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1 - 잃어버린 계절 이병주 전집 3
이병주 지음 / 한길사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리산은 큰 산이다.

산이 큰 만큼 여러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장 큰 이야기는 박경리가 하동 최참반댁의 흥망을 다룬 <토지>와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이었다. 

지주의 흥망과 빨치산 이 두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요동치는 사회의 격변 속에서 각자가 키운 욕망, 그리고 억울함이 서로 빠르게 교차한다.


이병주는 이 자락 주변에서 태어나고 가까운 곳에서 공부하다가 멀리 일본으로 유학도 갔다.

가서는 또 학병으로 징집이 되어 중국에 나갔다가 해방을 맞는다.

식민지로서 내 나라가 나라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다가 갑자기 나라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요구한 것은 매우 혹독했다.

가르치다가 급속히 내려온 인민군에 붙들려 선전대 활동을 요구 받았는데 잠시 하는 시늉하다가 지방으로 빠져나와 다 흩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어서 그는 국군에 잡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고비를 또 넘겼구나 하고 안도하였지만 그의 눈에는 거대한 지리산에서 이상을 위해 싸운다고 하다 목숨을 잃어가는 유학생 출신의 좌익사상가들의 명멸이 비쳐진다.

자신의 아픔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그는 기록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40대에 시작한 그의 창작에 대해서 왈가왈부는 많았다.

훗날 한국 최고의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가 이병주에게 소설의 치밀함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지 이병주는 빙긋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나이가 먹어서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것이 삶인데 젊은 여자가 무에 그리 소신이 있겠나."

난세는 겪어본 이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 평세를 살았던 이들이 보는 난세는 매우 추상적이다. 

삶과 죽음이 종잇작 하나로 엇갈려 스쳐가는 공간에 놓였던 삶을 어찌 평탄한 교실에 앉아서 이해하겠냐는 반문이다.


이병주 문학관에서 최참반댁, 이현상이 최후를 마친 지리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탐사로를 조금 더 확대하면 통영의 박경리기념관까지 도달하게 된다.

박경리는 젊어서 남편을 두 번 잃고 고향을 다시는 찾지 않았다. 

첫 남편이 일찍 죽었는데 이어서 결혼을 다시 하게된다.

왜 남편을 잃고 수절하지 않냐는 고향 사람들의 비난에 새로 만난 총각선생님과의 혼인도 파탄을 맞았다.

마찬가지로 난세의 삶을 어찌 평시의 도덕관념으로 이해하겠냐는 반론이 튀어나온다.


이병주나 박경리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큰 산 자락의 수없이 명멸하는 삶들을 보게 된다.

산자락에 묻어서 이상향을 만들어보고자 하던 이들의 죽음이 덧없었는지?

이상이 과연 사람의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소중한 것이었는지?

커다란 산은 지금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답은 쉽지 않다.

어제의 답과 오늘의 답이 다르기 마련이다.

젊어서 그렇게 싫었던 이병주의 문학관을 내 발로 찾아간다는 건 나로서도 신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회색분자 이병주의 회색이라는 빛깔을 프리즘으로 비추어 보면 빨갛고 파란 원색들이 더 튀어나오더라.

이 색을 다 합쳐보니 말년에는 회색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의미 없는 삶은 아니었다고 촌평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