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세트 - 전4권
야마자키 도요코 지음, 박재희 옮김 / 청조사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2014년 하반기 장안의 히트 상품은 <장보리>다.

악과 선의 대결이 주종으로 무려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연초의 <별그대>에 이어서 두 번째로 나의 관심을 끈 드라마다.

덕분에 몇 줄 소감을 적어 보려고 한다.

 

처음 든 생각은 개콘의 박대표였다.

<시청률의 제왕>에서 맹활약한 박대표의 어투가 생각났다.

출생의 비밀,죽여,살려,알고 보니 법인은 엄마였어..

쉬지 않고 던져지는 그의 신공 덕분에 시청률은 바닥에서 공중으로 튀어나간다.

그의 비법은 집중 강타와 현란한 반전이다.

내려오면 때려서 올려 세우는 것이 반전이고 한번 올랐을 때 연달아 내놓는 것이 집중이다.

 

드라마에 푹 빠져있는 주변인들에게 개콘과 겹쳐서 보개 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끄덕인다.

내가 왜 이런 수고를 해야 할까?

그건 이 드라마가 개콘과 겹친 덕분에 나의 즐거움을 잡아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 이건 한 마디로 <박대표>야 하고 외쳐보지만 끄덕임은 잠시 다시 시선은 <장보리>로 간다.

 

그래서 한번 작품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작품 속에는 두 개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나온다.

하나는 연민정의 신데렐라다.

가난한 집 딸에서 고아로 변신해서 호적세탁하고 유학가서 실력 닦고 재벌집 아들과 결혼하는 전형적인 신데렐라다.

또 하나는 장보리의 신데렐라다.

중졸의 학력에 검사를 남편으로 맞고 헤어진 가족도 찾아서 말년의 행복이 눈에 선하다.

하나의 신데렐라가 탄생하려면 앞의 신데렐라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이 악을 이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야를 약간 넓혀보자.

양모와 시모 둘 다 연민정에게 약점이 잡혀 있다.

둘 다 악착같이 신분상승을 하고 온갖 술수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서 그 자리를 쟁취하였다.

톡 깨놓고 연민정이 아무리 악녀라고 해도 살인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껏해야 유괴 약취에 경력세탁 아닐까? 그걸로 감옥은 가도 사형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에 양모와 시모는 살인에 준하는 죄를 지었다.

 

그런데 왜 연민정만 비난 받을까?

압축 성장 시대에는 신화가 많았다.

규칙이 없을 때 휙 남의 것을 가로챈 경험은 매우 많다. 6.25 전후를 해서 남의 재산과 호적을 가로챈 사례는 매우 매우 많다. 그것이 신화의 배경이다.

양모와 시모 또한 그러한 신화에 묻어가고 일부를 자기 손으로 실행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 신화는 이제 반복되기 쉽지 않다.

연민정은 어느 정도의 악은 행했다 하지만 비난의 집중 포화를 맞는다.

기록의 도구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USB, 전화기의 녹음 파일, 위치 추적 등 이제 사회는 기술 덕분에 점점 투명해진다.

흐릿하면 눈감아 줄 수 있는 것들이 생생하게 앞에 드러나는 순간 신화는 꺠져나간다.

급성장이란 차별화된 방법이고 그 방법의 상당수는 남의 것을 가로채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과 비유하면 독점 기업이 그렇다.

하지만 이제 연민정에게 그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의 도약은 적을 만들고 비난의 포화 속에 무너져가고 있다.

이런 연민정은 꽤 현실적이고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는 캐릭터다. 개연성은 꽤 된다.

 

반면 장보리라는 캐릭터는 뭘까?

흐릿하고 우연적이다.

즉 비현실적 캐릭터다.

논리도 매우 개연성이 떨어진다.

듀오에 가서 물어보라 중졸을 검사가 선택할 확률이 몇 프로일까?

나도 남의 꿈을 비웃을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매우 드물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럼 드라마의 주인공은 왜 현실 보다는 비현실성에서 나올까?

현실의 신데렐라를 찬찬히 까보면 범죄에 가까운 놀라움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신정아라는 미술계의 신데렐라의 추락을 한번 떠올려보자.

다 까보면 너무 추악해지니 적당히 올라가고 적당히 바라보면 괜찮은 노력자구나 할 캐릭터였다.

장보리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나와 가능성이 크다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더 끌어내준다.

막상 현실에서 이기려면 연민정 식 길이 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전하려면 이를 악다물어야 한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장보리를 보면서 푸근함을 느끼는 길을 선택한다.

행운이 나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보는 것이 더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성장시대가 끝난 지금 어머니 세대의 약간을 흉내내었음에도 차갑게 내몰리는 연민정의 어려움에 얼마간 연민을 느꼈다.

드라마는 떴고 광고는 다 장보리에게 몰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머리에 오래 남을 캐릭터는 연민정이 되지 않을까?

 

이 드라마와 가장 유사하게 느낀 캐릭터는 <하얀거탑>의 주인공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데릴사위로 부잣집 사위가 되어(호적세탁) 지도교수와 쟁투(모략과 중상)를 겪으며 자리를 획득하고 약간의 오만스러움으로 과실치사(범죄)를 저지른 후 몰락해가는 주인공에게서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처음에는 웃음과 착함으로 쏠려간다, 하지만 정말 나의 삶을 개선해보려고 한다면 비극의 주인공들에게서 직접 배울점을 가져와 몸으로 해보는 것이 더 맞는 방법이리라.

 

드라마에서 개콘으로 다시 역사분석,성공학 이렇게 오가다 보니 추석이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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