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싸움에서도 조조에게 참패를 당했지만 패배는 여기서 끝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운이 보인 활약은 삼국지연의에 잘 묘사되어 있다. 참고로 조운의 인품과 활약상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만 삼국지 전체를 보면 실제 장수로서 조운이 보인 활약은 그리 크지 않다. 초기부터 유비를 따라다니며 한번도 배신하지 않고 오랫동안 모신 그 이지만 군사를 이끌고 상대방을 물리친 기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장판의 참패로 지리멸렬했던 유비군에 희소식이 왔다. 제갈량이 손권과의 군사 동맹을 맺는데 성공한 것이다. 덕분에 전열을 가다듬어 적벽에서 손권과 함께 조조에 맞서 싸워 상대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단순한 전력만 놓고 본다면 이루어지기 힘든 승리였지만 토착민 특유의 경험으로 지리, 기상과 같은 조건을 잘 알고 활용한 것이 주요인이었다.
전쟁의 성과로 얻어진 형주의 남부를 과감하게 차지하고 안정화시킨 것도 유비의 솜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크게 역량을 발휘한 것은 익주와 한중의 정복과 조조와의 한중전쟁으로 둘 다 거의 유비 혼자의 공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한중전쟁은 조조가 직접 인솔한 군대와 싸워서 물러서지 않은 것으로 촉이라는 체제를 안정화시켜 삼국의 정립을 완결한 큰 사건이었다. 유비가 조조와의 대결을 늦추면서 자신의 세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에는 조조가 적벽 이후에 손권에 대한 직접 공략을 시도했고 다음으로는 마초와 한수에 의한 관서지방의 대반란에 주의를 쏠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