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변한다.

사람은 더 잘 변한다.

여자의 마음도 변하는데 하물려 권력을 잡은 군주는 어떠하랴?

조조를 보면 처음 출발은 매우 성실한 충신이었다.
당대의 관상가가 조조를 보며 현세의 충신, 난세의 영웅이라고 칭한 것은 딱 바로 본 것이다.

상황에 따라 동탁의 난에는 목숨을 걸고 의병을 일으켜 한왕조를 지키려 했지만
나중에 자신이 승상의 지위까지 오르자 자식에게 물려줄 욕심을 낸다.

그 과정에서 계속 자신은 욕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고 열심히 한왕조를 위해 일하려 하던 순욱이나 순유는
조조의 야심에 걸림돌이 되자 죽음을 맞게 된다.

조조가 처음부터 악인이었을까? 답은 아니다다.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자신의 작전이 문제가 있었다면 먼저 통곡하고
부하들에게 눈물로 과오를 사죄했다.
자식이나 조카 보다 측근인 전위의 죽음을 더 아쉬워했다.

법을 만들면 자신부터 지켜서 모범을 보였다. 보리밭을 들어가면 죽인다고 했다가
자신의 말이 놀라 보리밭을 들어가자 죽는 시늉까지 낸 사람이다.

하지만 권력이 강해지면서 서서히 변한다.
자신의 왕조 건설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자
이유가 안되는 걸 가지고 양수나 공융,최염을 처벌한다.

바로 여기서 인간의 영악함을 알아야 한다.
고락을 같이 해보라는 것은 이런 면들 때문에 하는 말이고 연애에서도 4계절을 사귀어보아라
화른 내게 해봐라 등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거의 민주화 투사들인 YS,DJ나 노동변호사 노무현이 권력을 잡더니 어떤 식으로
변해버리는지 우리는 잘 경험했다. YS에게 아들 현철의 전횡을 간언하던 박관용 비서실장은
결국 자리에서 날라갔다. 이런 걸 보고 역린을 건드렸다는 표현을 쓴다.
삼국지에 나오는 양수의 죽음은 이렇게 역린을 건드렸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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