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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는 참 독특하다.
전혀 낯선 대상 위로 우리의 시선을 끌고 가서 찬찬히 살펴보도록 만든다.
퀴즈쇼에서는 3포세대의 고시원 골방, 빛의 제국에서는 간첩이라는 낯선 운명을 가진 이에게로 끌고 간다.
이 책 엘레베이터.. 는 단편 모음이다.
내 앞을 지나가는 무수한 인간들이고 만남은 찰나지만 그들 하나 하나의 삶은 참 유니크하고 소중하다. 무언가 의미를 두고 본다면 이야기가 쫙 풀어져나온다.
작가 김영하는 그렇게 이 소설집에서 여러 존재들에게 시선을 둔다.
마트 가서 물건 훔쳐먹고, 길가는 행인 퍽치기하는 잉여의 삶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찾아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였는가?라는 시가 있다.
길거리의 부랑아에게도 의리라는 것이 있고 진실됨이 있다는 걸 새삼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의리와 진실, 사회와 조직체들이 그걸 원하지만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김영하는 아주 소소한 듯한 인생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드러내준다.
다른 소설들도 독특하다.
사랑하면 투명해지는 건조한 운명을 가진 은행원 이야기도 참 뛰어났다.
운명을 듣지만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카산드라가 그랬던가..
은행은 아주 철저하게 궤도와 같이 움직인다.
그래서 따분하지만 그게 엄중한 운명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아주 오랜 첫사랑의 추억. 하지만 그로부터 그의 운명은 바뀐다.
여자를 만나면 호기를 부여야 하고 평소 먹지 않던 갈비를 먹고 .. 그러려면..
IMF라는 거센 풍랑 속에서 무수한 은행원들이 스러져갔다.
궤도위의 삶에서 떨여저나가고 다시 어딘가 던져저버리는 사람들의 운명.
작가는 그들의 모습이 투명해졌다고 은유한다.
있지만 있는 것 같지 않은 존재로의 변화.
변신의 카프카에게서 그러한 삶은 벌레라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의 투명함이라는 비유 또한 낯설지만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일에서의 존재감이 사라지니 가정에서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욕망은 남지만 그 욕망을 이룰 수단이 사라지면서 말 그대로 투명해진 존재.
이 땅의 그 나이의 가장들, 아버지들에게 딱 맞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다 읽고 우울하지만 쉽게 놓지 못하는 글을 만들어낸 작가의 솜씨에 경탄하였다.
작가 이야기를 약간 더 하면..
아이는 낳지 않는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
어려서부터 낯선 곳에 던져지는 삶에 워낙 익숙했다. 아버지가 군인이었고 번 돈은 사기 당해서 날라가서 집들은 전전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덕분인지 작가는 여행가가 되었다. 자기 돈으로도 가고 남의 돈으로도 간다. 하이델베르그, 일본, 미국 등 여러 곳을 오간 체험은 때론 여행기가 되고 때론 소설이 된다.
장편 <검은 꽃>도 멕시코 여행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그만한 현장감을 줄 수 없었으리라.. <옥수수>도 뉴욕의 위아래 거리를 오갔던 느낌들이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세계를 모두 끌어 안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기대가 크다.
한류는 퍼져나가지만 그걸 딸랑 딸랑 떨어지는 동전 세기로만 이해해서는 신통한게 되지 않는다. 문화의 뿌리는 인간상을 드러내는 소설이 담당해준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파우스트박사와 메피스토텔레스라는 두 형태로 독일인의 특질을 포괄해냈듯이 김영하의 손에서도 밖에서 보는 한국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걸작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