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의 역량을 하나씩 살펴보자. 사마의의 가장 큰 장점은 전장에서 발휘되었는데 매우 뛰어난 장수였다. 거의 진 싸움을 찾기 어려운 상승장군이었다. 특히 제갈량과의 싸움에서 활약이 컸는데 삼국지연의의 시각으로 보면 이 싸움들은 제갈량의 압도적 승리가 번번히 우연에 의해 좌절되는 아쉬운 전투였다. 실제 역사에서의 싸움은 거의 재미 없는 밋밋한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제갈량이 아닌 다른 상대들과의 싸움에서는 매우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맹달이 위를 떠나 촉으로 귀속하려고 했을 때 허창으로 보고를 띄우고 회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병력을 동원하는 무리한 행동을 보였다. 잘못하면 근무지 이탈과 월권으로 처벌 받을수도 있겠지만 시각을 바꾸어 보면 결단력과 실행력을 가진 지도자로서의 모습이 나온다. 또 공손연 토벌전도 그의 솜씨를 잘 보여주는 전쟁이다. 요동은 낙양에서 수천리 떨어진 곳이다. 여기에 별도의 자기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공손씨의 반란에 위의 조정은 여러 가지로 걱정을 했지만 사마의는 단숨에 승패를 결정지웠다.
이렇게 계속 승승장구하자 역효과가 나타난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기고 이를 보던 조정의 반대파에서는 사마의의 군사적 권한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공손연과의 싸움에서도 얼마 이상의 군사를 한꺼번에 맡기지 말자는 건의까지 나왔지만 황제가 물리쳐버렸다. 역시 전쟁은 장수의 참 실력으로 수행되는 것이라 사마의를 대신해서 나섰던 장수들이 연달아 패하면 다시 불리워져서 원래의 자리에 놓이고는 했다.
전장에서의 승리는 뛰어났지만 정치적 처신은 매우 기회주의적이었다. 조비와 그 아들 조예만 하더라도 황제로서의 주권을 명확히 행사하고 있었다. 이 때 사마의는 충직한 신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조예가 일찍 죽으면서 여덟살 짜리 아들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세명의 신하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조씨로부터 위협을 받자 본색을 드러내어 위를 찬탈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똑 같이 군주로부터 어린 아들을 보호해달라는 말을 들었지만 제갈량이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서 후일 존경을 받는 것과 비교할 때 사마의에게서는 그 역량과 위업에 비해서 별 찬사를 받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