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하게 설명하면 하나의 사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사고를 하면서 동시에 이상 원인을 찾는 사고를 전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 이므로 일단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절약이 미덕이다라는 구호는 매우 오랫동안 들어와서 우리 귀에 충분히 익숙해져있다.  같은 논리로과소비는 나쁜 것이다라는 비난도 정부기관, 언론, 학계의 조예있는 지성들로부터 자주 듣게 된다.

과소비가 나쁜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과소비를 한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적절한 수준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로서의 정당한 주권 행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을 통해 정부나 여러 학자, 지성들이 당사자에게는 별로 소용 없는 같은 규범들을 강조하는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의의는 과소비의 당사자가 아니라 과소비를 현실적으로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결국 문제는 절약을 강제 당하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기 위한 것이다.

좋은게 좋은 것이란 말이 있듯이 소비란 것은 원래 긍정적이다. 누구나 좋은 물건을 구매하고 즐거운 삶을 꾸려가고 싶을 것이다. 결국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소비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현실을 수용하도록 만들기 위해 절약이 미덕이고 과소비는 악덕이라는 규범을 가지도록 강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소비에 대해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되면 내가 굳이 나쁜 쪽으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게 된다. 위의 명제 - 인과관계적인 인식과 규범적인 인식이 상호 배타적이다 - 따라나는 과소비를 하지 못할까하는 의문을 일으키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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