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김호경 지음, 전철홍.김한민 각본 / 21세기북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이순신은 어렵다.

광화문 한가운데 놓을 정도의 위업이 어렵다.

일찍부터 성웅으로 추앙받아 우리 머리에 무겁게 자리하기에 또 어렵다.

역사를 처음 접근하는 길이 교과서 였기에 성웅이라는 이미지는 오래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김훈은 이순신에게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다.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은 선조에게서 질투 받고 부하들에게 엄격한 군율을 적용해야만 하는 잔혹함도 이겨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김한민의 영화에서 이순신은 어떠해야 했나?

너무 잘 알기에 쉽지 않은 이순신을 다루면서 감독은 차별화를 시도한다.

그는 전작 <활>에서 보여준 CG를 도구 삼아 다른 시선이 가능하구나 하는 감탄을 관객에게 주엇다.

이번 작품에서도 관객의 시선은 감독의 손놀림에 이끌려 바다 밑으로 하늘 위로, 배의 위,옆 등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속도는 매우 뛰어나서 관객이 곧 전장 속으로 끌려들어간 느낌이 난다.


긴장 속에서 느끼는 통쾌함을 위해 작가는 다른 것들을 희생시킨다.

앞서 보여준 교과서나 소설이 역사가 아니듯이 영화 또한 역사에서 무척 벗어난 듯 하다.

하나 하나 따지고 듬은 굳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 하다.

본 뜻을 정리 해보면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가 된다.

탈주자 배설이 후일 참을 당한다. 반면 죽고자 각오한 이순신은 쉽게 죽기도 어려웠다.

어려움에 맞서 죽고자 하는 각오를 이 만큼 생생하게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참고로 다른 나라 전쟁영화들과 비교해보았다.

중국의 적벽대전, 일본의 언덕위의 구름 그리고 한국의 <명량>

시대가 지날수록 시선은 장수에서 백성으로 내려온다.

적벽이 원작 삼국지의 시선을 따라가서 장군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언덕위의 구름은 보통사람들을 함께 묘사해간다.

작품 명량은 아예 민초들이 절반은 주인공이 된 듯 하다.

왜냐고?

시대가 민주화가 되어 가기 떄문이리라.


그렇지만 우리는 충분히 민주화되었을까?

명량 전투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얼마전 수많은 생령들이 다시 빠지게 되었다.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그들의 논리 덕분이었다.

백성은 과연 주인이었던 것일까?


명량 전투를 앞에두고 이순신은 충은 임금에 머물지 않고 온 백성에게 퍼져나간다고 단언했다.


영화 속 이순신의 그 말을 그리워 함은 이 시대 우리들에게

그런 지도자가 그리웁기 때문이 아닐까?


뻔한 듯, 같은 듯, 다 아는 듯한 역사를 가지고 이 만큼 몰입도 높은 작품을 만든 감독의 노력은 감탄할 만하다.

한국 영화 꽤 많이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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