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기질을 싸움에서 풀지 못하다 보니 평소에 사냥을 좋아했다. 남들처럼 사슴을 잡으러다니는게 아니라 아예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한번은 호랑이가 덤비는 통에 목숨까지 위태하게 되었는데 주위의 간언을 받아들여 튼튼한 수레를 만들어서 안전하게 호랑이 사냥을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손권 자신은 싸움의 재주가 부족했지만 반면에 현명하고 역량 있는 사람들을 기용해서 적절히 임무를 위임하는 능력은 뛰어났다. 장소, 주유, 노숙, 육손 모두 충분히 몫을 인물들을 적절한 요소에 활용해서 성과를 만들어내었다. 점에서는 적어도 유표의 무리보다는 앞서는 것이다.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의리는 있지만 때로 하는 기질을 참지 못해 감정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술자리에서 신하와 말이 오고 가다 갑자기 화를 내며 직접 칼을 들어 처죽이려고 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신하가 바로 손권이 아버지처럼 받들던 장소였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한다.

건강해서 장수했던 것은 좋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판단이 흐려져 오류가 더욱 많아졌다. 공손연이 신하가 뜻을 보이자 멀리 요동지방까지 1만이 넘는 군대와 많은 물자를 보내주었다. 당시에도 장소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뜯어말렸지만 혼자 고집으로 밀어 붙였다. 공손연이 말을 바꾸어 병사를 빼앗고 위나라에 보고해버리자 쫓던 신세가 되버렸고 국제 망신을 톡톡히 당한 꼴이었다. 화가 장소가 집에 틀어 박히자 쫓아가서 집을 나오라고 주변에 불까지 질렀다는 보면 보통 성격은 아니었던 같다.

더해서 한참 동안은 불로장생의 비약을 찾아오겠다는 도사들의 무리에 빠져 적지 않은 재화를 낭비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서의 가장 문제는 후계체제인데 본인이 불로장생을 원하다보니 죽는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리게 된다. 막상 정말로 몸이 힘들어져서 포기하기 전까지 미루게 된다. 급작스레 결정하려다 보면 판단도 흐려져서 귀가 엷어지다보니 혼선이 많았다. 태자를 세웠다가 공주의 고자질에 폐해버리기도 했는데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 패가 갈려 싸우다 보니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지도력은 약화된다. 진시황에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미루려고 하면서 후계자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것이 통일의 위업을 빨리 무너뜨리게 되었는데 손권의 경우도 유사한 면이 있다.

즉흥적인 면은 여자 문제에서도 나타나는데 길을 지나다가 여인을 보게 되고 주워다가 맏아들에게 주었는데 여기서 나온 자식인 손호가 오나라의 마지막 군주가 된다. 손책이나 주유를 비롯하여 당대 오나라의 무장들 대부분이 일종의 약탈에 의한 혼인을 자주 했었다. 보고 마음에 들면 가서 빼앗는 것이다. 여자를 싸움의 전리품으로 본다면 이런 태도도 가능하겠지만 안정된 체제에서 후계자 양성을 위해 중요한 것은 어려서부터의 자녀교육이다. 그런 측면으로 보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를 빼앗아 들이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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