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에서 첫번째 판인 관도 싸움을 통해 중원의 승자가 결정되게 된다.

여기서 잠시 진영의 최고 지휘관들인 원소와 조조를 살펴보자. 당대의 여러 사람들이 둘을 놓고 내린 평은 둘로 나뉜다. 중원의 패자가 하나가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들 인식을 같이하고 있었지만 어느쪽이 승리 할지에 대해서 완전히 장담할 수는 없었다. 싸움이 끝나고 원소의 진영을 보면 조조측의 주요 인사들이 양다리 걸치기 위해 보낸 편지들이 다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식으로 양쪽에 어정쩡하게 걸쳐서 눈치를 보는 세력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싸움의 3자의 입장에 놓여있던 장수라는 권력자의 참모인 가후의 논리는 간명했다. 조조가 이길 것이고 조조의 편에 서야 원소편에 것보다는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점이 요점이었다. 얼마전까지도 칼을 서로 겨눈 원수였지만 가후의 판단으로 장수는 단번에 조조편으로 돌아서게 된다. 조조 또한 과거 자신의 아들과 조카를 죽인 원한을 접고 장수를 후대하였다. 사실 거꾸로 보아도 이렇게 제발로 오는 사람을 박대한다면 다시는 아무도 저절로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 조조의 계산은 빨랐고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가후의 추정논리 또한 보통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시 싸움으로 돌아가보자. 원소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우세한 물량이었다. 차지하고 있는 땅이 훨씬 컸고 전란을 겼었기에 안정되었다. 거기에서 동원할 있는 병력이 압도적으로 우위였으며 이들을 먹일 있는 식량의 보급 또한 훨씬 수월하였다. 숫자를 대충 세어본 원소 진영은 패배의 가능성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 세력의 우위를 통해 상대를 압도하려는 압박전략이었다.. 이에 반해 조조는 병력은 작지만 가장 뛰어난 정예를 뽑아 싸움에 임했다. 이렇게 이유는 무엇보다 양쪽이 가지고 있는 군량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많은 병사를 데리고 나갔다고 해도 먹이기가 힘들었다.

 

관도나루 대전의 서막은 기병전이었다. 원소가 기병대장 안량은 북방계 이민족으로 추정되는데 말위에서 싸우는 솜씨가 무척 뛰어났다고 한다. 그가 이끄는 기병대가 조조의 선봉과 부딪혔을 조조쪽에서도 상당히 고생했지만 조조가 꾀를 써서 이를 격파했다고 한다.

크게 믿었던 기병이 무너지자 당황한 원소는 지구전으로 들어갔다.

양쪽은 각기 진영을 건설하고 앞에는 흑산을 만들어 상대방의 공세를 막고 진영과 진영 사이는 흙길을 만들어 서로 통하도록 했다. 어떨때는 지하도를 뚫어 상대방의 진영으로 처들어가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기도 했다. 이렇게 벽뒤에 숨어서 서로에게 활을 쏘아대는 형세는 삼국지보다 400년전에 유방과 항우가 결전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참호전에서는 우선 식량과 물자의 보급이 성패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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