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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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왕비라는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하여 단두대에서 생을 마친 비운의 여인이다.

삶이 극적인 만큼 이야기도 많다.

100여년이 훨씬 지나서 츠바이크는 자신의 고향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의 비극적 삶에 대해서 전기를 써보려고 한다.

그의 접근은 남과 달랐다. 먼저 그는 빈에 보관되어 있는 왕실 문서 기록을 살펴본다. 마리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시아, 오빠 프란츠 황제 등의 편지로부터 마리의 성격의 기본 골격을 잡는다. 

반대로 당대에 쏟아져 나온 회고록류의 기록물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선을 둔다. 왕정복고 후 일제히 나왔고 왕비와 잠깐이라도 옷깃을 스쳤던 이들이 산만하게 쏟아내었다는 이유다. 사실 이렇게 홍수를 이룬 기록물들은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마리의 성격을 잡아낸 이후 작가는 주요 사건,상황에 따른 마리의 심경 변화를 유추해낸다.

불구의 남편과의 불화, 자식을 간신히 얻었지만, 로코코의 환락 속에서의 고독해지고 싶었던 심리 등은 초반전이다.

자유롭게 즐긴 전반부가 끝나면 그녀에게 날카로운 시대의 무게가 다가온다.

왕실 재정의 파산 속에서 오스트리아 여자라는 출신 차이가 대중들의 희생양으로 쉽게 도마위에 올려졌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녀는 그렇게 착하지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여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왕과 왕비는 작음 움직임도 거대하게 해석되는 특별한 존재다.

덕분에 그녀는 그 무게를 다 짊어지고 떠나야만 했다.


이 대목에서 츠바이크가 다룬 프랑스 혁명을 살펴보자.

그는 역사가이기 보다는 전기작가다.

역사에 대해서는 유명한 저서가 하나 있는데 제목에 광기와 우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우연적인 요소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걸 작가는 여러번 강조한다.

프랑스 혁명의 주역들에 대해서 츠바이크는 꽤 냉철한 분석을 한다.

빚에 시달리다가 우연히 참여한 클럽에서 말솜씨가 인기를 끌자 혁명가로 변신한 이들도 많았다. 막장 드라마에서 반전극이 벌어지면서 이들은 자신의 펜이 곧 권력이 되자 이걸 휘두르며 향략을 추구했다. 미라보,마라,당통 그리고 나폴레옹의 은인 바라스 등

무수한 이들이 떠올랐고 서로 잡아먹고 싸우다가 사라져갔다.

그 와중에 끝까지 살아남아 왕정복고에 이른 푸셰에 대한 츠바이크의 저작은 꽤 유명했다. 당대의 히틀러와 나찌당 간부들도 열렬한 독자였다. 반면 츠바이크 자신은 유태인인데다가 1차대전에 평화를 주장해서 나찌당의 분서 목록 윗자리에 올랐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묘사되었던 건 화가 다비드에 대한 서술이었다. 다비드는 형장에 가는 마리를 아주 빠르게 스케치해냈다. 그의 걸작은 나폴레옹의 영광과 함께 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츠바이크의 묘사는 매우 냉혹하다. 자코뱅에게 영합해서 혁명을 찬양하다가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하자 꼭꼭 숨어 목숨을 지키고 좀 지나서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면 다시 그의 초상화를 그려냈다. 혁명의 실제 모습에 대해 이렇게 냉정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츠바이크의 특색이었다.


이 대목에서 츠바이크의 시대를 잠시 떠올려봤다.

긴 평화 뒤에 찾아온 1차 대전, 대공황 그리고 2차 대전.

이 거대한 사건 사이에서 츠바이크는 철저히 개인을 초점에 맞춘 전기물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광기와 우연을 강조하면서.

반면 이 시대 인류가 겪었던 시련을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여는데 기초로 삼았던 다른 이들도 있었다. 

케인즈가 대표적으로 신 경제학의 사조를 열었고 토인비는 역사를 보는 단위를 문명으로 끌어올렸다. 케인즈는 2차 대전 이후 지금의 금융위기 처방에 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토인비의 문명 단위의 사고는 지금 유럽연합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면 츠바이크는 여전히 개인이 초점이었고 아마 거의 다 였던 것 같다.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문제를 보는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과거 먼 흐름을 보는 일에는 경제학 같은 거시적 학문과 역사학과 같이 선이 굵은 이야기가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폭풍 같은 자연의 힘 속에서 자신을 추스리며 삶의 즐거움을 추구했던 하나 하나의 삶이 보다 우리의 모습과 더 가까울 것이다. 자신의 시대를 멀리서 볼 줄 아는 힘이 없는 대부분의 대중들에게는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 대목에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첫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츠바이크의 동상에 애정을 표하는 어린 소녀의 얼굴은 그렇게 하루 하루 격량 속을 헤쳐나가야 하는 우리의 얼굴과 포개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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