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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개정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를 읽었는데
검은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작가의 소회가 꽤 인상적이었다.
집어들고 나서 앞의 몇 페이지를 읽었더니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상당했다.
역시 김영하는 산문 보다는 소설이 강하다. 바꾸어 말하면 산문은 약간 산만.
100여년전 인천항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노동자로 팔려가는 조선의 백성들의 모습은 애잔했다.
한달이 넘는 바닷길에서의 짐짝 취급, 노예에서 약간 나은 정도의 농장노동자 대우, 저항을 하며 주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고난 등 작품은 세계에 처음 맞닥뜨린 조선의 백성들의 놀라움과 변신을 잘 묘사해낸다.
마치 우리가 그들과 동행하는 것 같은 수준의 밀도 높은 묘사력을 보여준다.
봉건과 근대.
신분이 지배하는 봉건에서 주어진 틀에 맞추어 행동거지를 해야하던 이들이 근대라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노인과 지체 높은 이들은 변화하기 어려웠다. 가장으로서의 의무도 포기한채 좁은 방에 스스로를 가둔 몰락 양반의 모습은 씁쓸했다.
처음 그의 출발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사실 작품의 설명력은 매우 부족했다. 무언가 착각이 있었겠는데 .. 그리고 그의 아들과 딸의 변신은 매우 놀랍다. 그게 아마도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테마가 될 것이다.
근대라는 시대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압박 속에서 눌려 있던 조선인들에게 세계사는 멕시코혁명이라는 대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농부,카우보이,마야인들 이 다양한 원소들이 다들 뛰어들어 나라를 뒤집어 버린 멕시코 혁명은 세계사의 한자리를 차지한 대사건이었다. 비록 그 마무리가 기관총에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진정한 혁명으로의 진보는 멈추었기에 비중은 떨어졌지만..
이민, 뿌리뽑힘, 개인의 변화, 시대의 격량.
이 사이를 오가면서 소설은 꽤 흥미를 더해갔다.
작가는 그럼 이 작업들을 풍부한 소재로 만들어낸 것인가?
사실 근대는 우리가 잘 모르는 시대다.
교과서에서의 서술도 매우 제한 적이다. 아픔은 그냥 덮어버리거나 분노로 치환해서 표현하도록 강제되었다.
작가에게도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는 fact는 얼마 주어지지 않았다.
몇 조각의 신문 기사들이 아마 전부였으리라.
하지만 작가가 이 일에 끌린 이유 중 하나는 작가의 어린 시절 삶이었다.
작가의 집 자체가 유랑 시대를 겪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돈벌이를 했고
한국에 와서는 사기를 당해 돈이 없어져 아버지를 포함한 집안은 늘 돌아다녔다고 한다.
결국 이 작품 초반의 배에서의 생활의 밀도 높은 묘사는 작가의 자기 이야기인 셈이다.
어쨰 대단하더라..
이렇게라도 고통을 승화시킨 작가의 의지에 경의를 한 표 던진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보면..
작가가 영화에 주안점을 두고 시나리오 활동을 하다가 옆으로 새면서 두꺼운 소설집을 만들고 (결국 영화는 못 만들고) 끝났다고 했는데.이는 화려한 일탈이다.
배가 우리를 어디에 내려 놓을지 모른다고 하듯이 인생도 소설도 모른다. 심지어 작가도, 삶을 살아가는 나도.
그 우연도 마음먹기 나름으로는 꽤 즐길만하다는 점을 작가는 잘 보여주었다.
소설이 영화를 의식하다 만들어진 덕분인지 영상적 묘사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나도 내가 아는 영화와 연결해보았다.
농장 생활은 <노예 12년>
멕시코 혁명은 미드 <스파르타쿠스> 노예에서 혁명가로의 변신
하지만 아쉽게도 이야기가 커져갈수록
작가의 설명력은 떨어져간다.
점점 주인공의 생동감이 떨어지다가 결말은 그냥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마치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퀴즈쇼>에서 처럼 말이다.
아쉽지만 그래도 그 전에 많은 즐거움을 주었으니 어쩌랴 하는 소감이지만 한 마디 정리해보련다.
작가는 산문 보다 소설이 월등이 낫다.
소설 중에서도 작은일의 디테일에는 강하다.
반면 거시적 이야기로 가면 얽개는 짜 놓지만 채우지는 못한다.
한국의 여러 거대담론형 작가들과 비교해서도 그렇고 전쟁이야기를 다룬 김훈과 비교해서도 그렇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 도전할지는 늘 궁금함을 가지고 보려고 한다.
무척 큰 즐거움을 주었고 그만큼 재능있는 작가이니 성장과 변신 또한 계속 기대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