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검은꽃 이후 3년만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다루는 시간은 딱 하루다.
주인공은 남파간첩.
낯선 주제다.
하지만 작가의 영특함이 돗보인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남과 북에 걸쳐져 있는 존재는 매우 특이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된다.

인생은 연극이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가면무도회,탈춤 모두 일정한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상황을 보여준다.
별것도 아니구만 하며 양반놀음을 하는 탈춤은 참여한 민초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일상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되돌리게 해준다.
연극이라는 주제, 가면 놀이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작가의 눈에 들어온 존재가 바로 간첩이다.
어디에도 진실되지 않은 이중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 뿌리 뽑혀 다시 심어진 존재로서의 간첩이다.

간첩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작품을 읽다 보니 먼 훗날 나와 장안을 흔들어 놓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머리를 스친다.
끈 떨어져서 왜 내가 사는지에 대해 가끔 물음을 던지며 현실에서의 자연스러움을 연기하느라 무진 애를 쓰는 바보 공작원.
과연 이 역할은 그렇게까지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내 삶은 지고지순한 절대자의 절대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하겠지?

하지만 작가의 설정은 교묘하다.
"국가는 도적"이다라는 반대의 메시지를 툭 던져준다.
왠 도적?
하지만 역사를 잘 되돌려 보자.
궁예는 말타고 다니며 신라땅을 갉아 먹어서 태봉이라는 집합체를 만들었다.
왕건은 그 궁예에게서 빼앗았다.
둘 다 도적인 셈이다.
후일 이성계는? 매한가지다.
여기서 하루짜리 도적은 내 것을 다 털어가고 심지어 내 목숨조차 빼앗지만 1년짜리 도적은 수확을 기다릴 줄 알고 아예 붙박이 도적은 내 건강과 교육까지 신경쓴다.
어떤가? 그럴 듯한가?
이 이야기는 작가 김영하 혼자의 객설이 아니다.
맨슈어 올슨이라는 미국 경제학의 대가이고 노벨상 수상자의 역작의 핵심 논리다.
작가는 이 논리를 교묘하게 삽입하였다. 바로 주류업자인 장인의 목소리에 담아 낸 것이다.
주류업자는 국가의 짝퉁이다. 전매사업인 술에 붙는 세금을 교묘히 갈취하는 같은 류의 사업자인 셈이다.
그러니 국가 너는 큰 도적일 따름이지, 나와 같은 유야 나를 힘으로 누를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는 마라.. 이렇게 당당히 맞서는 존재다.

어쩄든 메시지와 메신저의 배치에 나타난 솜씨에 다시 한번 찬탄을 던지고, <검은꽃>에 비해서 훨씬 치밀해진 작가의 구성력과 거기까지 이른 작가의 노력까지 참 대단했다고 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국가가 도적이다? 그러면 아까 이야기한 국가의 지엄한 명령은 어찌 되는가?
너는 알고보면 도적의 똘마니 짓이야.. 하고 냉소적으로 툭 던져지는 장인의 말은 깊이 남아 폐부를 찌른다.
그리고 다시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로 이어지다가..
오늘 이 귀환 명령에 따라야 하는지, 다시 북으로 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아직도 국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가?
작가는 국가를 다른 각도로도 공격을 해낸다.
가령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 그리고 자신은 현세적 욕망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추구하면서 입과 머리로는 게바라를 숭배하는 모순된 남한의 골통 청년들을 그려낸다.
무언가 문제가 있구나 괴리가 있구나, 게바라가 보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씁쓸함이 마구 밀려온다.
그 와중에서도 작가는 하나를 더 노리는 듯 하다.
상징과 현실의 괴리는 남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 그 괴리는 북에서 더 심하다고 보인다
빛의 제국이란. 북에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라는 점을 작품 중간에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사라진 자리.
이념이 사라진 자리
거기에 남는 강력한 이유는 가족이다.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는 북의 가족은 그에게 행동의 아래 순위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북은 결코 가족의 안위를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이건 <은위>에서도 논란거리였다. 
그렇다면 당장 가지고 있는 현찰, 이곳에서의 가족인 아내와 딸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더욱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의 극치인데..
이미 나온지 꽤 된 소설이라 이 정도까지 하면 어떨까 한다.

하여간 국가와 이념, 가족 등 
개인의 존재 근거에 대한 물음이 이어지고 이를 풀어가면서 우리에게 쾌락과 허무를 동시에 선사하는 작가의 솜씨는 대단했다.

그 보상은 이 작품이 영어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면서 한국의 독특함, 한국문학의 깊이를 알려주는 것으로 주어졌으리라.
이를 기반으로 작가 김영하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당당하게 나는 카프카와 카뮈를 읽으며 나의 칼인 붓을 다듬었고, 그렇기에 너네 들에게 내 문학읽기를 요구할 수 있다고 가슴을 내민다.
한류란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저 아래에 문학이라는 깊은사색의 응축물이 깊이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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