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박정희가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북한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모든 나라들이 경제 발전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고성장을 유지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는 경제 발전을 절대로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꼭 박정희처럼 유신 독재를 감행해야 했는가 하는 것은 논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경제 발전이 좋으냐 나쁘냐.'는 논쟁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경제 발전이 이뤄 낸 성과를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경제 발전이란 것은 단순히 잘먹고 좋은 옷 입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병을 앓지 않고, 오래 살고, 어린 자식을 잃지 않도록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경제 발전입니다. (장하준) -p. 51쪽
저는 아까 '박정희가 경제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를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박정희가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혹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비교적 자립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주장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노동자를 착취했지만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엔 성공했다는 이야기죠.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과거 식민지 국가들 중에는 지금도 못사는 나라가 많은데, 이 나라들이라고 해서 지배층이 민중을 착취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의 지배층과 실패한 나라의 지배층 간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바로 착취로 빨아들인 부를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승만 체재와 박정희 체제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 민중들로부터 수탈한 부를 흐리멍텅하게 낭비해 버렸다는 겁니다. 남미도 마찬가지고요. 그에 비해 박정희 시대의 국가는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해 수탈한 부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투자하도록 강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 때 박정희가 당시 이병철 회장을 불러 '당신, 이제부터는 중화학 공업 등 제대로 된 산업에 투자하라.'고 강요했던 거 아닙니까? 이런 과정에서 한국의 자본가들은 당장 이익을 거둘 수 없음에도 어쩔 수 없이 정부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한국의 경제 발전은 착취 때문에 성공했다기보다는 착취한 부를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정승일)-p. 53 - 54쪽
신자유주의 혹은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저투자 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시장이 너무 잘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시장이 너무 잘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시장이 너무 잘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투자한 기업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기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투자한 기업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기미가 보인다면 바로 그 돈을 빼낼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신자유주의 혹은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이니까요. 이렇게 돈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금융 시장이 잘 돌아간다는 의미로 좋은 이야기 같지만, 사회적으로는 반드시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또 앞으로 유망한 기업이라 해도 어려운 시기는 있는 법인데, 어려운 시기 때마다 재원이 들락날락한다면 안정적인 경영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니까 시장에 좋은 일이 사회적으로는 나쁜 일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소위 개혁파 지식인들은 시장 근본주의에 물들어서 '시장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버린 같은 투기 자본이 SK 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해도 '외국 자본이 가하는 압박은 시장의 압박이다.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요? (장하준)-p. 94쪽
하지만 진정한 기술 혁신 체제로 가려면 노동 시장 유연화를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죠. 제일 좋은 사례가 스웨덴과 일본입니다. 두 나라는 세계에서 산업 로봇을 가장 많이 쓰는 국가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노동자들에게 고용 보장을 해 주거든요. 물론 방법은 틀리죠. 스웨덴은 국가 차원에서, 일본은 기업 차원에서 고용을 보장하는 겁니다. 노동자들이 설사 불가피하게 해고된다 하더라도 재교육을 통해 비교적 쉽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기업 혁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약한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일본, 스웨덴 두 나라는 자동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고요. 이와 대조적인 국가가 바로 영국입니다. 노조가 강하던 1970년대 영국 자본가들을 신기술을 도입하려고 하면 노동자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어요. 타임즈 같은 언론사도 컴퓨터 조판 시스템을 도입할 때 인쇄공 노조와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그런데 노조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기술이 도입되면 해고될 수밖에 없거든요. 한마디로 인생 종치게 되는 거죠. 그러나 스웨덴이나 일본 노동자들은 신기술이 들어와도 인생 종치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을 허용하고, 오히려 빨리 적응하려고 하다보니 기술 수준도 발전하게 되는 거에요. 반면에 우리나라처럼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노동자들에게 기술 관련 투자를 할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걸핏하면 자르다 보니 장기적 투자를 계획하는 데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고요. 노동자 입장에서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데 '힘들여 새로운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태도가 불가피한 것 아닙니까? (장하준)-p. 109-110쪽
한국에서는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고 하면 곧바로 '수량적 유연성' , 즉 '자본 측이 노동자들을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정도'만 가리키게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동 시장에서 '수량적 유연성'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기능적 유연성'이거든요. 예컨대 일본의 경우 노동 시장이 수량적 유연성 측면에서 상당히 경직된 시장, 즉 노동자를 함부로 자를 수 없는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국제 경쟁에서는 뒤지지 않는 나라인데,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기능적 유연성에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내부 교육 시스템을 통해 노동자들이 여러가지 기능(다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때문에 시장의 수요가 변화해 현재와 다르거나 더욱 개량된 제품을 생산해야 할 때 기존의 노동자들을 생산 라인만 바꿔서 그대로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을 자를 필요가 없지요. ...(중략)... 이런 노동 시장의 기능적 유연성이 일본에서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수량적 유연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량적 유연성이 없기 때문에, 즉 일자리가 불안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에게 투자할 인센티브가 생기고, 노동자도 그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려는 인센티브를 가지게 된 거죠. 그에 비해 우리나레에서 이야기하는 노동 시장 유연화는 수량적 유연성만을 겨냥한 것 아닙니까? 결국 우리나라는 로우-로드 전략으로 가고 있는 거죠.(장하준) -p.145~147쪽
현재 정부나 자본은 중국이 값싼 임금으로 우리나라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 투쟁이 말이 되느냐는 식인데, 그게 어떤 총체적. 국민 경제적 비전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가 않아요. 저기서 '2만 달러 시대로 가자.'고 하던 분들이 여기서는 노동 시장 유연성이니 어쩌니 하면서 비정규직을 늘리고 중국의 저임금이나 강조하니 말이에요. 국민의 일부만 2만 달러로 가고, 나머지는 2000달러로 가자는 말인지. 경우에 따라서는 선진국을 좇아가자는 게 아니라 중국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 하자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해요. 왜, 재벌과 보수 언론들이 하향 평준화란 단어를 참 좋아하잖습니까? '노동 운동 세력이 강해지면 하향 평준화 현상이 일어난다.'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지금 실제로 하향 평준화를 주장하는 것은 재벌과 보수 언론들인 셈이에요.(정승일) -p.148 쪽
스웨덴이 의외로 외국 기업들에게 인기를 끄는 나라거든요. '의외로'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있는데, 이 스웨덴이란 국가가, 우리나라 보수층 논리를 빌면, 기업하기 어렵게 만드는 '빨갱이 나라'란 말입니다. 임금 높죠, 노동조합 강하죠, 행정부는 사회민주당에 장악되어 누진세로 따지면 소득의 60%까지 긁어 갈 정도로 부자들을 괴롭히는 식이니까요. 이런 나라니까 외국 자본이 안 들어갈 것 같죠? 아닙니다. 외국 자본들이 기꺼이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것도 악착같이. 그렇다면 외국 자본들이 스웨덴의 시장을 보고 이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스웨덴은 시장 규모가 작은 나라예요. 인구가 남한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잖아요. 외국 자본이 노리는 것은 오히려 스웨덴의 기회보장 제도와 무료로 제공되는 기술 훈련 시스템, 그에 따라 숙련된 현장 노동자들과 대학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들, 그리고 노동조합 전국 조직과 경영자 전국 조직 간에 유지된느 산업 평화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과 환경이 스웨덴에만 존재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그런 사람들을 고용해야만 생산할 수 있는 제품들이 있거든요. 심지어는 영국의 기업들 중에서 IT부문에 투자하려 한다거나 할 때는 저세율과 저임금의 영국이 아니라 일부러 스웨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입니다. (정승일) -p.162~163쪽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의 기본 정신과 통하는 거에요. 단기주의! 그냥 우선 쉬운 것을 하는 거죠. 축산업 규제 풀어 주면 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후엔 결국 광우병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공기업인 철도 산업을 민영화한 뒤에 투자를 안 하고 수익률 높인 건 좋았는데, 10년쯤 지나니까 열차 사고가 빈발하잖아요. 이렇게 단기 수익 올리려고 노조 탄압하고 해외에서 저임금 노동자 수입하다 보면 당장엔 기업이 살아날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는 업그레이드를 못하게 됩니다. 결국 망하는 거죠.(장하준) -p.171쪽
노동조합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정승일)
그래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데 '연봉이 7000만원인데 어떻게 파업을 하냐.' 하는 식의 이야기들이 먹히고 있는 거죠. 사실 연봉이 8000만원, 1억 원이라도 필요하다면 파업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을 응원하기는커녕 ' 저 친구들이 우리를 위해서 해준 일이 뭔데?'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우리 월급의 3~4배 받는 친구들이 먹고살기 힘들다며 파업을 하다니...' 하는 식의 느낌을 받는다는 겁니다. 보수 언론에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파업을 소재로 저질적인 기사를 써도 그런대로 먹히는 것도 그래서고요. 이렇게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 간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단결이 없다 보니 한국의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할 만한 조직도 없는 것이 현재 상태 아닌가요? 조직률도 너무 낮고요. 물론 경영자 측도 전경련이니 경총이니 하는 식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은 마찬가지죠. 문제는 이렇게 노사 양측에 각각 대표 조직이 없거나 아니면 대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유럽 식으로 노사간에 대타협을 이루기도 어렵다는 겁니다.(장하준) -p.181쪽
그래서 제 경우 지식인들의 어설픈 반국가주의는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고, 그 결과 국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기회마저 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종태)-p. 186쪽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반대하지만, 자유주의(liberalism)는 괜찮다는 태도로 보일 정도이다.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어떤 근원적인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보수와 진보 모두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현상은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승일) -p.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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