들이 제약회사의 의도 대로 연구성과물을 만들며, 광고수주를 위해 언론까지 가세해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야유한다. 또한 헬리코박터뿐만 아니라 세포의 필수성분인 콜레스테롤을 악의 축으로 인식시키고, 육식은 요절의 지름길이며, 암 예방에 좋다는 음식이 난무하고, 비타민은 안 먹으면 큰일날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이비 건강상식을 송두리째 흔든다.
그는 책에서는 고인이 된 아버지도 종종 등장한다. 한 달 입원비만 600만 원이던 병상을 3년이나 지키다 가신 아버지와 가족들의 고통도 보인다. 2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많은 무게도 있었을 터. 아버지를 보내기 전 ‘내가 드린 100만 원짜리 수표가 아버지 일주일분 병원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나 아버지를 보내고 ‘더 계셨더라면 우리 집까지 팔아야 할 뻔했다’는 내용을 담으며 큰 병 앞에 무기력한 의료보험의 현실을 냉철하게 꼬집는다.
서 교수는 “환자도, 임상의사도 아닌 기초의학 전공자로서 의료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진정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다”며 “책을 낸 것은 세상에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 책으로 인해 단지 몇 명의 독자라도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된다면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넘쳐나는 각종 사이비 건강상식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것보다 더 좋은 건강법은 없다는 게 일관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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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는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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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학을 전공한 지 벌써 13년. 그나마 알고 있던 임상지식마저 진작 다 잊어버려, 이따금씩 내게 의학적 자문을 구하는 지인들을 실망시키곤 한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이거다. ‘의사 맞냐?’ 하지만 나도 46663이란 면허번호를 가진 의사이고,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면 내 이름을 건 의원을 열 수도 있다.”
서민 교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를 처음 본 사람은 그의 재치 있고 논리적인 글 솜씨와 달리 정리되지 않은 더벅머리에 주름진 셔츠에 놀란다. 기자의 첫 느낌은 순수 그 자체였다. ‘귀염둥이 또는 개구쟁이 악당’이라고나 할까.
그는 의과대학 재학 시절 각종 기행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는 호출기에 매일 20초짜리 인사말을 바꿔가며 황당한 스릴러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매스컴을 타게 된다. 덕분에 하루 접속 2000건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그의 호출기에 자주 전화했던 열성 팬 중에는 가출 청소년도 있었는데 덕분에 검찰조사까지 받았었다고 한다.
또한 뜻이 맞는 친구들과 ‘수퍼맨’이라는 슬라이드 영화도 제작했었다고 한다. 그의 진정한 꿈은 예술가가 아니었을까. 요즘도 미술과 관련된 책을 볼 때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한다.
그는 한때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 적엔 친구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대학에서 글쓰기에 몰두했다고 한다. 친구 사귀는 수단으로 유머를 택했고 글로 웃겨보자며 시작된 글 쓰기가 이젠 말하기 보다 친숙하단다.
그는 기생충학을 강의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의료현안에 대한 토론식 수업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글을 잘 쓰는 법도 지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중 방송대본 '킬리만자로의 회충'을 쓰는 등 기생충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명하다가 졸업 후 본격적으로 기생충학계에 투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몇 년간 ‘기생충의 대중화’를 위해 집필에 전념, <기생충의 변명>이란 에세이집을 냈고 딴지일보 기자로 데뷔해 ‘건강동화’를 연재, <대통령과 기생충>이라는 소설로 엮었다.
2004년 CBS ‘저공비행’이라는 프로그램의 ‘헬리코박터 프로젝트’에 6개월 간 출연, 의료정보를 알려줌과 동시에 의료계의 실상을 솔직, 담백하게 파헤쳐 인기를 모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교수로 재직, 기생충을 사랑(?)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며 인터넷 사이트 등에 글을 쓰고 있다. / 이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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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2 09:08 |
ⓒ 2005 OhmyNews |
* 오마이뉴스에서 퍼왔슈. 기사 주소는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81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