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81호 - 2014.겨울 - 창간 20주년 기념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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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가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덕분인지 유명 작가들의 단편이 한데 모아져서 한 권으로 푸짐해졌다.

잘 된 일 일까?


그런 문학동네에 낯선 손님 하나가 등장했다.

피케티와의 대담이 실려있다.

피케티와 문학지, 낯선 조합 같지만 그렇지 않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는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자주 인용된다.


19세기 자본을 만들어낸 엥겔스는 

"발자크의 소설이 수많은 사회과학서보다 당대를 이해하는 데 낫다"라는 

격찬을 했었다.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발자크는 <자본>과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왜 일까?

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은 사실 돈이 없던 사람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빚에 시달리면서도 도박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발자크 또한 20대에 진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한체 끊임없이 돈을 추구했다.

그가 빚을 지게 된 이유는 사업 실패였는데 

이를 통해 그의 눈이 열렸다고 한다.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들은 금액을 정확히 이야기하고 매우 합리적으로 계산하며

행동하려고 한다.

실패가 그냥 헛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발자크는 잘 보여주었다.


이번 문학동네에 실린 김훈의 소설을 보면 금액에 대해서 매우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길가에서 파는 밥값이 왜 3000원인지, 가게에서 파는 밥값 5000원과 왜 차이나는지 등.

남녀간에 섹스는 나누어도 절대로 밥값을 내주지는 않는다는 것 등.


얼마전 지인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금의 담론들이 <지금,여기>가 없다고 한탄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발자크,피케티 둘 다 프랑스의 거장들이다. 

아마 몇년전 심금을 울린 <레미제라블>이 프랑스의 위고 작품이라는 점도 상기시키면 좋겠다.


냉정한 관찰은 공감으로 이어지고 다시 진지한 성찰이 더해지면서 훌륭한 문학이 탄생한다.

한국도 이제 문학을 위해 냉정함과 진지함이 더 필요한 때가 되었다.

그만큼 아파하는 이들이 많은 시대에 문학이 붕 떠 있다는 아쉬움을 가졌다.

딱 하나 김훈이 예외였지만 이제 70을 바라는 노익장만 계속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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